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철순의 즐거운 세상] 어이, 아베 신조 상, 꿇어!

입력 2015-01-23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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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필 겸 미래설계연구원장

지난해 12월 대한항공 조현아 전 부사장이 사무장과 승무원을 무릎 꿇리고 마구 혼낸 뒤부터 괜히 내 무릎이 시린 것 같다. 옛날부터 찬바람이 불면 어르신들은 무릎이 시리다고 했는데, 나도 가끔 어르신 소리를 듣게 된 데다 조씨가 계절과 함께 찬바람을 몰고 왔으니 무릎이 시린 게 당연하지. 재수 없이 누군가에게 잘못 걸려 무릎 꿇고 싹싹 빌어야 할지도 모르잖아?

요즘 이런 우스갯소리가 있다. 대한항공의 기내 안내방송-. “승객 여러분, 이 비행기에는 조현아 부사장님께서 탑승하지 않으셨으니 안심하시고 즐겁고 편안한 여행을 하시기 바랍니다.” 조현민 전무가 언니를 위해 “반드시 복수하겠어”라고 한 사실이 알려진 뒤에는 이런 말이 추가됐다지, 아마? “조현민 전무님도 탑승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저희 항공사는 앞으로 복수 왕복 항공권만 팔기로 했음을 알려드립니다.”

‘땅콩회항’ 이후 백화점에서, 어린이집에서 손님이 종업원을 무릎 꿇리거나 어린이집 원장이 무릎을 꿇는 ‘무릎사건’이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 인천 어린이집의 아이들은 친구가 보육교사에게 맞는 걸 보고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무릎을 꿇고 조용히 앉아 있었다. 구속된 폭행 교사는 경찰에 끌려갈 때 “무릎 꿇고 사죄한다”고 말했다.

시인 이육사는 ‘절정’이라는 시에서 ‘어디다 무릎을 꿇어야 하나/한 발 재겨 디딜 곳조차 없다’고 했다. 피해 갈 수도 없고 도움을 청할 수도 없는 극한적 상황이다. 이 시로 이육사의 무릎은 문학사의 중요한 자산이 됐는데, 무릎을 꿇은 사람들은 바로 그런 처지에 빠진 것이다.

프랑스 영화에 ‘클레르의 무릎’이라는 게 있다. 외교관이자 작가인 제롬은 결혼을 한 달 앞두고 피서지에서 여성 작가 오로라와 재회한다. 그녀가 빌린 집에 머무는 동안 제롬은 집 주인의 두 딸 중 클레르라는 열일곱 살 소녀의 무릎을 만지고 싶다는 욕망을 강하게 느낀다. 어찌어찌해서 결국 무릎을 만지는 데 성공한 제롬은 마음의 안정을 찾아 떠나간다. ‘무릎과 무릎 사이’에는 별 관심이 없고 무릎만 노리는 참 별난 아저씨의 별 싱거운 이야기 같은데, 하여간 이것도 무릎의 중요성을 알려준다.

인체 해부학에 무릎 또는 슬관절은 넙다리뼈와 정강이뼈를 잇는 다리 관절이라고 정의돼 있다. 무릎은 인체의 거의 모든 무게를 지탱하는 중요한 부위이고 갑작스러운 상처에 가장 취약한 곳이다. 그런 무릎을 꿇는 것은 항복과 사죄의 표시다.

빌리 브란트(1913~1992) 전 서독 총리는 1970년 12월 7일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의 유대인 위령탑에 헌화할 때 무릎을 꿇고 묵념하며 2차 세계대전 당시 희생된 유대인들에게 사죄했다. 당시 언론은 “무릎을 꿇은 것은 한 사람이지만 일어선 것은 독일 전체였다”고 평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무릎 꿇기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때 아키히토(明仁) 천황은 무릎을 꿇고 피해자들을 위로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19일 이스라엘 예루살렘의 홀로코스트 추모관을 찾아 헌화했다. 그러나 그는 한국인 희생자들은 여전히 외면하고 있다. 과거사 반성에서 독일과 일본은 너무도 판이하다. 빌리 브란트의 무릎을 잘 기억하는 나는 요즘 무릎 꿇는 사건을 지켜보면서 이렇게 말하고 싶어졌다. “어이 아베, 아베 신조 상, 꿇어! 광복 70년, 일본인들 말로는 종전 70년이니 무릎을 꿇을 좋은 기회 아닌가? 천황처럼 해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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