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고위공무원의 죽음을 바라보며

입력 2018-02-19 10:49 수정 2018-02-20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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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민 정치경제부 정치팀장

설 연휴 갑작스러운 비보를 접하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정기준 국무조정실 경제조정실장이 자택에서 잠을 자다 갑자기 별세했다는 소식을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았다.

고인은 지난해 11월 말부터 가상화폐 범정부 대책 실무를 총괄하며 부처 간 의견 취합과 조율을 담당해 왔다. 가상화폐가 이슈화되자 정치권 여기저기 불려 다니며 질책을 받는 상황이라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다는 것이 주변 사람들의 얘기다.

고인은 업무에 관한 한 치밀한 성격인 데다 일에 대해 주변에 얘기하기보다는 혼자 짊어지며 해결하는 스타일이라 최근 가상화폐 대책과 관련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너무 황망한 고인의 별세 소식에 온종일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조만간 소주 한잔하자던 고인의 말이 아직 귓가에 맴돌고 있어 더욱 믿기지 않았다.

중앙 부처 공무원으로 산다는 건 쉽지 않은 것 같다. 몇 년 전 정부세종청사에 출입했을 때 본 기획재정부를 비롯한 중앙부처 공무원들의 업무 강도는 상상을 초월한다. 연차(근로자가 근무한 날만큼 발생하는 유급 휴가)는 고사하고 여름휴가도 제대로 가지 못하는 공무원이 태반이다. 문재인 정부는 적극적으로 휴가 쓰기를 독려하지만, 실상은 업무에 밀려 제대로 쉬기도 힘든 상황이다. 업무 시간 대부분은 민원인들을 대하거나 국회에 불려 다니기 일쑤여서 정작 일할 시간이 없다. 결국 야근을 하거나 주말에 밀린 일을 하는 공무원들이 대부분이다. 특히 국회에서 시도 때도 없이 요구하는 자료를 처리하려면 밤낮이 없다. 공무원들이 ‘국회 제2중대’라고 스스로 부를 정도로 요구하는 자료나 출석 요구가 많다.

감사원 감사도 공무원들을 괴롭히는 과다 업무 중 하나다. 모 고위공무원은 얼마 전 감사원 감사에서 요구하는 자료만 줄여도 공직사회가 더 발전할 수 있다고 볼멘소리를 한 적이 있다. 감사원이 꼭 필요한 자료만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무조건 자료를 요구하다 보니 거기에 맞는 서류 작성을 하다 몇 달이 훌쩍 지나가 버린다고 한다. 국회도 마찬가지다. 심할 경우 한 트럭 분량의 자료를 요구해 며칠 밤을 새우며 자료 준비를 했는데 막상 국회에 자료를 들고 가보면 제대로 보지 않는 일도 다반사다.

오죽하면 “국회만 없어도 살 것 같다”는 말이 나올까. 예전 모 부처 차관이 우리나라가 삼권 분립이 돼 있다고 하지만 행정보다 입법이 우위에 있은 지 오래됐다며 아쉬움을 토로하던 말이 생각된다.

정치인들은 표를 의식한 포퓰리즘(대중 인기영합주의) 대책을 요구하게 되고, 힘이 약한 행정부는 이에 따를 수밖에 없는 구조다. 결국 그 책임은 공무원에게 고스란히 돌아가기 때문에 스트레스가 많다고 토로했다. 정책은 정치에 눌려 백년대계는 고사하고 길어봤자 4~5년을 바라본 대책을 짤 수밖에 없고, 그 책임의 화살은 정책을 짠 공무원에게 돌아간다는 말이다. 근본적인 대책 없이 근로시간만 줄이고 쉼 있는 삶을 살라는 것이 ‘현장을 모르는 탁상행정’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업무에 집중할 수 있는 불필요한 일을 최소화해야 쉼 있는 삶이 가능하다는 말이다.

오죽하면 철밥통 공직사회에서 민간기업으로 이직을 준비하는 선임 공무원들이 많을까. 예전에 만났던 모 부처 과장은 소위 잘나가는 공무원이었지만, 어느 틈인가 공직사회에 환멸을 느꼈다고 한다. 스스로 좌천 부서로 불리는 곳에 지원해 민간기업으로의 이직을 꿈꾸고 있다는 말은 씁쓸한 공직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우리나라 가장 엘리트 집단이 모인다는 중앙부처 공무원들이 이런 생각까지 할 정도면 공직사회의 앞날은 불 보듯 뻔하다. 행정권의 실질 권한 강화와 실제 일할 수 있는 공직사회 환경을 만들어 줘야 한다. 정치권 등 외부에 흔들리지 않는 공직사회 문화를 만들어 줘야 진정한 대한민국으로 탈바꿈하지 않을까.

아직도 우리 공직사회에 묵묵히 일하며 오늘도 밤을 새우는 공무원이 있어서 대한민국이 이나마 굴러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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