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철순의 즐거운 세상] 대방역을 오가면서

입력 2014-12-04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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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순 미래설계연구원장

나는 지하철에 앉으면 책이나 휴대폰을 들여다보다가 잔다. 천자문에 주면석매(晝眠夕寐), 낮에는 졸고 밤에는 잔다는 말이 있는데, 나는 낮에도 자고 밤에도 잔다.

그렇게 졸거나 자면서도 지하철 역 이름에 대해서는 관심을 갖고 뜻을 알아보게 된다. 자주 이용하는 1호선 대방역은 무슨 뜻일까? 한자로 大(큰 대) 方(모 방)이니 크게 모가 나는 곳이다. 동양에서는 원래 천원지방(天圓地方),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반듯하다고 생각했다. 대방은 곧 ‘큰 땅’이다.

학식이 풍부하고 문장이 뛰어난 사람을 말할 때에도 대방, 대방가(大方家)라고 한다. 연암 박지원, 추사 김정희, 다산 정약용 같은 분들이 대방가다. 대원군이 소치 허련을 “서화의 대방가”라고 칭찬한 적도 있다.

대방광불이라는 부처님도 있다. 방광이 큰 부처님이 아니라 대방광의 이치를 증득한 부처님이다.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의 중심사상은 부처와 중생이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것이다. 대는 광대무변한 마음의 본체계, 방은 원만상호를 갖춘 마음의 공덕상, 광은 무애작용을 하는 중중무진의 마음 작용… 어렵다.

경허선사는 이 세상에 대 아닌 게 없고 방 아닌 게 없다고 했다. 모두 여법(如法)하며 ‘저절로 그러한’ 진리를 담고 있다는 것이다. 아득한 우주와 천계도 넓고, 가장 작다는 겨자씨도 넓다. 그래서 대방광이다. 어렵다.

그러나 내가 먼저 생각하는 방은 방정(方正)이다. 말이나 행동이 바르고 점잖다는 뜻이다. ‘상기 학생은(또는 우자는) 품행이 방정하고 학업성적이 우수하여…’. 상장에서 많이 본 문구다. 이걸 ‘품행이 방정맞고’라고 읽으며 낄낄거렸지만 지금 초등학생들은 그런 말 자체를 모른다. 요즘은 ‘위 학생은 00년도 1학기 그린 마일리지를 실시한 결과 바른생활 실천에 타의 모범이 되었으므로 이에 표창합니다’ 이런 식이다.

사람은 안으로는 네모지더라도 겉으로는 둥글어야 한다. 그게 외원내방(外圓內方)인데, 외유내강과 비슷한 말이다. 방원가시(方圓可施), 모난 것이나 둥근 것에 두루 들어맞는 사람, 어디에든 적합한 사람이라는 말도 있다.

몇 년 전 공(孔)씨 성 신랑과 방(方)씨 성 신부의 주례를 선 일이 있다. 일단 “결혼해서 공방전을 벌이면 안 된다”고 주의부터 준 다음, “공은 둥글다는 뜻을 가진 성이니 천원지방의 조화를 생각하며 행복하게 살라”고 말했다. 그리고 “원형과 네모의 결합은 어디에나 있다. 경복궁 경회루의 바깥기둥은 네모나지만 그 안쪽은 둥근 기둥이 받치고 있고, 첨성대는 아래는 둥글지만 맨 위는 네모로 돼 있다”고 ‘썰’을 풀었다. 이어 “예전엔 엽전을 공방(孔方)이라고 했다. 그러니 돈도 많이 벌어라. 공씨와 방씨는 흔한 성이 아니다. 아이도 많이 낳아라” 운운했다. 주문도 참 많은 주례다.

결국 ‘방’자 때문에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건데, 인격을 갖추지 못하면 아무리 돈 많고 지위가 높아도 대방이라고 할 수 없다. ‘대빵’이라는 속어도 비슷한 어감을 담고 있다. 타고난 천분은 어쩔 수 없다 치고 노력을 해서라도 대방가가 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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