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김영란법과 관료사회 보신주의

입력 2016-09-28 11:10 수정 2016-09-28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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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엘리 정치경제부 기자

“당분간 만나지 맙시다.”

나름대로는 친하다고 생각했던 공무원이 앞으로 보지 말자고 해 실소를 금치 못했다. 서울과 세종을 오가느라 원체 얼굴 보기가 힘들었는데, 이제는 당분간 보지 말자고 한다.

대한민국 사회가 잘못된 관행과 부패를 청산하기 위한 첫걸음을 뗐다. 부정청탁 및 금품수수 등 금지에 관한 법률(이른바 김영란법) 시행 첫날. 일일이 직무 연관성을 따져보느니 안 만나는 게 상책이라는 말이 나온다.

정부세종청사에서 부처를 출입하는 기자는 여러 사안을 확인하기 위해 하루에도 몇 번씩 공무원들과 접촉해야 한다. 한 기자가 여러 부처를 맡다 보니 내부로부터 귀띔을 받아 취재를 할 수도 있고, 문제를 해결한 적도 있다. 대면 접촉이 어느 정도 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관련 공무원들이 ‘몸조심’을 하느라 입을 열지 않고 모르쇠로 일관하면 진실은 실종되고 만다.

김영란법 시행으로 우려되는 부작용은 정부 정책과 공무원들의 직무에 대한 감시 기능이 현저히 위축될 수 있다는 점이다. 정부가 일방적으로 제공하는 보도자료와 알맹이 없는 질의응답이 오가는 브리핑, 전체 기자단을 대상으로 한 실국장 미팅만으로는 이 같은 언론 본연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할 수가 없다. 정부가 외부에 알려지지 않은 자신의 치부를 자진 공개할 리는 만무하기 때문이다.

언론에 공개하라는 것이 모순된 기대일 수도 있다. 공무원 입장에서는 더욱 그렇다. 하지만 상반된 요구들 사이에서 무사안일이나 복지부동으로 흘러선 안 된다.

스위스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한 2016년 국가경쟁력 평가에서 우리나라의 효율성, 부패 정도, 투명성 등을 평가한 ‘제도’ 부문은 올해 63위로 평가됐다. 관료들이 국가경쟁력의 적지 않은 걸림돌이라는 의미다. ‘거시경제’가 3위, ‘인프라’가 10위인 것에 비해 너무 뒤떨어진 순위다. 국민의 체감지수도 외국의 평가와 다르지 않다.

김영란법 시행은 언론은 물론이고 관료사회에 거대한 도전이 될 것이다. ‘보신 문화’, ‘비밀주의’가 횡행하면 그 피해는 국민에게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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