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중앙은행 출구정책 서두를 필요 없다

입력 2017-11-01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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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수경 국제경제부장

미국 달러 지폐를 들여다보면 뒷면에는 ‘In God We Trust’라는 문구가, 앞면에는 ‘Federal Reserve Note’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달러는 이처럼 신(神)과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 연준)의 이름을 건 신뢰 위에 만들어진 기축통화(基軸通貨)이다. 세계 경제에서 달러를 주무르는 연준의 존재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내년 2월 재닛 옐런 현 연준 의장의 임기 만료를 앞두고 수개월간 초미의 관심사였던 차기 연준 의장 인선이 곧 마무리된다. 현재로선 제롬 파월 현 연준 이사가 유력하다고 한다. 파월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겐 더 없이 좋은 카드이다. 공화당원이지만 전 민주당 정권에서 임명됐기 때문에 여야 모두의 반발을 피할 수 있고, 옐런의 정책 기조와 크게 다르지 않아 시장의 혼란도 최소화할 수 있어서이다.

지난 4년간 옐런의 연준은 ‘헬리콥터 벤’의 뒤처리반이나 다름없었다. 2008년 금융위기 발발 이후 벤 버냉키는 비전통적인 금융완화 조치로서 초저금리 정책을 도입하고, 대규모 자산 매입을 실시했다. 금융시장과 실물경제까지 붕괴할 위기에 처하다 보니 응급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 없었던 탓이다.

다행히 금융위기가 시작된 지 약 10년 만에 세계 경제는 미약하나마 회복세를 보이고 있어 응급조치는 더 이상 필요 없게 됐다. 연준은 9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4조5000억 달러에 이르는 자산 규모를 점진적으로 축소하기로 결정했다. 이대로라면 기준금리도 ‘연 3회 인상’ 시나리오대로 갈 기세이다.

하지만 왠지 출구정책을 서두른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가파른 금융정상화는 또 다른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 2000년대 닷컴버블 붕괴 이후 연준의 조치를 예로 들어보자. 당시 연준은 점진적인 금융정상화를 결정하고 2004년부터 2006년까지 기준금리를 0.25%포인트씩 17차례에 걸쳐 끌어올렸다. 그러나 같은 시기에 미니버블 양상을 보이던 금융시장은 얼마 지나지 않아 촉발된 금융위기의 화근이 되고 말았다.

현재 시장이 미니버블이라고 판단해 금융정상화에 속도를 냈다가는 재앙을 자초할 수 있다. 연준과 함께 영란은행과 유럽중앙은행(ECB)도 긴축으로 선회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데, 금융정책은 레이스가 아니다. 금융정상화를 하라고 누군가 등을 떠미는 것도 아니고, 반드시 우승해야 할 필요도, 대중의 인기를 의식해야 할 필요도 없다.

1970년대 말부터 1980년대까지 ‘인플레이션 파이터’를 자처했던 폴 볼커 전 연준 의장은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1, 2차 오일쇼크로 인해 치솟은 물가와 싸우느라 취임 당시 11.2%였던 금리를 20%까지 끌어올렸다. 당시 미국은 스태그플레이션 상태였기 때문에 결코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의 뚝심 덕에 미국 경제는 혹독한 침체의 터널을 지나 결국 전례없는 호황기를 맞았다. 그 후임인 앨런 그린스펀과 버냉키는 다른 방식으로 금융위기에 대처했는데, 옐런이 이들과 다른 노선을 걷지 않은 건 어쩌면 대단한 용기를 필요로 했을지도 모른다.

전통적으로 중앙은행의 주요 역할은 물가 안정이다. 지금처럼 물가 상승 압력이 크지 않은 상황이라면 자산 가격이 상승하더라도 굳이 출구정책을 서두를 필요는 없다. 물가를 통화정책의 기준으로 삼을 필요가 없다는 의미이다.

실제로 지금은 세계적으로 물가가 오르기 어려운 환경이다. 기업활동이 글로벌화하면서 해외의 값싼 노동력을 활용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따라서 물가만 보고 통화정책을 운영하면 금융완화 축소가 지연돼 오히려 버블이 팽창할 수도 있다.

며칠 뒤면 새로운 연준 의장이 결정된다. 조직의 수장 자리에 오르면 어떻게든 조기에 성과를 보여주고 싶어 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어쨌든 지금은 금융위기의 후유증이 완전히 가시지 않은 시점이란 걸 잊지 말아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자칫 새로운 금융 위기와 경기 침체가 도래하면 중앙은행이라 해도 마땅한 카드는 없다. 각국 정부와 기업, 가계가 세계의 경제 대통령의 탄생에 주목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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