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4월이다. 꽃보라가 흩날리고 목련이 피어서 등불로 돋아나고, 여자들도 피어서 웃음소리가 공원에 가득하다. 생명의 아름다움은 본래 스스로 그러한 것이어서 사람이 입을 벌려 말할 필요는 없을 터이지만, 지난해 4월 꽃보라 날리고 천지간에 생명의 함성이 퍼질 적에 갑자기 바다에 빠진 큰 배와 거기서 죽은 생명들을 기어코 기억하고 또 말하는 것은 나의 언설로 여론에 영향을 미치려는 허영심 때문이 아니라 내가 아직도 살아 있기 때문이다. 나는 단지, 겨우 쓴다. 늙은이의 춘수(春瘦)는 어수선하다.
새벽의 꿈에, 배 빠진 맹골수로에도 4월이 와서 봄빛이 내리는 바다는 반짝이는 물비늘에 덮여 있었다. 그 바다에서 하얀 손목들이 새순처럼 올라와서 대통령의 한복 치맛자락을 붙잡고, 친박 비박 친노 비노 장관 차관 이사관들의 바짓가랑이에 매달려 우는데, 바짓가랑이들은 그 매달리는 손목들을 뿌리치고 있었다. 그 바다는 국가가 없고 정부가 없고 인기척이 없는 무인지경이었다. 손목들은 사람 사는 육지를 손짓하다가 손목들끼리 끌어안고 울었다. 나는 식은땀을 흘리며 기진하였다.
모란이 뚝뚝 떨어져버린 5월에 김영랑(金永郞·1903~1950)은 모란이 다시 피는 5월을 기다리듯이 나는 생명들이 바다 밑으로 뚝뚝 떨어져버린 4월에, 앞날에 다시 올 4월을 기다리면서 나의 악몽을 달래고 있다. 그러하되 그 새로운 4월은 봄이 오듯이 꽃이 피듯이 날이 흐려서 비가 오듯이 저절로 오지는 않는다는 것을 내가 모르지 않는다.
풍랑이 없는 바다에서 정규 항로를 순항하던 배가 갑자기 뒤집히고 침몰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는데, 그 원인과 배경이 불분명한 사태는 망자(亡者)의 죽음을 더욱 원통하게 만들 뿐 아니라 살아 있는 모든 사람들의 삶을 공허한 것으로 만든다. 망자들이 하필 불운하게도 그 배에 타서 죽음을 당한 것이라고 한다면, 살아 있는 모든 사람들의 삶은 아무런 정당성의 바탕이 없이 우연히 재수 좋아서 안 죽고 살아 있는 꼴이다. 삶은 무의미한 우연의 찌끄레기, 잉여물, 개평이거나 혹은 이 세계의 거대한 구조 밑에 깔리는 티끌처럼 하찮고 덧없다. 이 사태는 망자와 미망자(未亡者)를 합쳐서 모든 생명을 모욕하고 있고, 이 공허감은 참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삶이 우발적이라는 공허감, 보호받을 수 없고 기댈 곳 없다는 불안감은 사람들의 마음을 허무주의로 몰아가고, 그 집단적 허무감은 다시 정치적 공략의 대상이 되고 있다.
세월호 침몰의 원인이 선박 불법증축, 과적, 고박(固縛) 불이행, 평형수 부족, 급변침 등이었다는 정부의 조사결과 발표는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이것은 결국 아르키메데스의 원리를 무시했기 때문에 배가 빠졌다는 것이다. 밥을 굶으면 배가 고프고, 심장이 멎으면 사망에 이른다는 말이다. 이 사태가 선박의 복원력을 검증하는 물리실험이라면, 정부의 발표는 나무랄 데 없이 옳을 것이다. 그러나 이 사태는 물리실험이 아니다. 이 사태는 한 시대 전체의 도덕적 침몰과 국가기능의 파탄이다.
