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나쁜 놈들 전성시대(feat.정의사회구현)

입력 2017-10-18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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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환 산업1부장

아직도 담배를 끊지 못한 후진국형 인간인 필자는 얼마 전 길에서 흡연을 하다 적발돼 과태료 10만 원을 헌납한 억울한(!) 기억이 있다. 시민 건강을 위협하는 중죄를 범하고도 감히 ‘억울하다’는 단어를 선택한 무모함은 ‘건수 올리기’에 당했다는 의심에서 나온다.

당시 주변에는 나와 같이 담배를 입에 문 범법자들이 족히 30여 명은 됐으니, ‘이 많은 사람 중 왜 하필 나야?’라는 생각이 들 법도 하지 않은가. 물론 왜 나만인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법을 어겼다는 사실 자체가 본질임을 부인할 수는 없지만(사실은 삼삼오오 무리를 이뤘던 그들과 달리, 나는 혼자이니까 만만해 보였을 거라는 자기 합리화를 포기하지 못하지만).

혼자이든 여럿이든 법 앞에서는 모두가 평등해야 하고, 죄와 벌은 대통령이든 대기업 회장이든 가리지 않아야 한다.

자택 공사비를 계열사에 떠넘긴 혐의를 받은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에게 구속영장까지 요청했던 사법당국의 엄정함은(비록 반려됐다 해도) 이런 점에서 박수를 쳐 줄 일이다. 다만 혹시라도 누구는 빼고 누구는 때리는 선택적인 평등은 아닌지 짚어보고 싶은 대목이 있다.

경찰에 따르면 조양호 회장은 2013년 5월∼2014년 8월 서울 평창동 자택 인테리어 공사비용 중 30억 원가량을 대한항공의 인천 영종도 호텔 공사비에서 빼돌려 쓴 것으로 의심된다. 사실이라면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 배임에 해당하는 범죄 행위이다.

그런데 이번 일이 앞과 뒤가 있는 이야기라는 것을 알 만한 사람들은 안다.

사건은 공사를 맡았던 인테리어 업체의 경영권 분쟁에서 시작됐다. 꽤나 유명한 회사인 이 업체에서는 가족 간 다툼이 벌어졌고, 진흙탕 싸움은 세무조사로 이어졌다. 일이 커진 것은 탈세 여부를 조사하기 위해 이 회사 장부를 들여다보는 과정에서 대기업 회장들의 이름이 나오면서이다. 공사를 맡긴 쪽은 회장님 댁인데, 대금 결제는 계열사가 한 것으로 적혀 있었다고 하니 ‘눈치 100단’인 세무당국에 딱 걸려 버렸으리라.

발단이나 전개가 어찌됐든 범법 행위가 의심돼 사실관계를 조사한 뒤 공정한 법적인 처분이 이어지면 더는 시비를 따질 이유가 없다. 그럼에도 조 회장의 구속영장 청구에 고개를 갸웃하는 이유는 장부에 나온 다른 회장들은 ‘정의 구현’ 대상에서 빠졌기 때문이다.

물론 사법당국의 결정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예컨대 당사자를 수사할 수 없는 등의 상황일 경우 즉시 소환이 가능한 조양호 회장을 우선순위에 놓았을 수 있다. 하지만 조 회장만 부인 이명희 일우재단 이사장까지 불러 조사를 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석연찮은 구석은 여전히 남는다. 주택을 새 단장하는 일이니 다른 집도 회장님보다 사모님이 더 잘 알고 있을지도 모르니 말이다.

이런 와중에 이뤄진 검찰의 구속영장 반려는 합리적인 의사결정이 작동하는 사례로 받아들여진다. 잘못은 엄단하되, 굳이 구속까지 필요한지는 선뜻 납득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경찰 측은 주요 피의자인 조 회장이 ‘증거가 있는데도’ 혐의를 부인하는 등 ‘증거를 인멸할 우려가 있다’며 영장을 신청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 말은 경찰에 있는 증거를 조 회장이 없애 버릴 수 있다는 뜻도 되니 그의 능력은 어디까지란 말인가. 아니면 혹시 도주가 우려됐을까. 조 회장은 스스로 경찰 조사를 받았다. 부인과 최고위 임원도 함께 출석했다. 그래 놓고 갑자기 자산 규모 29조 원의 재계 14위 한진그룹을 내던지고 도망칠지 생각해 볼 일이다.

조양호 회장은 한미재계회의 한국 측 위원장이다. 불과 열흘 전 국가적 중대사인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을 놓고 미국 경제단체들과 담판을 벌여 FTA 보존을 촉구하는 공동성명서를 이끌어냈다. 북핵 문제와 관련해서도 다양한 대외 활동을 펼치는 중이다.

흔히 대기업을 ‘국민의 기업’이라 말한다. 개인의 것이 아니라 소비자이며, 주주이자, 노동자인 국민 모두의 자산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을 터.

이 말이 맞다면 공권력 집행도 눈에 보이는 성과뿐 아니라 국민 모두의 이익을 함께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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