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준의 말] 대통령의 힘과 대선주자들의 약속

입력 2016-10-18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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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대 행정정책학부 교수, 전 청와대 정책실장

천하장사는 힘이 세다. 하지만 그 힘에는 한계가 있다. 이를테면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 한두 명을 제압하는 것이야 일도 아니겠지만 산을 옮기고 강을 만드는 일에는 여느 보통사람과 다를 바 없다.

대통령의 힘도 그렇다. 특별한 혜택이나 지원을 받고 싶은 사람이나, 공사·공단의 사장이라도 해 봐야 하겠다는 사람 입장에서는 그 힘이 어마어마해 보인다. 그도 그럴 것이 한쪽 옆구리에 국가정보원, 검찰, 국세청 같은 칼을 차고 있다. 그리고 또 다른 한쪽 옆구리에는 400조 원의 예산과 그 끝이 어디인지도 알 수 없는 인사권과 규제권 등을 차고 있다.

하지만 다시 물어보자. 대통령이란 ‘천하장사’가 산을 옮기고 강을 만들 그런 힘이 있는가? 국가의 세입구조와 재정구조를 바꾸고, 산업구조와 인력양성체계를 개편하고, 자본시장을 육성하고, 동북아 지역에 평화체제를 정착시키는 등의 일을 할 수 있는 힘 말이다.

한때는 있었다고도 할 수 있다. 시장도 시민사회도 발달하지 못했던 시절, 국가권력이 천하를 호령했고, 그 정점에 대통령이 있었다. “당신은 반도체, 당신은 자동차” 하며 산업구조를 조정했고, ‘새 마음 운동’이다 뭐다 하며 국민의 정신세계까지 개조하고자 했다. 그야말로 무소불위의 권력이었다.

그러나 이제 더 이상 그런 세상이 아니다. 시장과 시민사회, 그리고 글로벌 사회의 영향력이 커진 가운데 대통령은 더 이상 예전의 대통령이 아니다.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세 대통령의 죽음과 몰락이 이를 확인하고 또 확인해 주었다. 단적으로 법률 하나 제ㆍ개정하는 데 평균 35개월이 걸린다. ‘되는 일이 없다’는 말이 절로 나오게 되어 있다.

새삼스럽게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느냐? 소위 대선주자들의 언행이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저것 생각 없이 약속하고 슬로건도 이리 바꾸고 저리 바꾸고 한다. 마치 대통령이 되면 뭐든 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누구든 약속은 조심해서 해야 한다. 지키지 못하면 그것이 부메랑이 되어 자신을 때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하물며 대통령이 되고자 뛰는 대선주자야 오죽하겠나. 시장과 시민사회 등에 대한 대통령의 상대적 힘과 자원동원력을 면밀히 살펴야 하고, 약속을 실현하기 위한 방안과 전략에 대해서도 깊은 고민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이런 노력이 잘 보이지 않는다. 당장에 ‘국민성장’ 등 야당 주자들이 내놓고 있는 성장 슬로건들만 봐도 그렇다. 늘 분배를 강조하다 어느 날 갑자기 성장을 앞세우고 있는데, 왜 그렇게 바뀌었는지에 대한 설명조차 제대로 없다. 고민을 깊이 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도 과거의 입장, 즉 분배를 강조하던 입장에 대한 성찰이 없어 더욱 그렇게 보인다. 새로운 비전과 전략은 과거의 그것에 대한 철저한 ‘반성’과 ‘참회’를 바탕으로 해서 나오는 법이다. 즉 무엇을 잘못 짚었으니 이후로는 그러지 않고 이렇게 하겠다는 식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과문한 탓인지 이런 이야기를 들어 본 적이 없다. 새로운 약속 내지는 슬로건의 진정성과 실현 가능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그저 단어 한두 개만 바뀌었을 뿐 과거의 입장과 큰 차이가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반성도 참회도 필요 없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면 더 큰 문제이다. 표를 얻으려고 국민을 현혹하고 속인 일이 되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제대로 된 고민을 하라는 말이다. 이를테면 내가 힘이 부족하면 남의 힘을 빌려서 일을 성사시키겠다고 할 수도 있다. 즉 대통령 혼자 어떻게 하겠다고 하기보다는 시장과 공동체, 심지어는 야당과 함께 어떻게 해 보겠다고 할 수도 있고, 이들 스스로 공동의 목표를 향해 움직일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내놓을 수도 있다.

무엇을 새롭게 약속하건 그 출발은 대통령의 힘에 대한 잘못된 생각을 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그 잘못된 생각에 기반을 둔 약속과 슬로건에 대해 반성하고 참회하는 일이다. 혹시 아나? 그렇게 하면 제대로 된 대통령이 되는 길이 열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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