세월호가 바다에 빠진 지 1년이 되지만 특별조사위원회는 정부가 입법예고한 시행령에 가로막혀서 실무 조직을 구성하지 못하고 기능은 작동되지 않고 있다. 작년 하반기에 ‘특별법(2014.11.19 공포)’이 국회에서 입법되는 과정에서 여야 정치권의 리더십은 파탄되었다. 이 파탄은 이미 침몰한 세월호가 다시 물속으로 끌어들인 제 2의 침몰이라고 할 만하다. 정부와 여야의 정치력은 진실을 밝혀서 분노와 슬픔을 조정하는 데 무력했고, 자신들의 존망과 안위를 챙기는 사활의 생존술로 중원무림(中原武林)을 할거했다. 이 ‘특별법’의 입법과정은 사태의 진상을 규명해서 ‘안전사회 건설’의 발판으로 삼으려는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리더십이 작동된 것이 아니고, 이 비극이 몰고 올 무서운 파괴력의 폭심(爆心)으로부터 도망치고 벗어나려는 정치세력들이 국민과 유족들의 아우성에 몰려서 막다른 골목에 부딪치자 강고한 보호벽으로 자신들을 방호하면서 탈출구를 뚫어내는 방식으로 전개되었다.
그 결과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는 수사권, 기소권이 없이 조사권만을 갖는 한시적 기구로 발족되었다. 게다가 정부가 3월 27일 입법예고한 시행령에 따르면 위원회의 조사권의 영역은 정부가 이미 시행해서 발표한 결과를 분석하고 재조사하는 범위로 국한되었다. 그리고 조사 실무를 지휘감독하는 실무 부서장과 그 휘하 직원들은 모두 행정부가 시한부로 파견하는 공무원들로 충원하게 되어 있다.
이 시행령대로 위원회가 작동된다면 위원회는 정부의 조사결과를 추인하거나 거기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을 뿐, 사태의 핵심부와 주변부, 심층부와 수뇌부를 향해 기획력 있는 조사를 수행할 도리가 없고, 다만 해양수산부의 하부 조직으로 전락해서 사태를 뒤치다꺼리하고 유족들의 분노와 슬픔과 요구사항을 상대해야 하는 정부의 곤욕을 대신하는 바람막이가 될 것이 뻔하다. 이것은 국민이 원하는 ‘위원회’가 아니다. 이것은 ‘조사권’이 아니다. 이것은 정부 합동의 허수아비다. 이석태 특별조사위 위원장과 유가족들은 이 시행령을 거부했고 위원회는 작동 불능이 되었다.
‘시행령’을 들여다보면 이 사태에 대한 정부의 두려움이 얼마나 크고 근원적인 것인지 알 수 있다. 사태 초기에 정부는 우선 어쩔 줄 몰라서 갈팡질팡했는데,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사태의 심층에 대한 두려움은 점차 노골화되었고, 그 두려움은 다시 그 사태로부터 달아나려는, 권력 방어적인 비겁함으로 발전했고, 그 두려움과 비겁함을 이번에 ‘시행령’으로 명문화해서 입법예고하였다. 이렇게 해서, 지난해 4월에 남해바다 맹골수로에서 온 부고는 수취인 불명으로 팽목항에 되돌아갔으니 탈상(脫喪)의 날은 아직도 멀었고 유족들은 광화문과 팽목항에 모여 농성을 계속하고 있다. 그리고 다시 4월이 왔다.
거칠게 말해서, 나는 세월호 참사의 발생과 추이를 3단계로 나누어서 이해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의 제 1사태는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이후 이 나라에 쌓인 적폐(積弊, 나는 이 말을 대통령에게서 배웠다)가 세월호를 침몰시키기까지의 70년에 가까운 세월이고 세월호 참사의 제 2사태는 2014년 4월 16일 세월호가 침몰한 이후 그해 11월 7일 세월호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하기까지의 7개월간이고 세월호 참사의 제 3 사태는 ‘시행령’ 이후 위원회의 활동과 인양이 논의되는 미래의 시간인데, 이 3개의 국면은 서로가 서로의 배경이며 원인으로 맞물려 있다. 그리고 제 2사태는 제 1사태에 잇닿은 또 다른 침몰이고, 제 3사태도 지금 위태롭게 기울어 있다.
