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준의 말]공직비리, 보다 큰 틀의 고민이 필요하다

입력 2014-11-25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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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대 행정정책학부 교수, 전 청와대 정책실장

4대강 비리에 원전 비리, 그리고 철도 비리에 방위산업 비리, 공공부문이 온통 비리와 부패 천지인 것 같다. 원전과 국방 등 국민의 생명과 직결된 부분까지 파고들었다.

경제력 규모로 10위권대 초반에 있는 나라다. 세계 최고의 정보통신 기반에 글로벌 혁신을 주도하겠다는 나라이기도 하다. 그러나 국제투명성기구(Transparency International) 부패인식지수는 세계 177개국 중 46위, 긴 한숨이 나온다.

홍콩에 있는 정치경제리스크컨설턴시(Political and Economic Risk Consultancy)도 우리를 아시아 17개국 중 10위, 아시아 선진국 중 최악으로 평가한다. 지난 10여 년간 1만8000명이 넘는 공직자가 우리 돈으로 평균 100억원 이상을 들고 외국으로 도망갔다는 중국이 우리 바로 다음인 11위다. 중국보다 조금 낫거나 비슷한 수준이라는 말이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이 기구의 논평이다. “한국에서는 부패의 뿌리가 정치ㆍ경제 피라미드의 최상층에까지 뻗어 있다… 사람들은 부패에 둔감하며, 글로벌 사회로 돌아다니며 다른 나라들까지 오염시키고 있다.” 고개가 숙여진다. 어쩌다가 이런 소리까지 듣게 되었나.

큰일이다. 시간이 가면서 더욱 악화되는 것 같아 더욱 그렇다. 일례로 참여정부 마지막 해인 2007년 679명이던 공무원 행동강령 위반자 수는 2012년 1836명으로, 또 박근혜 정부 첫해인 2013년에는 2103명으로 늘어났다. 각각 270%와 310% 증가한 셈이다. 더 많이 잡아내기 위해 특별히 노력한 것도 아닌데도 그렇다.

왜 이럴까? 길게 이야기할 것 없다. 크게 두 가지 문제다. 먼저 그 하나는 정부와 공기업 등 공공부문의 견제되지 않는 힘이다. 국가가 성장과 배분을 주도해 온 결과 이들의 힘과 규모는 크다. 그러나 이에 대한 통제와 견제의 수준은 낮다. 국방 비리에서 보는 것처럼 행정부 안에서 이루어지는 내부통제는 스스로 수위를 조절하는 등 그 한계가 뚜렷하고, 외부통제는 그 주축인 국회와 지방의회부터 엉망이다.

또 하나의 문제는 시장의 낮은 자정(自淨), 즉 스스로를 정화시키는 능력이 낮다는 점이다. 사실 시장은 본질적으로 탐욕스럽다. 돈이 되는 것이라면 뭐든지 한다. 급하거나 계산상 이익이 되면 비리든 부정이든 가리지 않는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시장은 그 규모가 커지는 만큼 자정능력도 키운다. 예컨대 투자를 유치하려면 투명한 회계로 투자자에게 믿음을 줘야 한다. 또 물건을 오래 팔려면 소비자 권리를 인정해야 하고, 부정부패 등 이미지를 해치는 짓을 해서는 안 된다. 시장이 잘 발달한 국가일수록 비리와 부패가 적은 것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다.

하지만 우리의 경우 이러한 자정능력이 경제규모에 맞게 제대로 자라지 못했다. 시장이 워낙 빠르게, 그것도 관치 아래 성장해 왔기 때문이다. 그 결과 시장은 스스로의 탐욕을 제대로 제어하지 못한 채 탐욕을 채우기 위해 공공기관과 공직자들을 포획하고 있다.

강하고 클 뿐만 아니라 제대로 견제되지 않는 국가 또는 공공부문 그리고 자정능력이 높지 않은 상태에서 날로 그 힘을 키워가는 시장. 바로 이 둘의 결합이 ‘탐욕스러운 시장에 의한 강하고 큰 국가의 포획’, 즉 비리와 부패로 나타난다. 공직자의 수뢰 등 그나마 눈에 보이는 것은 약과다. 시장에서의 큰 힘은 오히려 국회와 행정부 전체를 포획하며 각종 특혜와 특권을 제도와 관행으로 만들어 내고 있다.

가야 할 길은 분명하다. 국가도 바로잡고 시장도 바로잡아야 한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이런 큰 틀에서 문제를 정리하고 해결하려는 노력이 보이지 않는다. 이번 국회도 국가부문에 대한 작은 견제수단인 ‘김영란법’ 하나를 가지고도 씨름을 하고 있다. 그것도 국가와 시장 모두를 살린다는 큰 틀 속의 논쟁이 아니라 법 자체의 실효성만 따지는 논쟁을 하고 있다.

답답하다. 비리와 부패 그 자체도 그렇지만 큰 틀의 논의가 일어나지 않고 있는, 그래서 근본적으로 다루어야 할 수많은 문제들은 아예 이야기조차 되지 않고 있는 우리의 상황이 더 답답하다. 이러고도 나라가 제대로 되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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