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기획 도전하는 여성①] 이지선 미친물고기 대표

입력 2016-04-07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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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심 섰으니 일단 지르자…난 ‘습관성 창업 증후군’

▲여의도에 문을 여는 가게 미친물고기 앞에 선 이지선 대표.(신태현 기자 holjjak@)
▲여의도에 문을 여는 가게 미친물고기 앞에 선 이지선 대표.(신태현 기자 holjjak@)
도전(challengeㆍ挑戰)이란 단어엔 두 가지 측면이 있다. 하나는 새로운 것, 어려운 것에 한 발을 떼놓기 시작한다는 ‘용기’의 측면이다. 또 하나는 응전(應戰)이 불가피한 ‘두려움’의 측면이다. 겨뤄보기까지는 알 수가 없다. 이길 수 있을 지, 지고 말 것인지.

사업뿐만 아니라 인생 자체가 크고 작은 도전과 응전의 연속이다. 성공 역시 그 과정에 존재하는 ‘진행형’이지 ‘완료형’이 아니다. 자기만족의 형태만이 아닌, 그러니까 어느 정도 구체화된 성공의 사례 가운데에는 반짝반짝하기에 자연스럽게 이목을 끄는 것들이 있다. 하지만 그걸 향한 도전의 어려움은 가려지는 편. 덜 구체적이고, 덜 완성돼 있고 불확실하기에 들여다 보기 쉽지 않아서다. 그러나 성공을 꽃피우는 씨앗 도전, 도전 정신이 중요하다.

‘성공한 여성’이라는 보기 좋고 또 보여주기 좋은 타이틀을 놔두고 이투데이 기획취재팀이 ‘도전하는 여성’을 들여다보기로 한 건 씨앗이 어떻게 뿌려져 잎을 틔우고 줄기를 올리는 지, 그 과정이 얼마나 지난하며 그래서 먼저 간 이들은 어떻게 갔는지, 무엇이 아쉬웠는지를 같이 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판단에서였다. 그들의 발자국을 그대로 밟아 안전히 가라는 얘기가 절대 아니다. 특히 어려움을 겪는 과정에서 초심과 신념이 흔들릴 때 먼저 간 이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만큼의 ‘명약’은 없다.(편집자 주)

평탄하고 우아한 길을 걸어왔을 것만 같은 사람이었다. 그를 처음 본 건 지금으로부터 십수년 전, 그가 서른 초반에 기자일을 그만 두고 벤처ㆍ정보기술(IT) 기업 전문 홍보 대행사 사장으로 무섭게 뛸 당시였으니. 최고 학벌에 너무나 젊고 잘 나가가는 회사의 대표. 여성지에 자주 등장하는 ‘성공한 커리어 우먼’이란 수식이 어울리는 모습 그 자체였다.

그러다 홀연 미국 유학을 떠난다고 했을 때에도 ‘집안이 여유가 많은 모양이다’‘다음 계산이 다 서 있거나 다시 회사로 돌아오려는 거겠지’라고만 생각했다. 심지어 그가 한국에 돌아와서도 당시로선 첨단 IT 플랫폼이었던 블로그와 소셜미디어를 가지고 사업을 한다고 했으니 진부한 성공 스토리의 주인공이겠거니 생각했다.

그랬던 그에게 지병(持病)이 있는 줄은 몰랐다. 그가 회사를 매각해 배수의 진을 치고 유학을 간 건지도 몰랐다. 이제 보아도 그는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앳된 얼굴에 자주 웃는 표정의 소유자이니 말이다.

이지선 미친물고기 대표 얘기다.

이지선 대표의 지병은 바로 자칭타칭‘습관성 창업 증후군’. 증세는 이렇다. 새로운 것에 대한 관심이 남달리 많고 그것을 해보겠다는 결심과 계산이 서면 일단 시작한다. 그리고 뛰면서 생각하고 문제를 푼다.

전자신문과 조선일보, 한국일보 기자를 거쳐 홍보 대행사 드림커뮤니케이션즈 대표를 지낸 것까지는 그럭저럭 평범해 보인다. 지병이 잠복기를 지나 본격적인 증세를 보인 건 이 대표가 유학을 마치고 곧바로 한국에 들어오지 않았을 때부터였다. 2004년 그는 미국에서 엠투고(Mtogo)란 모바일 콘텐츠 서비스 회사를 세웠다. 막 시장이 형성되기 시작한 전화 벨소리 서비스 등을 했다. 한국에 들어오기 직전 성공적으로 회사를 매각하고 한국에 돌아왔다. 잠시 홍보 대행사 월급사장을 지낸 이 대표는 지병을 이기지 못하고(?) 또 회사를 세운다. 미디어유. 당시로선 생소했던 웹 2.0 서비스를 표방한 그의 세 번째 회사다.

미디어유에서 그는 일단 메타 블로그인 블로그코리아를 운영하며 블로그를 이용한 마케팅 서비스를 선보였다. 이후 커뮤니케이션 교육과 컨설팅, 홍보 사업 등을 벌이던 그가 또 새로운 일을 벌였다.

