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론] 기재부 관료들과의 대화, 그리고 8개월

입력 2014-12-23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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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대인 선대인경제연구소장

올해 봄 기획재정부 담당 관료들 10여 명을 대상으로 주택시장과 가계부채 문제의 위험성에 대해 세미나를 진행한 적이 있다. 1시간 정도 설명과 질의 응답을 진행한 뒤 나도 물어보았다. “제가 설명드린 대로 지금과 같은 ‘빚 내서 집 사라’는 식의 정책 기조로 가면 단기적으로는 괜찮은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길게 보면 오히려 더 위험해진다고 봅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정말 괜찮다고 보는 겁니까?”

잠시 반응들이 없다가 그 중에 한 관료가 답변했다. “소장님은 경제를 너무 정태적으로 보시는 것 같습니다. 경제는 역동적이잖아요. 부동산시장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면서 미국 경기 회복 등에 따라 수출이 는다든지 하면 가계소득이 따라 늘면서 점진적으로 부동산 가격과 가계부채의 상대적 크기가 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저희는 그런 방향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 관료는 “기대하고 있다”라고 표현했지만, 실은 기도하고 있는 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다시 답변했다. “경제를 정태적으로 보지 않으니까 위험성을 경고하는 겁니다. 경제가 정태적이라면 지금의 부채 문제는 언제나 관리할 수 있는 수준이겠죠. 하지만 금리가 오르거나 현재의 재벌독식 구조나 부동산 거품 구조 때문에 가계소득이 늘지 않고, 엔저 등으로 수출 대기업들의 경쟁력마저 떨어지면 어떻게 될까요. 경제를 역동적이라고 보기 때문에 문제가 심각해질 수 있다는 겁니다.”

짧은 토론은 거기에서 끝났다. 혹시라도 하는 생각에 요청에 응하기는 했으나, 정부 정책의 큰 변화를 기대하지는 않았다. 다만 당장의 정책 변화는 없더라도 혹시라도 일이 잘못될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더 염두에 두길 바랐을 뿐이다. 안테나를 세우고 있으면 상황 변화에 따라 조금은 더 빨리 위기의 조짐을 알아챌 수 있을 테니까. 다만, 현재까지는 그냥 헛수고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로부터 이미 8개월 여가 지났다. 그 동안 미국은 양적완화 종료를 선언했고, 이제는 내년 4월 이후로는 금리 인상에 나설 가능성도 열어놓았다. 미국 경제는 비교적 건실하게 회복되고 있으나 대미 수출이 느는 효과는 거의 없고, 금리 인상 리스크만 커지고 있다. 그렇다고 미국을 제외한 다른 경제권의 상황이 긍정적인 건 아니다. 우리의 최대 수출국인 중국의 경기 하강이 가파르다. 유럽은 디플레 가능성마저 제기될 정도로 경기 악화가 심각하다. 엔저 흐름이 더욱 강화되면서 가뜩이나 실적이 악화된 국내 대표 수출기업들의 입지는 더욱 좁아졌다. 유가 하락과 크림반도 합병을 둘러싼 국제정치 역학이 작용하고 있다고는 하나 이미 러시아가 경제위기의 사정권에 들어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도 무식한 건지, 무모한 건지 ‘아베노믹스’를 따라한다는 최경환 부총리 체제 아래에서 이 정부는 결국 주택대출 규제도 풀어 제쳤다. 그 결과 일시적으로 부동산 가격이 약간 반등하기는 했으나 가계부채는 다시 급증했다. 2금융권의 고금리 대출이 저금리 대출로 바뀌어 대출 건전성이 높아진다는 정부 주장은 공염불이고, 1금융권과 2금융권의 대출이 동시에 급증했다. 경제는 여전히 역동적으로 변하고 있으나, 그 변화 방향은 기재부 관료가 말했던 방향이 아니라 내가 경고했던 방향에 가깝다.

이런 가운데 이제는 최근 국내외 곳곳에서 가계부채 문제를 경고하는 신호음이 들리고 있다. OECD와 월스트리트저널, 한국개발연구원, 입법조사처 등 다양한 국내외 기관과 언론들이 경고와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그런데도 정부는 계속 괜찮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8개월이 지난 시점에서 그 관료에게 다시 묻고 싶다. 아직도 가계부채 문제가 괜찮다고 기대(또는 기도)하고 있는지. 여전히 큰 기대는 안 하지만, 지금이라도 제발 자신들이 기대하는 방향으로 경제가 움직이지 않을 가능성에 대비하기를 바랄 뿐이다. 그들의 오판으로 국민들이 입는 피해가 너무 크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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