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준의 말] 대학개혁 유감

입력 2016-08-09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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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청와대 정책실장

얼마 전 작고한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가 말했다. 기업이 시속 100마일로 변할 때 교육은 10마일 속도로 변한다고. 그렇게 느려 빠졌다는 말이다.

고 노무현 대통령의 이야기도 재미있다. “기업은 가을바람이 불기도 전에 겨울옷을 준비한다. 변화에 둔감한 정부나 정당도 얼음이 얼 때쯤이면 겨울옷을 꺼낸다. 그런데 대학은 겨울이 시작되어도 여름옷을 입고 있다. 겨울이 깊어지면 그때서야 ‘겨울은 와야만 하는가?’ 배부른 질문을 한다.”

30년 교수생활을 한 사람으로서 듣기 민망한 소리다. 하지만 동의한다. 늘 개혁하고 혁신해야 한다고 떠들지만 막상 스스로는 겨울이 되어도 여름옷을 입고 있는 집단, 이게 대학이다. 결과적으로 사회적 연관성은 바닥 수준이다. 쓸모도 없고 의미도 없는 교육이 상당 부분 이루어지고 있다는 뜻이다.

앞으로는 어떨까? 크게 달라질 것 같지 않다. 우선 첫째, 너도나도 배운 티를 내야 하는 사회, 이런 사회에서 학위를 줄 수 있는 권한을 독점하고 있다. 그러니 중위권 대학만 되어도 학생이 없어 망할 일은 없다. 그만큼 느슨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둘째, 공급자가 수요자에 대해 우월적인 지위를 누리고 있다. 즉 교수나 직원이 학생보다 세다. 교수들이 가르쳐야 할 것을 가르치지 않고, 가르치고 싶은 것이나 가르칠 수 있는 것을 가르쳐도 뭐라 할 사람이 없다. 행여 문제가 생긴다 해도 내놓을 카드가 있다. ‘학문의 자유’라는 것이다.

셋째, 개혁과 변화를 위한 리더십이 생성되기 어렵다. 교수의 상당수는 정년보장으로 그 신분이 보장되어 있다. 학생이나 노조의 집합적인 힘 또한 만만치 않다. 이사장이든 총장이든, 아니면 개혁과 혁신을 추진하는 그 누구든 영향력과 지도력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넷째, 개혁과 혁신을 위한 돈도 없다. 실험실습 기구를 하나 들이는 것도 돈이고, 유능한 사람을 교수로 영입하는 것도 돈이다. 일부 국립대학이나 잘나가는 사립대학들은 형편이 좋을 수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 대학들은 그렇지 못하다.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느냐? 대학개혁을 하려면 대학 내부의 이러한 사정을 잘 알아야 한다는 말이다. 대학 내부 힘의 구조와 메커니즘을 모른 채 억지 개혁을 해 봐야 시간이 지나면 용수철처럼 되돌아가 버린다.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고, 힘으로 누르고, 엄청난 소요와 갈등을 일으키며 한 일이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일례로 개방대학 사례를 보자. 개방대학은 수능성적과 관계없이 입학할 수 있는 학교로, 평생교육과 관련하여 더없이 중요한 제도였다. 그런데 이게 어떻게 되었나? 모조리 정규대학이 되고 말았다. 개방대학 소속의 일부 교수와 졸업생 등, 정규대학으로 만들고 싶은 집단의 욕심이 그렇게 만들어 버린 것이다.

고졸 직장인들을 위해 만들었던 야간대학이나 야간강좌는 어떤가? 이 역시 모두 주간으로 전환되어 버렸다. 입학생들의 수능성적이 낮고 교수들이 야간강의를 싫어하기 때문이었다. 엄청난 소요와 갈등을 일으키며 시행된 학부제 역시 그 이름만 남아 있는 경우가 많다. 제도를 시행하는 과정에서 겪었던 그 극심한 갈등은 도대체 무엇을 위한 것이었는지 모르겠다.

이화여대의 미래라이프대학 사태를 보며 생각했다. 이게 설립되었던들 실용지식을 가르치는 평생교육기관으로 잘 발전해 갈 수 있었을까? 이를 정규과정으로 전환하기 위한 노력이 진행될 가능성은 없었을까? 아니면 운영을 하는 둥 마는 둥, 등록금 수입이나 올리겠다고 덤빌 가능성은 없었을까?

확실한 것은 없다. 하지만 정부가 무엇인가 건성으로 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대학 내부 힘의 메커니즘을 잘 살핀 다음, 이를 이길 수 있는 방안까지 내어 놓아야 하는데 그렇지가 못한 것 같다는 말이다.

아니라고? 그러면 지금 당장 여러 대학이 평생교육 차원에서 운영하고 있는 직장인 대상 학사학위 프로그램들의 질과 내용을 살펴봐라. 그런 다음 그것이 애초에 기대한 개혁이었는지, 아니면 대학에 학위장사나 시켜주는 것인지 스스로 물어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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