국내 대기업, "소니·파나소닉 반면교사 삼아라"

입력 2012-02-13 11:26 수정 2012-02-13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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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 자만에 빠지면 나락으로…日실패 교훈 배우기 열풍

날개가 없다. 낙하산을 펼칠 힘도 없다. 추락하는 일본 기업을 두고 하는 말이다. 소니, 파나소닉 등 일본을 대표하는 전자기업은 적자에 허덕이고, 일본 내 업계 4위 규모인 미쓰비시 자동차는 유럽 내 공장 폐쇄 결정을 내렸다. 상황이 이렇자 삼성 등 국내 기업 임원들은 일본 배우기에 나서고 있다. 물론 일본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다.

◇일본 배우는 국내 대기업= 최근 삼성그룹 사장단은 김현철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를 초빙 ‘일본 기업의 실패 원인’에 대해 강의를 들었다. 김현철 교수는 도요타와 파나소닉 등 일본 대표 기업이 최근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유를 ‘복잡성 관리’ 관점에서 분석했다.

김 교수는 “도요타는 2000년대 말 연 30만대 규모 공장을 여러 곳에 세우며 연평균 생산량을 급격히 늘렸다”며 “품질을 자랑하던 도요타는 복잡성이 급증하고 관리 역량 한계에 부딪히며 한해 생산량에 맞먹는 771만대를 리콜하게 됐다”고 분석했다.

그는 일본 기업들은 △복잡성 관리 실패 △엔고 △전력부족 △높은 법인세 △각종 고용 규제 △부진한 FTA 정책 등 6중고에 시달리고 있다고 진단했다.

김 교수는 “삼성전자의 경우 SCM(공급망관리) 등 복잡성 관리에서는 좋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면서도 “다만 최근 대기업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는 등 국내 경제 환경이 일본의모습을 따라가는 것 같아 우려스럽다”고도 했다.

◇일본 기업 어떻기에= 지난해 일본은 31년 만에 무역 적자를 기록했다. 수출 강국, 일본의 위상이 땅에 떨어졌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특히 일본 전자업계의 자존심 소니의 몰락은 충격이다. 소니는 2011년 2~4분기 결산에서 2200억엔의 적자(순손익 기준)를 낼 것으로 전망된다. 분기별로는 8연속, 연도별로는 4연속 적자행진이다. 규모도 역대 최악의 적자를 기록한 1994회계연도(2933억엔)와 2010회계년도(2599억엔)에 맞먹는다.

파나소닉의 실적은 더 충격이다. 지난해 적자는 7800억엔으로 예상된다. 이는 작년 10월 당시의 적자 예상액(4200억엔)을 크게 상회하는 것으로 일본 기업사상 최대 수준의 적자폭이다. 지금까지 일본 기업의 연간 적자 중 사상 최대는 지난 2008 회계연도에 히타치제작소의 7873억엔이었다.

이밖에 샤프 2900억엔, NEC 1000억엔의 적자가 예상된다. 1981년 기업공개 후 단 한번도 적자를 보지 않았던 게임기업체 닌텐도도 650억엔의 적자를 낼 것으로 보인다.

일본 기업의 부진은 비단 전자업계만이 아니다. 일본 내 업계 4위 규모인 미쓰비시 자동차는 지난 5일 네덜란드 보른에 있는 현지 공장에서 올해 말까지 생산을 중단하겠다고 발표했다. 일본의 자동차 업체가 유럽 내 공장 생산을 중단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미쓰비시의 네덜란드공장은 연산 20만대 능력을 갖추고 있지만 실제 생산은 이를 크게 밑돌고 있다. 지난해 4~12월 누적적자가 114억엔(약 1667억원)에 달했다. 유럽 재정 위기로 미쓰비시 자동차의 수요가 줄어든 데다 현대자동차 등의 공세 때문이다. 결국 유럽 내 생산시 수익성이 개선되지 않을 것으로 판단, 공장 중단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는 분석이다.

일본의 르네사스 테크놀로지와 파나소닉, 후지쯔 등 반도체 3사는 가전제품과 자동차·휴대폰 등에 사용되는 시스템LSI의 설계·개발 부문을 분리해 반도체 설계 전문회사를 설립할 계획이다. 이들 업체의 시스템LSI 통합이 실현되면 연매출 5000억엔 규모의 거대 기업이 탄생하게 된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3사 통합에 대해 “자금 압박과 실적 부진에 허덕이는 일본 반도체 업계가 살아남기 위해 경쟁사 간 사업 통합을 모색하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일본 반도체 산업이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는 얘기다.

◇몰락 원인은 ‘자만심·개혁 실패’= 일본 기업이 이처럼 추락하는 이유는 세계 최고라는 자만심에 빠져 끊임없는 개혁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소니의 몰락은 과거의 성공에 취해 변신을 늦췄다가 몰락한 대표적인 사례다. 소니는 1979년대 워크맨을 출시하며 전 세계에 휴대용 카세트 붐을 일으켰다. 하지만 MP3 플레이어로 바뀌는 시대의 변화를 따르지 못하며 무너지고 말았다. TV 역시 마찬가지다. 소니의 브라운관TV ‘트리니트론’은 부동의 1위였다. 여기에 자만한 소니는 화질과 성능이 브라운관만 못했던 초기 LCD에 대해 적극적인 투자를 하지 않았다. 시장은 소니의 생각과 반대로 흘렀고, LCD TV 시장에 적극적으로 뛰어든 삼성전자·LG전자가 단숨에 전세를 뒤집었다.

수퍼 마리오와 닌텐도DS 등의 히트 상품으로 비디오 게임 시장을 지배했던 닌텐도도 마찬가지다. 애플 아이폰을 시작으로 스마트폰과 태블릿PC가 밀려들자 소비자들은 닌텐도를 외면했다. 2009년 이명박 대통령이 “우리나라엔 닌텐도 같은 게임기를 만드는 기업이 없는가”라고 말했을 땐 상상도 못했던 일이다. 닌텐도는 스마트폰 시장의 급성장을 예견하지 못했고, 성공에 자만하다 보니 이같은 결과가 나왔다.

물론 일본 기업들의 실적 악화에는 엔고와 일본 대지진, 태국의 홍수 등 외부적인 요인도 있었다. 하지만 디지털에 대한 적응 실패, 사업 전략의 차질 등 기업 내부의 경영적 요인도 컸다.

업계 관계자는 “일본 전자업계의 추락 원인은 엔고 현상으로 가격 경쟁력이 떨어진 점도 있지만 내수시장에 집중하다 보니 스마트폰 등 글로벌 트렌드에 적극 대응하지 못했고 세계 최고의 기업이라는 자만심이 결국 일본전자 기업을 몰락하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박재완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도 지난 8일 광화문 정부중앙청사에서 열린 ‘2012년 제5차 위기관리대책회의’에서 “일본 전자업체들이 대규모 적자를 보인 것은 지속적인 혁신에 실패한 때문”이라며 “우리 기업들도 일본 전자업체를 교훈삼아 신기술 개발 등 지속적 혁신활동에 힘써 달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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