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준의 말] 박근혜, 최순실, 그리고 합리적 의심

입력 2017-02-21 10:41 수정 2017-02-21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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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청와대 정책실장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다. 입에서 나온 말이라 하여 모두 진실이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소위 ‘합리적 의심’을 한다. 그럴듯해 보이는 것도 논리나 이치에 어긋나면 의문을 품기도 하고, 참인지 거짓인지 따져보기도 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이 나라 정치에서는 언제부터인가 그 합리적 의심이라는 것이 없어졌다. 적군과 아군을 구별해 놓고 아군의 주장은 무조건 진실이 되고, 적군의 그것은 무조건 거짓이 된다. 조사나 분석은 이미 내려진 결론을 이끌어내기 위한 수단으로나 존재한다.

오해를 피하고자 미리 한마디해 두자. 박근혜 대통령을 옹호할 생각이 추호도 없다. 온갖 실정으로 온 사회를 불만 붙이면 바로 터지는 화약고로 만들어 놓았고, 최순실과 함께 그 화약고 앞에서 불장난을 했다. 결국 불은 화약고로 옮겨 붙었고, 나라는 이 모양이 되었다. 대통령직은 어떻게든 정리되는 것이 옳다.

하지만 진실은 진실대로 정리되어야 한다. 그래야 우리가 더 큰 분열과 대립으로 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거짓과 그릇된 정보로 상대를 자극하고, 그래서 상대의 가슴에 더 깊은 상처를 내어서는 안 된다. 결국은 서로가 서로를 죽이는 일만 계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진실로 가는 첫걸음은 합리적 의심이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언론과 지식인들부터 제대로 묻고 따져 주어야 한다. 그게 직업인 데다 비교적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는 이들조차 수시로 길을 잃는다. 합리적 의심은커녕 오히려 잘못된 확신과 정보를 확산시키는 데 앞장서기도 한다.

일례로 차은택과 고영태의 ‘공동정부’ 발언과 ‘최순실 서열 1위’ 발언을 보자. 여야 의원들의 질문에 이들은 박근혜 정부를 박근혜·최순실의 공동정부로 규정했다. 심지어 최순실이 서열 1위로 대통령보다 더 큰 힘을 가진 것 같다고도 했다.

대통령직을 어느 정도 아는 사람으로서 이야기하건대 가까울수록 대하기 어려운 존재가 대통령이다. 또 대통령 권력이다. 공동정부라니? 또 최순실이 서열 1위라니? 최순실이 귀신놀음을 했든 뭘 했든 어림도 없는 소리이다.

어이가 없었다. 이들이 바보들이거나 아니면 대통령과 최순실을 몰아붙이기 위한 의도적 발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최근의 ‘고영태 파일’은 후자일 가능성을 더 크게 열고 있다. 하지만 당시 세상은 이들의 발언에 대해 합리적 의심을 하지 않았다. 언론부터 이들의 말이 모두 진실인 것처럼 보도하기에 바빴다.

며칠 전 특검이 발표한 박 대통령과 최순실 사이의 차명폰 통화 횟수도 그렇다. 지난해 4월부터 10월까지 590회의 통화가 이루어졌다고 밝혔는데, 쉽게 믿을 수가 없다. 특정인과는 비교적 제한된 의제에 관해 통화하게 되는데, 이 경우 대통령이 직접 그렇게 자주, 또 지속적으로 통화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특별한 관계라 해도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청와대가 곧바로 반박을 했다. 특검이 청와대 압수수색을 위해 언론플레이를 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다분히 그렇게 많이 통화하지 않았다는 주장이 그 안에 들어 있었다. 최순실 역시 반박을 했다. 대통령과의 차명폰 통화는 불과 10여 차례에 지나지 않는다고 했다.

청와대를 믿을 이유는 없다. 최순실 측의 주장은 더욱 그렇다. 그러나 특검의 주장 또한 그대로 믿을 이유가 없다. 대통령과 최순실의 특별한 관계를 고려한다 해도 쉽게 이해 가지 않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또 조사가 완전히 끝난 상태에서의 주장도 아니다. 좀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검찰 발표가 있던 그날 한 방송사가 특검의 주장을 진실인 것처럼 제목을 단 논평을 했다. “대통령과 최순실 하루 세 번 통화, 여러분은 가족과 하루에 몇 번 통화하십니까?” 어떤가? 자극적이지 않은가? 어느 한쪽 진영의 사람들이 박장대소를 하며 좋아하지 않았겠나.

이래서는 안 된다. 합리적 의심의 주체가 되어야 할 언론까지 이러면 나라는 어디로 가겠나? 어려운 시국이다. 논평 하나 하는 데도, 또 말 한마디 전하는 데도 좀 더 자중했으면 한다. 너나없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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