이 나라의 돈은 오래전부터 가치의 저장이나 측정, 교환, 유통, 지불, 결제의 수단을 넘어서서 인간과 세계를 지배하는 권력으로 군림하고 있다. 돈의 위상은 법의 보호를 받고 돈의 작동은 시장경제의 축복을 받는다. ‘보이지 않는 손’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채찍’을 휘두르는 이 권력의 지배는 완벽하고도 철저해서 그 지배권으로부터의 이탈은 곧 죽음이다. 그래서 이 나라의 돈은 화폐라기보다는 알파벳 대문자를 써서 DON으로 표기해야만 그 유일신다운 전능의 위상에 합당할 것이다.
세월호를 침몰시킨 70년에 가까운 적폐는 이 DON과 거기에 붙좇는 정치권력과 행정권력의 연합세력이라는 사실의 흐린 윤곽은 이미 드러나 있다. 그 연합세력이 어떤 인적, 행정적 지휘-복종과 공생의 네트워크를 통해 그 배에 작동되어서 감히 아르키메데스의 원리를 깔아뭉갰던가를 시대사 전체 속에서 밝히는 것이 정부의 통상적인 업무기능 안에서는 불가능하다면 특별조사위원회를 만들어서 밝혀야 한다는 쪽으로 국민들의 뜻이 모아졌고, 국회는 파행을 거듭한 끝에 매우 허약한 권한만을 부여한 위원회법을 통과시켰는데, 정부가 다시 시행령으로 그 기능을 박탈하고 있으니 정부는 대체 무엇이 그토록 무섭고, 그 두려움의 실체는 무엇이란 말인가.
한국국민들은 오랜 세월동안 정치권력에 속아왔다. 불신은 사람들의 정치정서 속에서 허무주의로 자리 잡았고, 그 허무주의는 일상화된 악(惡)이 서식하는 토양이 되었다. 세월호 참사는 난데없이 들이닥친 재앙이 아니라, 그 일상화된 악의 폭발인 것이다. 우리는 고통을 분담함으로써 시대의 난제를 극복해본 역사적 경험이 전무하거나 매우 빈곤하다. 고통은 늘 고통을 당하는 계층에게 전가되었고 기회와 정보와 우월적 지위는 늘 강하고 러키한 자들의 몫이었다. 이 불신과 고통분담에 대한 역사적 경험의 빈곤이 당면한 문제의 해결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는데, 정부가 제시한 이 무력하고 자기방어적인 ‘시행령’은 갈등과 불신에 기름을 부어서 불을 붙이는 꼴이다.
지금 정부는 공적 개방성을 상실하고 자장면협회나 상가번영회처럼 사인(私人)의 이익집단 같은 모습을 국민들에게 보이고 있다. 세월호 참사 이후 몇몇 고위 관리들이 문책 경질된 것은 책임을 지는 행위가 아니다. 고위 공직의 자리가 개인의 사유재산이 아니고, 잘나가는 공무원의 물 좋은 취직자리가 아니며, 천하의 공물(公物)일진대 그 자리를 내놓는 것이 어떻게 사태를 책임지는 일이 될 수 있단 말인가. 책임을 진다는 것은, 지게꾼이 지게를 진다는 말이 아니다. 자리를 내놓고, 감옥에 가고, 할복을 하고 분신을 해서 지옥에 간들 이미 그 해악이 세상에 퍼져버린 사태에 대해서 책임을 질 수는 없다. “책임을 진다”는 행위는 사실상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는 말은 쫓겨났다는 뜻이고, 그 쫓겨남으로써 아무것도 책임지지 못한다. 그것은 무의미한 빈말이다. 그 공허함은 “세월호는 아르키메데스의 원리를 무시했기 때문에 침몰했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그것은 틀린 말이 아니로되, 하나마나한 말이다. “기업이 해고를 자유롭게 할 수 있어야 청년실업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라는 말도 모두 그러한 것인데, 그 명석함에 가려진 폭력성이 세상의 강자로 행세하고 있다.
