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인터넷 전문은행’과 ‘인터넷 전용은행’

입력 2015-01-14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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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 연구위원

인터넷 전문은행 도입이 논의되고 있다. 흔히 ‘OO 전문’이라고 하면 특정 분야에 충분한 경험을 축적해 질적으로 한층 발전된 서비스를 기대하게 된다. 하지만 인터넷 전문은행이 제공하는 서비스는 현재 은행이 제공하고 있는 ‘인터넷뱅킹’의 업무 범위를 사실상 벗어날 수 없다. 즉 인터넷 전문은행의 도입으로 기존과는 다른 특화된 서비스가 제공되는 것이 아니라, ‘영업점 없이 인터넷뱅킹만 가능한’ 은행이 탄생함을 의미하며, 이마저도 도입 초기에는 기존 인터넷뱅킹 서비스의 일부 영역만 제공될 것으로 보인다. 실제 미국 연방예금보험공사(FDIC)는 보고서에서 인터넷 전문은행을 ‘Limited-Purpose Banks’로 분류해 그 성격이 ‘전문화된 서비스 제공’이라기보다 기존 은행과 비교해 ‘제한적인 기능’만 하는 은행임을 명확히 했다. 이러한 견지에서 국내에 도입하려는 것은 인터넷 전문은행이 아니라 ‘인터넷 전용은행’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인터넷 전용은행은 오프라인에 영업점(점포)이 없다. 그렇다면 현재 은행 영업점에서는 어떠한 거래가 이뤄지고 있는가. 계좌 신규 개설 시 본인 확인, 또 은행마다 차이는 있으나, 계약 해지 및 환급, 비밀번호 변경이나 거래 취소 등 중요 금융거래가 영업점에서 가능하다. 또 고령의 고객 등 일부 인터넷을 하기 어려운 계층은 모든 업무를 영업점에서 처리한다. 대면 채널에서 정확한 본인 확인 없이 온라인 거래만으로 계좌를 만드는 것이 가능해지면 대포통장 개설은 더 쉬워질 것이고, 나아가 금융실명제의 취지가 일부 훼손될 우려도 있다.

국내에 인터넷뱅킹이 도입된 지도 15년이 흘렸다. 그동안 관련 금융사고 등 숱한 신산(辛酸)을 겪으며, 한국은 인터넷뱅킹 고객 1억명(은행별 중복가입 합산) 시대라는 성장도 이뤄냈다. 시중은행은 부족하나마 인터넷뱅킹 고객의 사용 편의성을 개선하고자 애를 써왔고, 인터넷에서만 판매하고 거래되는 인터넷 전용상품도 수없이 출시했다. 그렇다면 인터넷 전용은행의 사회적 순기능은 무엇일까?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의 인터넷·모바일뱅킹 이용률을 자랑하는 한국에서 기존의 인터넷뱅킹 서비스와 다르지 않은 인터넷 전용은행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결국 시장의 신규 진입 증가로 인한 은행 간 경쟁 촉진으로 고객에게 돌려주는 혜택을 늘려보겠다는 것이겠다. 옳은 취지다. 다만 인터넷 전용은행 도입이 결과적으로 대기업의 우회적 은행업 진출 통로가 될 수 있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금산분리에 대한 해묵은 논쟁은 논외로 하더라도 한국 경제에 지대한 영향력과 높은 비중을 갖고 있는 재벌의 은행업 허용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아직 형성되지 않았다는 점은 비중 있게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영업점의 지리적 접근성과 인구 밀도, 은행업의 특성 등 제반 여건이 다른 해외 사례를 그대로 적용하기보다는 국내 실정에 맞게끔 탄력적으로 해석하려는 시각이 필요할 것이다.

최근 미국의 인터넷 전용은행 ‘심플’(Simple)이 전산 시스템의 업그레이드 이후 고객별로 설정해 놓은 자동이체 일자가 삭제되거나, 실시간 계좌 조회 시 잔고가 실제 금액과 일치하지 않은 전산 오류가 발생해 고객의 불편이 속출했다. 기업이 충분한 기술과 경험 축적 없이 인터넷 전용은행을 시작할 경우 어디서든 발생할 수 있는 일이다. “왜 여태 한국에는 인터넷 전문은행이 없느냐”고 재촉하는 금융 소비자를 아직까지 접해 보지 못했다. ‘인터넷 전문은행’이건 ‘인터넷 전용은행’이건 그것이 제공하는 서비스가 ‘인터넷뱅킹’이라는 이름으로, 이미 생활의 일부가 되었기 때문은 아닐까? 인터넷 전용은행의 도입이 고객의 이익보다는 대기업의 이익이나 전시(展示) 행정을 위한 것이 아니냐는 일각의 우려를 불식시키려면, 보다 차분하고 냉정한 다각도의 검토가 필요하다. 인터넷 전용은행 허용의 큰 흐름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하지만 성급하게 추진하기보다 그 도입 취지와 지향하는 바가 ‘인터넷 전문은행’인지 아니면 ‘인터넷 전용은행’인지부터 명확히 해야 할 것이다. 관련된 향후 중장기 추진 로드맵이 투명하게 공유되고, IT 보안 등 우려되는 이슈에 대한 각계의 밀도 있는 논의가 필요함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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