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극비수사’ 곽경택 감독 “30년 전 이야기, 영화보다 더 영화 같아”

입력 2015-06-30 09:47 수정 2015-06-30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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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극비수사’의 곽경택 감독이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이투데이와의 인터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신태현 기자 holjjak@)

영화 ‘극비수사’(제작 제이콘컴퍼니, 배급 쇼박스)는 곽경택 감독의 진가를 제대로 보여줬다는 점에서 또 다른 의미가 있다. ‘친구’ ‘똥개’ ‘태풍’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등에서 표현된 ‘곽경택표’ 선 굵은 연출은 ‘여아 유괴 사건’이라는 무거운 소재마저도 마음대로 주무르는 힘을 가졌다.

곽경택 감독의 ‘흥행 본능’도 유효했다. ‘극비수사’는 30일 현재 누적 관객 수 225만명(영진위 통합전산망 기준)을 돌파하며 ‘쥬라기 월드’ ‘연평해전’과 함께 극장가 흥행을 주도하고 있다.

최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곽경택 감독은 “착하고 따뜻한 영화 한 편을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기술적인 면에서 좋은 편집자를 만난 것이 큰 행운이었다. 또 후반 작업에 여유가 있었다. 연출 쪽은 김윤석, 유해진이라는 단단한 연기자가 있었으니 믿을 수 있었다. 조연 캐스팅에도 공을 많이 들였다. 좋은 연기자들의 호흡을 빨리 끌어내 관객의 집중력을 잃지 않는 고정된 효과를 얻어냈다. 나름대로 미술적으로 화면 구성에 에너지를 썼고, 그런 부분들이 영화가 촘촘하게 보이는 힘이 됐다.”

▲영화 ‘극비수사’의 곽경택 감독이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이투데이와의 인터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신태현 기자 holjjak@)

실제 ‘극비수사’의 사실적인 시대상 구현은 큰 화제를 모았다.

“품삯이 많이 든다. 원래 예식장이었던 부산 특수 수사본부는 극장으로 옮겨 향수를 불러일으켰고, 고속도로 톨게이트는 터널로 바꿔 차량을 공수했는데, 2000만원이 넘게 들었다. 자전거 도로를 지우기 위해 CG도 사용했다. 아파트 실외기를 제거하는데도 손이 많이 갔다. 거리의 느낌을 복원시키는데 애를 썼다.”

‘극비수사’는 1978년 부산에서 발생한 실제 유괴 사건을 다룬다. 등장인물인 공길용(김윤석) 형사와 김중산(유해진) 도사 역시 실존 인물이다. 실화의 영화화는 언제나 부담스럽다. 유괴 사건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신인감독이 찾아갔다면 영화 만들었겠나? 그래도 영화 몇 편 만든 제가 찾아가서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30년이 지난 오래된 이야기다. 공길용 형사가 영화를 보고, ‘제주도까지 나를 찾아와 만난 것이 운명인가보다’라고 했다. 김중산 도사는 ‘신세 갚았다’는 말을 하더라.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이야기다. 그래서 더 좋았다.”

(사진제공=쇼박스)

‘극비수사’는 아이를 찾아가는 기본 골자 외에도 우리 사회에 뿌리 깊게 박혀 있는 비리를 꼬집는다.

“무엇인가 밝힌다는 것은 누군가가 힘들어질 수도 있다. 영화 속에서 공을 가로챘던 분들은 30년 전 경찰이다. 이미 현직을 떠났거나 돌아가신 분들도 있어 털어놓기 편했다. 적당한 시점에 적당하게 오픈했다. 실화에 충실했지만 각색은 조심스러웠다. 원래 가지고 있던 진실함, 무게감이 좋아서 정서적인 핵심 요소를 되도록 표현하려고 했다.”

‘극비수사’의 수많은 명장면, 명대사 중 김중산 도사의 “지금 제게 남은 건 단 하나, 소신”이라는 말은 많은 관객에게 메시지가 되어 다가왔다.

“‘소신’이라는 대사는 그저 영화에 묻혀갔으면 했다. 영화가 가르치려고 하면 보기 싫다. 후반부에는 원했던 영화적 메시지가 잘 그려졌다. 이 영화를 만들게 된 이유가 강하게 들어가 있다. 사건을 따라가다가 진한 연기 한 번 보고, 마지막에 황당하고 씁쓸하지만 따뜻하게 마무리하면 된다.”

▲영화 ‘극비수사’의 곽경택 감독이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이투데이와의 인터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신태현 기자 holjjak@)

‘극비수사’의 강점은 한국 정서에 잘 부합한다는 것이다. 어쩌면 할리우드에서는 통하지 않을 수 있는 이 영화가 국내 관객의 공감대를 얻기엔 더할 나위 없이 적합하다. 사주(四柱)로 범인을 잡는다는 소설 같은 이야기는 공길용 형사, 김중산 도사 등 인물에게 초점이 맞춰지며 더욱 생동감 있게 전개된다.

“이번 영화는 두 사람에 포커스를 맞추고, 우리나라 부산에 살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으려 노력했다. 기본에 충실할수록 성공 확률은 높다. 사람도 영리한 사람보다 좋은 사람이 어려움을 딛고 잘해냈을 때 인정받는다.”

‘극비수사’는 종종 ‘살인의 추억’(2003)과 비교됐다. 그만큼 한국 수사극의 진화를 일궜다는 호평을 받았다.

“‘살인의 추억’을 재밌게 봤던 기억이 있다. ('극비수사'에서) 범인을 잡고 싶고, 아이를 찾고 싶다는 절실함이 잘 표현됐기 때문에 '살인의 추억'이 연상됐다. 사실 영화를 만들 때 참고로 한 영화는 줄리아 로버츠 주연의 ‘에린 브로코비치’(2000)다. 미국의 어느 마을에서 일어났던 오염 물질 유출 사건을 끝까지 파헤쳐낸 여자의 이야기다. 이야기가 어두운데도 불구하고 밝게 그렸고 엔딩도 따뜻하게 끝난다. 시나리오를 주면서 ‘에린 브로코비치’를 추천했다.”

(사진제공=쇼박스)

흥행 감독에게는 작품성이, 작품성 위주의 감독에게는 흥행성이 요구된다. 흥행성과 작품성의 동시 충족은 모든 감독이 안고 있는 딜레마이자 숙제다.

“항상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한다. 지상과제인데 참 쉽지가 않다. 둘 중에 무엇이 더 우선인지는 말 못하겠다. 상반된 자석의 양극과 같은 것이다.”

곽경택 감독은 인터뷰 말미 감독의 고충을 묻자 사람 좋은 웃음과 함께 답변을 남겼다. 그 안에는 누구보다 강한 열정과 뚝심, 프로 의식이 묻어 있었다.

“영화 한 편 만드는데 감독이 결정하는 것이 2만 가지 정도 되더라. 어차피 그게 감독의 몫이다. 그게 힘들다고 하면 (감독을) 안 해야 한다. 조지 루카스 감독은 현장에 의자를 놓지 않는다. 감독이 앉을 시간이 어디 있느냐고 의자를 없앴다. 감독의 치열함과 부지런함은 장난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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