지난해 6·4 지방선거와 7·30 재·보선에서 여당의 세력이 커지자 이 비극적 사태에 오래 매달려 있는 것은 경기부양과 경제발전에 장애가 된다는 논리가 언론의 중심부로 진출했다. 이 경제논리 역시 맞는 말이로되 하나마나한 말이고, 명석성으로 폭력을 위장하고 있다.
주어와 술어를 가지런히 조립하는 논리적 정합성만으로는 세월호 사태를 이해할 수도 없고 진상을 밝힐 수도 없을 것이다. 또 이 사태를 객관화해서 3인칭 타자의 자리로 몰아가는 방식으로는 이 비극을 우리들 안으로 끌어들일 수가 없다. 나는 죽음의 숫자를 합산해서 사태의 규모와 중요성을 획정하는 계량적 합리주의에 반대한다. 나는 모든 죽음에 개별적 고통의 지위를 부여하는 것이 인간의 존엄에 값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생명과 죽음은 추상개념이 아니다. 그것은 회복이 불가능하고 대체가 불가능한 일회적 존재의 영원한 소멸이다.
그래서 한 개인의 횡사는 세계 전체의 무너짐과 맞먹는 것이고, 더구나 그 죽음이 국가의 폭력이나 국가의 의무 불이행으로 비롯된 것이라면 이 세계는 견딜 수 없는 곳이 되고 말 것인데, 이 개별성을 인정하지 못하는 체제가 전체주의다. 이 개별적 고통에 대한 공감이 없다면 어떤 아름다운 말도 힐링이 되지 못하고 경제로 겁을 주어도 탈상은 되지 않는다.
국가개조(國家改造! 나는 이 말도 대통령에게서 배웠다)는 안전관리와 구조구난의 지휘부와 조직을 재조립하는 것이 아니라, 뉘우침의 진정성에 도달함으로써만 가능할 것이다. 개인이나 국가나, 이미 존재하고 있는 것들은 좀처럼 개조되지 않는다. 다만 뉘우침의 진정성 위에서 자신을 바꾸어 나갈 수 있다면 조금씩 앞으로 나아갈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그 자리에서 주저앉아서 뭉개다가 무너질 뿐이다.
중국 고대의 전국시대에 수많은 나라들이 멸망했다. 그 나라들은 대부분 반성하는 기능의 마비, 무책임, 무방비 때문에 망했고 여러 나라들이 줄줄이 망해가는 꼴을 보면서 그 뒤를 따라서 똑같이 되풀이하다가 망했다. 고통의 맨살, 죄업의 뿌리와 직면하기를 두려워한다면 우리는 뉘우침의 진정성과 눈물의 힘에 도달할 수 없을 것이다.
내가 젊어서 기자 일을 할 때 함석헌(咸錫憲·1901~1989)의 이름에 붙은 타이틀은 종교인도 철학가도 사상가도 아니었다. 그의 타이틀은 반체제인사였다. 그 반체제인사가 말했다.
-눈에 눈물이 어리면 그 렌즈를 통해 하늘나라가 보인다. 사람은 고난을 당해서만 까닭의 실꾸리를 감게 되고 그 실꾸리를 감아가면 영원의 문간에 이르고 만다(‘뜻으로 본 한국역사’, 1977. 한길사 444쪽).
쓰기를 마칠 때 정부가 세월호 선체를 인양키로 했다는 뉴스가 나왔다. 이 사태를 둘러싼 정치적 조건들을 제거하고 진실의 실체를 드러내는 것만이 문제의 해결책이다. 정치력으로 정치를 제거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 어려운 길을 우리는 가야 한다. 선체 인양이 이 사태의 희망적 국면을 열어가기 바란다.
소설가, 자전거 레이서. 1948년 서울 출생. 고려대 영문과 중퇴. 한국일보 시사저널 한겨레신문 기자생활을 거쳐 마흔 넘어 소설 집필 시작. 장편 ‘칼의 노래’ ‘현의 노래’ ‘남한산성’ ‘흑산’, 소설집 ‘강산무진’, 산문집 ‘선택과 옹호’ ‘자전거여행 1·2’ 등. 동인문학상 이상문학상 황순원문학상 대산문학상 등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