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준의 말] 다시 불붙은 ‘법인세 전쟁’

입력 2018-01-02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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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대 행정정책학부 교수, 전 청와대 정책실장

1980년대 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의 법인세 세율은 평균 47%가 넘었다. 그러던 것이 지금은 23% 남짓, 그 절반이 되었다. 당연히 국내총생산(GDP) 대비 법인세 비율도 줄어들었다. 1980년대 초 4% 가까이 되던 것이 지금은 2.6%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이유는 하나다. 글로벌화로 기업의 이동성이 커진 가운데 국가들이 조세경쟁(tax competition), 즉 세금 깎아주기 경쟁을 해왔기 때문이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로, 적지 않은 논란이 있었지만 법인세 세율을 내릴 수밖에 없었고, 그 결과 1990년대 후반 28%였던 세율은 22%까지 내려와 있다.

법인세 세율의 과도한 인하는 국가 재정을 약화시킨다는 문제가 크다. 소득 양극화와 노령화 문제 등 국가가 돈을 써야 할 데가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는 점에서, 또 이를 보전할 다른 재원을 찾기 어렵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기업도 마찬가지이다. 세금을 적게 내니 일단 좋은 일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과도한 세율 인하는 국가의 재정적 역할을 약화시키고, 이것은 다시 사회갈등을 심화시키고 내수경기를 침체로 몰고 가게 된다. 중·장기적으로 볼 때 오히려 손해가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어쩌겠나. 세계 정부가 있어 단일 세율을 설정하거나, 국가 간의 조세협약을 통해 통일된 세율을 적용하면 좋으련만 그런 상황은 기대할 수가 없다. 언제까지일지는 모르지만 각 국가는 자국의 이익을 위해 유리한 세율을 고집할 수밖에 없고, 그에 따라 조세경쟁 또한 계속될 수밖에 없다.

그나마 다행스러웠던 것은 지난 10년간 법인세 인하 경쟁이 어느 정도 소강상태에 있었다는 사실이다. 여전히 내려가는 추세이긴 했으나 내려가는 속도가 그 이전에 비해 완만했다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 그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 지난 2년 동안 스페인, 노르웨이 등 다수의 OECD 국가가 법인세를 인하했다. 헝가리는 19%였던 세율을 9%까지 내렸다. 그야말로 극단적 수준까지 내린 것이다.

가장 충격적인 것은 미국이다. 미국은 연방정부가 35%, 주정부는 평균 3.91%, 모두 합쳐서 38.91%의 비교적 높은 세율을 적용해 왔다. 하지만 트럼프 정부는 이를 15%까지 내리겠다고 공약을 했고, 지난달 미국 의회는 이를 21%로 내리는 법안을 통과시켜 주었다.

온 세계가 긴장한 것은 당연한 일, 중국은 곧바로 외국 기업들이 중국 내에서 벌어들인 영업이익에 대해 한시적으로 세금을 부과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일본 역시 29.97%인 법인세 세율을 20%로 내리겠다는 방침을 재확인했고, 영국도 얼마 전 19%로 낮춘 최고세율을 곧 17%로 낮출 것이라 했다. 법인세 전쟁이 다시 불붙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어떤가? 법인세 세율 인상이 논의되는 상황으로, 오히려 반대의 길을 가고 있다. 잘못된 일인가? 아니다. 양극화 해소와 복지 등에 필요한 재원을 확보해야 한다는 점에서, 또 기업 소득이 가계 소득보다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는 점에서 그럴 수 있다.

문제는 인상 논의 그 자체가 아니다. 인상을 논의하자면 그에 상응하는 정책이나 전략, 즉 법인세 세율을 올리면서도 기업을 유치하거나 붙들어 둘 수 있는 그 무엇에 대한 정책이나 전략이 있어야 하는데, 이런 게 잘 보이지 않는 게 문제이다. 혁신경제는 소리만 요란할 뿐 기업이 걱정하는 노동의 경직성은 오히려 더해지는 것 같다. 여기에 안보 문제까지 겹쳐 있다.

글로벌 분업체계가 변하고 있다. 이를테면 전자화, 자동화로 사람을 쓸 필요가 없어진 공장들이 아시아 지역에서 소비시장이 가까운 유럽이나 미국으로 옮겨가고 있다. 이러한 변화를 놓칠세라 세계 각국은 스마트공장 건설을 지원하고, 지식 노동자 양성에 박차를 가하는 한편 노동의 유연·안정성을 높이는 데 열을 올리고 있다.

이런 와중에 법인세 세율 인하 경쟁까지 불이 붙었다. 거꾸로 가겠다면 그 고민은 더욱 치열해야 할 터인데, 문제의 심각성을 알고는 있는지? 마음 한구석이 불안해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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