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여성인물사전] 97. 서영수합(徐令壽閤)

입력 2017-04-19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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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와 수학에 능했던 조선의 양반 부인

“왜 이처럼 번거롭고 이해하기 어렵게 설명했을까?” 서영수합(徐令壽閤·1753~1823)은 수학 원리와 계산 방법을 아이들도 쉽게 배울 수 있게 설명한 ‘주학계몽(籌學啓蒙)’을 보다가 이런 의문이 들었다. 그래서 직접 법칙을 만들어 문제를 풀어보았다.

예컨대, 사다리꼴 모양의 밭 면적을 구할 때 ‘주학계몽’은 사다리꼴을 두 삼각형으로 나누어 각 면적을 구한 다음에 합치게 했다. 그런데 영수합은 사다리꼴의 위아래 변의 길이를 합해 반으로 나눈 후 거기에다 높이를 곱했다. 나중에 알려진 사실이지만 중국 청대에 편찬된 ‘수리정온(數理精蘊)’도 권장한 방법이었다.

영수합은 본관이 달성이며 아버지는 서형수(徐逈修·1725~1779)다. 집안 학풍은 실사구시의 실학을 추구했으며 돌, 물, 불, 별, 달, 해, 초목, 금수 같은 사물을 탐구하는 명물학(名物學)에 특장을 보였다. 혼인 후 글 읽는 티를 내지 않던 영수합이 오직 흥미를 보인 일이 수학이었다니 가풍이 끼친 영향을 짐작할 수 있다.

영수합은 다섯 형제 중 외동딸이었다. 몸이 허약했지만 영민하고 한 번 들은 것은 잊지 않았다. 영수합의 기질을 알아본 외할머니는 손녀의 재능을 사랑했으나 마냥 격려할 수만은 없었다. 그래서 “여자로서 문장에 뛰어난 이들 중에 명이 짧은 자가 많다”고 경계해주었다.

영수합은 14세에 홍인모와 부부 인연을 맺었다. 오랫동안 벼슬에 나가지 못한 남편과 지우 같은 관계를 유지했고 남편의 권유로 시도 지었다. 하지만 여성 본분에 어긋난다 하여 직접 손으로 시를 쓰지 않았다. 남편이 아들들을 시켜 옆에서 몰래 적게 했다. 그래서 다행히 시 191수와 사(辭) 1편이 남편 시집인 ‘족수당집(足睡堂集)’에 남게 되었다. ‘영수합’도 남편이 지어준 당호인데 ‘수(壽·목숨)’자를 넣은 것은 허약한 아내를 위한 배려였는지도 모른다.

3남 2녀를 둔 영수합은 자녀 교육에 큰 열정을 쏟았다. 학문과 역사 이야기를 끊임없이 들려주었고 밤마다 읽은 책들을 점검했다. 그 노력과 열정 덕분에 맏아들 석주는 좌의정까지 올랐으며 대제학도 지냈다. 둘째 길주는 벼슬을 하지 않았으나 문장으로 큰 이름을 남겼다. 막내아들 현주는 정조의 딸 숙선옹주와 혼인했으며 정약용과 교유하면서 학자로 대성했다. 장녀 홍원주는 ‘유한당’으로 이름을 떨친 시인이 되어 ‘유한당시집’을 남겼다.

영수합이 살던 시기는 여성에게 글을 권한 시절이 아니었다. 영수합도 글을 읽고 쓰는 일에 대해 부인의 일이 아니라고 했다. 그럼에도 바느질도 못할 정도로 몸져누워 있을 때 아들이 몰래 가져다준 책을 읽고 시름을 잊을 만큼 책을 사랑했다. 여성의 ‘직분’을 위반하지 않으면서도 책 읽기를 포기하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마치 단단한 바위 틈새를 비집고 나온 여리지만 강인한 풀처럼 잔잔한 감동을 선사한다.

공동기획: 이투데이, (사)역사 여성 미래, 여성사박물관건립추진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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