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준의 말] 고향길 상념

입력 2015-10-06 10:00 수정 2015-10-06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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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준 국민대 행정정책학부 교수, 전 청와대 정책실장

나이가 들어서일까? 고향 다녀오는 발길이 점점 무거워진다. 서울로 돌아온 지 일주일이 넘었건만 추석 때의 상념들이 여전히 머리를 맴돈다.

논 한 마지기 농사에 남는 돈이 불과 20만~30만원, 벼농사는 이제 끝났다는 어느 친척의 푸념. 새로운 딸기 농사로 돈을 ‘제법’ 벌었다는 또 다른 친척의 성공담에, 무화과를 심어 ‘폭삭’ 망했다는 옆 동네 누구의 실패담. 여기에 다시 성공한 귀농, 실패한 귀농, 그리고 외국인 농업 노동자들 이야기까지.

잘살지는 못했지만, 마음은 늘 푸근했던 고향. 그때의 그 고향은 이제 없다. 돈ㆍ성공ㆍ실패… 시장 논리와 산업의 논리가 깊숙이 들어와 있다. 때로 농사인지, 투기인지 모를 위험도 감수해야 한단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 싫고 좋고를 말하는 게 아니다. 그저 마음 한쪽이 허전하다는 말이다.

어설픈 농촌정책의 흔적들도 마음을 복잡하게 한다. 차창 너머 보이는 어설픈 어메니티(amenity) 시설들, 그게 다 수억 원 수십억 원 들어간 것이란다. 동행한 누군가가 독백처럼 말했다. “여기다 왜 저런 시설을 하는 거야?”

불현듯 데이비드 스톡만(David Stockman)이 생각났다. 레이건 대통령 시절 백악관의 관리예산처장(Director, Office of Management and Budget)을 지낸 인물이다. 연방정부 예산을 총괄하던 그가 고향의 들판 한가운데 있는 테니스 코트를 가리키며 그를 취재하던 기자에게 말했다. “당신 돈이라면 저렇게 쓰겠어?”

언젠가 농촌 출신 중앙정치인 한 분이 항변하듯 말했다. “지방재정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데 현장을 보고 말씀하시는 거냐. 군에서 군민 1인당 쓰는 예산이 500만~600만원이다. 또 도가 직접 쓰는 게 200만~300만원이다. 우리 형편에 이게 작은 돈이냐? 뭘 더 줘야 한다는 거냐?” 쉽게 반박할 수 없었다. 지방자치가 제대로 안 되어서, 그래서 군과 주민들의 자주적 운영권이 약해서 그렇다는 말만 하고 말았다.

그래, 어쨌든 저 돈은 과연 누구를 위한 돈이었을까? 어디로 흘러 어디로 갔을까? 농촌과 농민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파고든 불합리와 비합리, 그리고 그 뒤의 정치경제적 이해관계… 대충의 그림이 그려졌다. 마음이 복잡해졌다. 결코 책임이 가볍지 않은 사람이라 더욱 그랬다.

청년들이 사라진 모습도 다시 한 번 마음을 무겁게 했다. 추석 연휴가 끝나고, 우리 모두 돌아가고 나면 다시 어떤 모습이 될까? 이 역시 얼마 전 이야기를 나눴던 탤런트 최불암 선생의 말이 생각난다. 그는 “‘한국인의 밥상’ 프로그램 때문에 시골 지역을 다닌다. 온통 노인들인데 때로 사람을 잡고 놓아주지를 않는다. 그만큼 다른 사람들과 서로 섞여 살고 싶다는 뜻 아니겠나. 이게 가슴 아프다.”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으로 옮겨진 ‘어르신들’의 모습은 더욱 안타깝다. 사회경제적 기능을 못 한 지는 이미 오래되신 분들, 이미 사람을 알아보지도 못한다. 오로지 죽음만을 기다리는 모습… 젊었을 때의 고운 모습과 당당함은 찾아볼 길이 없다. 인간으로서의 존엄마저 잃어가는 것 같다.

사람이 산다는 것이 무엇일까? 잘 죽는 것(well-dying)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어차피 끝이 있는 생명, 존엄을 유지하며 그 끝에 이르는 방법은 없을까? 늘 갖는 의문들, 고향 길에서 그 깊이가 한층 더해졌다.

저녁을 먹고 TV를 켰다. 세상은 여전히 도는 대로 돌고 있었다. 여야 지도부가 어쩌고, 청와대와 여당 대표의 갈등이 어쩌고… 화면에 익숙한 얼굴들이 비쳤다.

허~ 저들이 무엇을 할 수 있지? 잘못된 국가 운영 체제, 그리고 그 아래에서 표와 지지자들의 목소리를 따라가기에 바쁜 사람들. 나라가 어떻게 되든 이기기만 하면 된다는 사람들. 고향은 다녀왔을까? 갔다 왔다면 저들의 눈에는 무엇이 비쳤고, 그래서 무엇을 머리에 넣고 왔을까?

고향길 상념이 다 지워지지 않은 저녁, 이들의 존재는 그저 눈앞을 어지럽히는 가벼운 깃털 같았다. TV를 껐다. 차 한 잔을 챙겨 책상 앞에 앉았다. “그래, 못다 쓴 글이나 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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