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석의 원견명찰(遠見明察)] 가을 생각

입력 2017-11-15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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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 여름이라는 계절을 지나다 보면 정작 참기 어려운 더위는 채 한 달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못 견딜 듯한 더위가 과일들에 단맛을, 꽃들에겐 영롱한 빛깔을 입혀준다.

여름을 성큼 지나 어느덧 가을의 끝자락에 와 있다. 3월에 시작한 국제대학원의 강의가 어느덧 두 번째 학기가 되었고, 이번 학기 강의는 예상보다 많은 30여 명의 학생들과 함께하고 있다. 에너지 문제에 대한 기본적인 소양을 기르면서 전 세계 주요국의 에너지 정책, 주요 전력 기업의 경영 전략에 대해 공부하는 시간이다. 대부분이 외국인인 학생들은 이 분야가 전공은 아니지만 높은 관심을 갖고 적극적인 태도로 임하고 있다. 특히 많은 학생들이 기후변화 이슈를 둘러싼 국가 간의 협상과정에 대해 다양한 질문을 던진다.

1992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 리우 회의에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는 기후변화 협상은 1997년 교토 체제를 출범하면서 절반의 성취를 이루었고, 2015년 파리에서 195개국이 참여하는 범세계적 합의에 도달하게 되었다. 교토 이후의 협상 과정이 순탄치는 않았으나, 국제사회는 기후변화의 원인과 해결 방안에 대해 많은 논란 끝에 구성원 대부분이 동의할 수 있는 어느 정도의 공감대를 만들어냈다. 기후변화는 인간의 활동에서 기인하였고, 그 활동의 대부분은 석탄, 석유, 천연가스 등 화석연료를 사용함으로써 발생했다는 것이다.

인류의 편익을 위해 사용하는 화석연료가 이산화탄소를 배출해 지구의 기온을 높이고 해수면을 상승시킨다면, 누가 언제 가장 많은 화석연료를 사용하였을까? 산업혁명 시대가 도래하면서 서구 선진국들이 본격적으로 화석연료를 활용했고, 지금까지의 누적 사용량도 선진국들이 압도적으로 많다. 현재의 기후변화가 과거의 온실가스 배출의 결과물이며, 현시점에서 온실가스 감축의 의무도 지금까지 배출한 온실가스의 누적치를 기준으로 할당되어야 한다는 중국, 인도 등의 주장은 적어도 논리적으로는 상당한 타당성을 지녔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이미 배출된 온실가스를 없었던 일로 할 수는 없기 때문에 국제사회는 인류의 미래를 위해 온실가스를 감축해야 하는 공통의 숙제를 안게 되었다.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가들은 자국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절대적 수량으로 제시하면서 중국의 감축 목표는 경제성장과 연동돼 계산되는 원단위(intensity)로 제시하는 것을 수용했다.

즉, 중국과 같은 후발국의 경우 높은 경제성장을 한다면 그에 상응하는 수준의 온실가스 배출량 증가를 용인한 것이다. 중국은 비록 원단위 방식이지만 높은 수준의 감축을 약속했다. 이러한 상호 양보의 자세가 대타협의 활로를 열었고, 국제사회는 파리에서 위대한 발걸음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미국의 새로운 행정부는 이러한 합의를 중국에 의한 일종의 속임수(hoax)라고 규정하고 선진국만이 절대적 감축 의무를 갖는 합의에 동의할 수 없다면서 지난 6월 협정 탈퇴를 선언했다. 미국 내 여론이 협정 탈퇴에 호의적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결정을 한 것은 전통적인 공화당 지지 기반인 화석연료 생산자의 이해관계와 신재생에너지에 대한 정부 지원에 따른 재정 부담을 고려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과연 미국의 새로운 결정이 좀 더 먼 미래의 지구를 생각했을 때 어떠한 나비효과를 가져올지 걱정된다. 그러면서도 지금 기후변화 해결의 장도(壯途)에 나선 인류에게 닥친 지금의 어려움이 가을 과일에 단맛과 가을 꽃에 영롱한 빛깔을 주게 되는 못 견딜 듯한 짧은 더위이기를 바란다. 그래서 이 더위가 지나고 나면 풍성한 가을을 맞듯이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밝은 미래의 새로운 에너지 세계가 열리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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