이번엔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잇는다는 이른바 O2O(Online to Offline) 사업이다. 다만 다른 것이 있다면 기술보다는‘사람’이 먼저 보인다는 것. 사업명 미친물고기(http://www.crazyfish.co.kr/)에는 회를 매우 좋아하는 이 대표의 마음이 그대로 담겨서 그럴 지도 모르겠다. 노량진 수산시장 단골인 이 대표는 맛있으면서도 저렴한 회를 많은 사람들이 언제 어디서든 편히 먹을 수 있도록 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에 잘 아는 수산시장 횟집 사장님들과 협의를 했고, 온라인이나 모바일을 통한 중매를 자처했다.

하던 일이 엎어지는 것도 아니었는데 자꾸 새로운 일에 도전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유행이나 시류에 민감한 사람이라기보다는 그저 호기심이 늘 많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그래서 거창하게 도전에 계속 나섰기보다는 끌리는 대로 실행에 나선 것뿐이라고 설명해요. 모두 자기의 미래를 철저히 계획해 살겠다고 하지만 그게 잘 되나요? 또 가만히 있는다고 지금의 상황이 유지되거나 나아지리란 법도 없어요. 그래서 해보고 싶은 것을 해보는 것이예요. 내가 바뀌면 환경도 이 변화를 따라 바뀌어질 수 있다고 믿거든요.”

홍보대행이라는 사업을 시작할 때도 모두가 뜯어 말렸다. 특히나 기자를 하다가 무슨 홍보를 하느냐, 벤처기업이 무슨 돈이 있냐며 굶어죽기 딱 좋다는 우려가 많았지만 이 대표는 달리 봤다. 급증하고 있는 벤처기업들이 하나같이 자신의 기술과 사업을 언론에 알리고 싶어했는데 그 커뮤니케이션 방법을 몰라 헤매고 있었다. ‘그럼 내가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빨리 뛰어든 만큼 그 시장을 선점하는데 성공할 수 있었다.

홍보대행이라는 사업도 좋아서 시작한 일이었다. 그러나 유학을 가서 경영학석사(MBA) 공부를 하며 이 대표는 자기 자신이 무엇을 더 좋아하는지, 무엇을 더 잘 할 수 있는 지를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고 했다.

“나는 모범생이었고 사람들이 칭찬해주는게 좋았고 인정받는게 좋았죠. 그래서 일을 필요 이상으로 많이 했었어요. 허상을 쫓은 면이 분명히 있었던 거죠. 그런데 미국 사람들은 항상 ‘나’에 대해 얘기하더라구요. 남이 아니라. ‘나는 무엇을 좋아한다’‘나는 뭘 하겠다’하는 식으로. 그래서 나를 돌아보게 됐고 더 많이 알게 됐죠. 새로운 것을 좋아하고, 새로운 것을 만들고 실행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것을요.”

미친물고기 사업도 그렇게 ‘좋아서’ 시작했다. 맛좋고 저렴한 회를 갖고 있는 상인들과 먹고 싶은 고객들을 이어주는 기쁨을 목표로 한 것. 시작하니 어려움은 적잖았다. 좋은 물품 빨리 배송해주는 것만이 관건이 아니었다. 포장 상태, 제철에 맞는 수산물 발굴 등 챙겨야 할 게 많다. 수산시장 상인들도 싸고 질좋은 회 배송해주면 됐지 무슨 포장까지 신경을 써야 하냐는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지만 주문이 밀려오는 이제는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서비스 마인드까지 포장해 배송한다.

O2O 서비스를 알릴 수 있도록 여의도에 일종의 플래그숍(대표 제품이나 브랜드를 내세워 브랜드 이미지를 극대화하는 점포)이 되는 식당도 열기로 했다. 직접 요리도 배워 싱싱한 회를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메뉴를 개발했다. 이 곳에서 직접 싱싱한 수산물을 다양한 메뉴로 먹어보면 O2O 주문량도 늘지 않겠느냐는 계산 때문에 세웠겠지만, 어쩐지 회와 술, 사람을 좋아하는 이 대표가 손님이 원하는 음식을 알아서 만들어 주고 인생에도 조언해주는 일본 드라마 <심야식당>의 주인공 ‘마스터’가 되기 위한 아지트를 마련한 것 같은 느낌도 든다.

“지금까지 해 왔던 일은 홍보대행업도 그렇고 블로그 마케팅도 그렇고 늘 높은 곳, 하늘을 바라보며 하는 일이었다면 이번엔 낮은 곳, 바닥을 잘 살피면서 해야하는 일이라는 성격이 완전히 달라요. 바닥에 발을 딛고, 노량진 수산시장을 발로 뛰면서 사람들을 만나고 몸을 힘들게 하며 하는 일이 주는 즐거움이 있어요. 알코올 기처럼 싸하게 올라오는 희열이랄까. 직장 다니면서 내가 소모되는 것 같고 재미도 없는 것 같고 많이들 불행해하지만 말고 자신을 한 번 솔직하게 들여다 보세요. 내가 누군지 아는 것이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이에요. 도전이란 다른게 아니에요. 그렇게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찾고 하는 것이 도전이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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