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경아의 라온 우리말터] 아양 떠는 딸, 어리광 부리는 아들

입력 2015-07-28 11:20 수정 2015-07-29 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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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 시인 김용택의 어머니는 몸집이 작고 야무져서 박덕성이라는 본명보다 ‘양글이’로 불렸다. 어느 날 고등학교 기성회비를 내지 않아 집으로 돌려보내진 아들에게 어머니는 닭을 판 돈을 쥐여 줬다. 그런데 닭 판 돈은 기성회비와 아들이 학교까지 갈 수 있는 차비가 전부. 어머니는 빈 망태를 멘 채 땀을 뻘뻘 흘리며 “차 간다. 어서 가거라”라고 손을 흔들었다. 점심도 굶은 어머니다.

“나는 돈을 꼭 쥔 주먹을 흔들었다. 어머니가 나를 바라보았다. 눈물이 앞을 가렸다. 먼지 낀 유리창이 더 흐려 보였다.(중략) 눈물을 훔치고 고개를 들어 차 뒤꽁무니를 바라보았다. 어머니가 뽀얀 먼지 속에서 자갈을 잘못 디뎠는지 몸이 비틀거렸다. 아! 어머니. 나는 돈을 꼭 쥐었다.”(김용택 ‘김용택의 어머니’ 중)

어머니의 자식 사랑에 가슴 먹먹했던, 그래서 기억에 강하게 자리한 대목이다. 친정엄마의 건강이 나빠져 형제들이 모였다. 급성 폐렴이란다. 간단없이 내리는 장맛비로 세상은 물론 가슴까지 젖었다. 장마철이면 엄마는 비에 갇힌 식구들을 위해 부침개를 부쳤다. 올해는 자식들이 엄마를 위해 감자를 갈고 부추, 애호박을 넣어 감자전을 부쳤다. 밭은기침 때문에 많은 양을 드시진 않았지만 엄마는 맛있다며 환하게 웃는다. 1980~90년대 인기 개그맨 심형래의 ‘바보 영구’ 흉내로 더 큰 웃음을 안겨 드렸다. “엄마, 얼굴살이 빠지니 달걀형이네. 할아버지들이 예쁘다고 막 쫓아오면 어떡하지~” 병원 생활로 감정 기복이 심해진 엄마를 위해 아양도 떨었다. 엄마는 두 아들에게도 아양을 떨어 보라고 하셨다. 무뚝뚝한 오빠들은 웃기만 했다.

그런데 아양은 그 어떤 집 아들도 떨 수가 없다. 남자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말이기 때문이다. 물론 젊고 예쁜 여자만이 아양을 떠는 것은 아니다. 나이 든 여자, 못생긴 여자도 아양을 떨 수 있다. ‘아양 떨다’의 아양은 아얌이 변한 말이다. 아얌은 조선시대 때 양반가나 기생, 혹은 살 만한 집 여인들이 겨울철 나들이할 때 추위를 막으려고 머리에 쓰던 방한용 쓰개다. 한자로는 액엄(額掩)이다. 겉은 고운 털로 되어 있고 안은 비단을 덧댔다. 정수리 부분은 터져 있고, 이마만 두르게 되어 있다. 이마에서 눈썹 바로 위까지 빨간색의 수술 장식이 있고, 뒤쪽에는 비단 댕기처럼 넓적하고 기다란 ‘아얌드림’이 등허리 중간까지 화려하게 늘어져 있다. 요즘도 명절이나 결혼식 등 특별한 날 아얌을 쓰고 매력을 발산하는 여인을 볼 수 있다.

아얌을 쓴 여인이 걸음을 걸을 때마다 이마 부분의 술과 뒷부분의 아얌드림이 찰랑거리면 주위 사람의 시선이 집중된다. 이런 여인의 모습에서 귀여운 행동이나 말로 시선을 끄는 행위를 ‘아양 떨다’로 표현하게 된 것이다. ‘떨다’는 동작이나 성질을 나타내는 명사 뒤에 오면 ‘작은 폭으로 빠르게 반복하여 흔들리다’ 혹은 ‘그런 성질을 겉으로 나타내다’는 뜻이다. 미세하지만 계속되는 이미지를 안고 있다. 능청 떨다, 방정 떨다, 부산 떨다 등이 대표적인 용례다. 엄살떨다, 주접떨다, 궁상떨다, 기승떨다는 한 단어이므로 붙여 써야 한다.

자식들과 함께한 시간이 약(나의 바보 흉내가 큰 효과를 발휘했으리라)이 되었는지, 엄마는 사흘 만에 퇴원했다. 미국 하버드대 의과대학 정신과 전문의 낸시 도노번 박사는 외로움이 건강에 미치는 악영향에 대해 발표했다. 특히 노년의 외로움은 담배를 하루 15개비 피우는 것과 맞먹으며 운동을 안 하는 것보다 나쁘고 비만보다는 2배나 해롭다고 했다. 도노번 박사는 또 우울증세가 있는 노인은 그렇지 않은 노인보다 인지기능 저하 속도도 빠르다는 조사 결과를 밝혔다. 효도를 너무 거창하게 생각하지 말자. 부모님 옆에 가까이 있는 것이 효도의 첫걸음이다. 아양을 떨고 어리광을 부려도 좋다. 효도에 나중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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