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여성인물사전] 158. 춘비(春非)

입력 2017-07-20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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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양반가 젖어미로 선택된 여종

▲이문건의 ‘묵재일기’. 32년 동안 작성한 생활일기이다.
▲이문건의 ‘묵재일기’. 32년 동안 작성한 생활일기이다.

춘비(春非·?∼1551.9.8)는 16세기 중반 경상도 성주에서 주인집 손자 유모 역할을 하다가 죽은 여종이다. 여종이 인물사전에 오를 만한가 의아해할 것이다. 그러나 정확한 역사 이해를 위해서는 개인의 영웅 만들기가 아니라 인물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특히 하층민에 대한 연구 확장을 위해서는 이러한 과정은 반드시 필요하다.

승지를 지내다 성주에 유배된 이문건(李文楗·1494~1567)이 일기를 32년 동안 작성하였는데, 이 중에 16년 가까이 춘비라는 여종이 등장하고 있으니 사실 자료의 양으로 보면 소설을 써도 충분할 정도이다.

조선시대 양반 여성은 아이를 출산만 할 뿐 양육과 관련된 일은 유모가 맡아서 했다. 유모는 아이의 성격 형성과 교육까지 감안하여 신중하게 선정했다. 이들 유모를 친근하게 젖어미라고도 부른다. 이문건에게는 금쪽 같은 손주 하나가 있었으니, 그 아이가 숙길(淑吉)이다. 이문건과 숙길이 하면, 할아버지가 손자를 키우면서 작성한 ‘양아록(養兒錄)’이 잘 알려져 있다. 가계를 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한 할아버지에게 숙길이는 아주 귀한 존재였다. 할아버지는 손자가 태어나자 유모를 선정하기로 한다. 점장이 김자수(金自粹)가 친어머니보다는 유모가 기르는 것이 좋다고 해서이다.

이문건은 처음에 춘비보다는 눌질개(訥叱介)를 유모로 삼고자 했다. 춘비가 젖도 적게 나고 성질도 사나워 마땅치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눌질개가 닷새 만에 젖이 잘 나오지 않는다는 핑계로 거절하자 춘비를 유모로 삼을 수밖에 없었다.

당시 춘비는 남편 방실(方實)과의 사이에 검동(撿同)이라는 어린 아들을 두고 있었다. 이문건은 의외로 춘비가 숙길을 잘 돌보자 상당히 흡족해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춘비는 유종(乳腫)을 심하게 앓으며 두 달 가까이 고생을 하다가 죽게 된다. 이문건은 춘비를 살려내기 위해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으나 춘비는 결국 9월 8일 숨을 거둔다. 춘비가 병에 걸리자 이문건이 괴산에서 농사짓던 남편 방실을 불러 아내를 보살피라고 했으나 이것도 별 효험이 없었던 것이다.

더 불행한 것은 어미가 죽기 한 달 전에 아들이 먼저 죽었다는 사실이다. 이에 대해 이문건은 그 어미의 젖이 상해서 죽었다고 했다. 아마 춘비가 병을 앓는 상황에서 검동에게 계속 젖을 물렸고 이것이 문제가 되었던 모양이다. 어린 아들이 죽은 다음 날 아비 방실은 쓸쓸하게 빈 상자 하나를 마련해 죽은 아들을 내다 묻었다.

춘비가 사망하자 이문건은 장인(匠人)을 시켜 춘비의 관을 짜서 노비들의 무덤이 있는 곳에 장사지냈다. 방실은 춘비가 죽은 지 사칠일(四七日)이 되던 10월 6일 죽은 아내를 위해 무당을 불러 정성껏 굿을 했다.

공동기획: 이투데이, (사)역사 여성 미래, 여성사박물관건립추진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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