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선거연대’의 추억

입력 2016-04-04 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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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곤 경희대 정외과 객원교수·전 국민일보 주필

제18대 국회의원 총선(2008년) 결과 여당의 지위를 회복한 한나라당은 153석을 얻었다. 여기에 친박연대의 14석과 친박무소속연대 12석까지 합하면 여권의 전과는 179석에 이르렀다. 반면 야권은 참패했다. 통합민주당은 81석, 민주노동당은 5석을 얻는 데 그쳤다. 자유선진당이 18석을 확보했지만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대선후보가 주도한 정당이라는 점에서는 오히려 여권 몫으로 분류될 것이었다.

그런데 2012년에 실시된 19대 총선에서는 야당이 대약진을 이뤘다. 새누리당(구 한나라당)이 과반인 152석을 얻었지만, 이것이 여권 의석 수 거의 전부였다. 반면 민주통합당(통합민주당의 후신)은 127석, 통합진보당(민주노동당의 후신)은 13석을 각각 확보했다. 자유선진당은 5석을 얻을 수 있었을 뿐이다. 주로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헌재가 위헌 정당이라고 해서 해산을 결정한 그 정당!)의 ‘선거연대’ 덕이었다.

특히 서울, 경기, 인천에서의 성과는 눈부시다고 할 만했다. 18대 총선 때 야권은 전체 수도권 의석 111석 가운데 27석이라는 초라한 성적을 냈다. 반면 한나라당은 81석을 차지했다. 그런데 19대 때 야권은 수도권 전체 112석 중 69석을 획득하는 혁혁한 전과를 올렸고, 한나라당은 43석으로 크게 위축됐다.

그때를 잊지 못한 더불어민주당이 국민의당을 향해 지속적으로 ‘후보 단일화’ 압박을 가해왔다. 수도권 공멸을 막기 위해, 야권 분열의 반사 이익을 새누리당에 주지 않기 위해서는 그 길밖에 없다는 논리다. 자당 후보들에 대한 감표 요인을 조금이라도 줄이고자 해서이기도 하지만, 김종인 대표나 문재인 전 대표에겐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선거 결과가 안 좋을 경우 그 탓을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에게 떠넘기기 위한 핑계 만들기 같기도 하다.

문 전 대표는 당이 쪼개질 때까지 당 일각의 인책사임 요구를 묵살했다. 국민의당 안 대표를 비롯한 비노그룹이 대거 이탈한 후에야 그는 김 대표를 영입하고 한 걸음 물러나 앉았다. 누가 보기에도 ‘비노 털어내기’ 의도로 비칠 만한 행보였다. 그랬으면서도 총선 때가 되자 더민주당 지도부는 한목소리로 “내 표 돌려줘!”라고 소리 지르고 있다.

지난 1987년 제13대 대통령선거 때부터 야당은 ‘후보 단일화’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였다. 당시의 김영삼-김대중 단일화 시도는 불발로 끝났지만 이후 ‘단일화 필승’의 신화가 생겨났다. 야권후보 단일화란 때로는 그럴 듯한 핑계로 포장되기도 하지만 본질적으로 이는 국민의 선택권 제한이고 현실적으로는 국민 눈속임의 성격도 갖는다.

정권과 여당의 실정을 심판하기 위해서 야권 후보 단일화는 필수적이라는 주장은 설득력이 부족하다. 정부는 행정의 주체일 뿐이고, 새누리당은 더불어민주당의 경쟁 상대이지 국민의 적이 아니다. 지난번 총선 때 국민은 야권연대라는 것에도 불구하고 새누리당에 더 많은 의석을 주었다. 국민이 악의 편에 섰다는 것인가? 국민의 입장에서는 여야 가릴 것 없이 모든 정당이 평가와 심판의 대상인 것이다.

오늘부터 투표용지 인쇄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진다. 아마도 야권연대 목소리는 많이 잦아들 듯하다. 국민의당 안 대표로서는 한숨 돌리게 된 셈이다. 호남 선거구와 비례대표에 큰 기대를 걸고 있는 그에게 공천 후보를 사퇴시키고, 그로 인한 정당 투표율 하락을 감수하라는 식의 단일화 요구는 얼마나 부담스러웠겠는가.

야당 간의 정책연대는 당연히 있을 수 있는, 때로는 필요하기도 한 일이다. 그러나 선거 때 후보를 단일화하자는 것은 정당 정치의 의의를 외면하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하긴 대통령 중심제 정치구조 하에서 ‘공동정부’라는 해괴한 편법까지 동원한 경험을 가진 한국의 정치권이다. 무슨 꾀인들 안 내놓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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