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철순 칼럼] 기레기의 진화를 막아야

입력 2017-11-14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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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필

기자는 고달프고 언론은 괴롭다. 바꾸어 말해도 마찬가지다. ‘지금 여기’에서 벌어진 일과 현상을 사실 그대로 보도하고, 시대의 현안과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대중과 논의·토론해야 하는 언론의 생명은 신뢰다. 그런데 신뢰는 이미 심각하게 훼손됐고, 믿을 수 없는 보도와 의심스러운 논평에 대한 조롱과 비하가 차고 넘친다.

요즘 대중은 ‘기레기(기자+쓰레기)’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부정확하거나 왜곡된 보도에 대해서는 물론, 자사 이기주의나 진영논리에 빠진 논평 등 한마디로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기사를 쓰는 기자는 다 기레기이다. 정상적인 보도행위에 대해서도 도매금으로 기레기라고 하는 세상이다.

기레기라는 말은 2014년 4월 세월호 침몰사고 이후 완전 정착됐다. 일본에도 매스컴(マスカム)과 고미(ゴミ·쓰레기)의 합성어인 ‘마스코미’라는 말이 있지만, 우리의 기레기는 일본의 마스코미보다 더 쓰임새가 폭넓고 대중의 호응이 높은 것 같다. 일본보다 우리 사회의 갈등구조가 더 중첩돼 있는 데다 큰 사건이 더 자주 발생하기 때문일 것이다.

당연히 언론의 책임이며 자업자득(自業自得)이다. ‘세월호 승선자 전원 구조’라는 대형 오보는 그 상황에서 피할 수 없는 측면이 있었다(언론은 정확하고 직접적인 정보를 얻기 어려운 처지였고, 전원 생존은 모두가 바라던 일이 아니었나). 그러나 무고한 버스 기사를 매도한 ‘240번 버스사건’ 같은 경우는 할 말이 있을 리 없다. 온라인 게시글을 보고 제대로 사실 확인도 하지 않은 채 기사화한 잘못이 크다. 기레기라는 비난을 듣는 것은 사실 확인의 규범과 의무를 저버린 경우가 대부분이다.

기사 클릭 수와 트래픽을 올리려는 온라인 세상의 경쟁구조가 가장 큰 문제다. 빨리 기사를 띄우는 데만 치중하다 보니 사실을 확인하고, 문장을 간결하게 틀린 것 없게 가다듬고, 정상적인 절차에 맞춰 출고(出稿)를 하는 각 과정이 생략되거나 허술해진다. 그런데도 별것도 아닌 기사에 ‘단독보도’를 남발한다.

기자들은 일정한 수습기간에 나름대로 교육과 훈련을 받고 언론인이 돼가는 게 정상적이지만 요즘은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시답지 않은 연예인들의 하찮은 가십이나 스캔들의 보도와 확대 재생산, 우라카이(고쳐 베껴쓰기)에 목숨을 건 일부 매체는 기자들이 데스크도 거치지 않고 기사를 내보낸다. 비문(非文) 여부나 맞춤법, 띄어쓰기를 스스로 점검할 시간이나 능력이 없는데도 그렇게 하고 있다.

그런데 ‘국민기자’(누가 이런 이름을 감히 붙여주었나)라는 이상호 씨의 ‘김광석’ 영화는 또 다른 양상의 기레기 비판을 자초했다. 벌어진 일에 대한 부정확한 보도나 왜곡이 아니라 벌어진 일인지 아닌지 모르는 일을 스스로 사실로 만든 것은 진실 규명과 거리가 먼 행위다. “추정은 다 빼고 진실과 팩트로만 영화를 구성하려 했다”는 말과 달리 여러 팩트 중 일부만 취사선택해 김광석이 살해됐다고 몰고 간 것은 기자의 ABC를 지키지 않고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대중을 오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기자는 2년 전에 열린 다른 사건 재판에서 “기자는 자신의 것이든 남의 것이든 모든 표현의 자유에 대한 무한 책임을 져야 하는 직업인”이라고 말한 바 있다. 어떤 직업인이든 자신이 하는 일의 표준이 무엇이며 그 일에 반드시 필요한 규범이 무엇인지를 모르지는 않는다. 그것을 실제로 어떻게 실천해야 하는지를 모르는 게 문제다.

지금은 언론의 대중화, 대중의 언론화 시대다. 기자는 잘난 사람이 아니다. 누구나 기자일 수 있다. 언론사의 운영방식이 달라져야 하겠지만 기자 개개인으로서는 어설픈 엘리트 의식으로 독자를 가르치려 하고, 과장과 추정보도에 무감각하고, 오보를 정정하거나 사과하지 않는 행태를 고쳐나가야 한다. 기레기의 진화를 막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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