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시장 속으로] 주주 한 표가 갖는 힘

입력 2018-03-22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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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에서 저희 주주총회 의안에 대해 ‘반대’ 의견을 냈는데, 무엇이 문제인가요?”

최근 주총을 앞둔 한 상장사 IR 담당자로부터 다급한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의결권 자문사인 ISS가 부정적 의견을 피력한 것을 두고 고심하는 눈치였다. 주주 권익 침해가 우려되는 몇몇 사항에 대해 조언해줬고, 회사는 며칠 후 정정공시를 냈다. 단순히 직업적인 보람을 넘어 감사한 마음에 짜릿한 감동까지 몰려왔다.

불과 3년 전만 해도 비슷한 상황에 부닥친 기업들은 질의 대신 소송을 한다거나 강력한 항의로 맞서곤 했다. 하지만 최근 기업지배구조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기관투자자의 의결권 행사가 늘면서 상황이 반전됐다. 가령 작년 LG디스플레이는 주총 개최 날짜를 연기하면서까지 문제가 되는 사외이사 후보를 교체했다. 만도는 올해 주총 전 이슈 안건에 대해 정정공시를 내며 해당 항목을 삭제했다.

자본시장에서 3월은 주총이 꽃피는 달이다. 상장사들은 주총에서 주주들에게 회사의 근간이 되는 사항들을 보고하고 승인을 받는다. 대표적 사항은 △1년간의 경영 성과 및 재무상태 △회사 경영 시스템 및 기본 규범의 제정과 변경 △회사의 경영·감독 업무를 수행할 이사·감사 선임 △이사·감사의 보수 산정 문제 등 4가지다.

주총장으로 향하기 전 주주들은 개별 의안을 꼼꼼히 살펴야 한다. 우선 재무제표 승인의 건이다. 이익이 잘 나는 기업이라고 가정할 경우 자금 수요처가 마땅치 않은데 현금성 자산이 많다고 판단될 때 적극적으로 배당을 요구할 수 있다. 주의할 것은 단순 수치뿐만 아니라 업종별, 회사별 특징을 고려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익은 연간 변동성이 크기 때문에 배당성향은 수년간의 평균치나 자기자본 대비 배당금처럼 안정적인 지표로 판단해야 한다.

정관 변경 문제도 한번 통과하면 주주가 개입할 여지가 없이 회사 시스템과 운영에 영속적인 영향을 끼치므로 매우 중요하다. 정관 변경 안건에는 어느 정도 트렌드가 존재하는데, 이는 매년 정관에 사회의 요구와 분위기가 조금씩 반영되고 있음을 나타낸다. 특히 주주에게 영향이 큰 주식 희석화 문제와 주주가 회사의 경영과 감독을 위임하는 이사회 구성과 선임 방법 관련 항목에 주목해보자.

회사의 핵심은 사람이다. 그러기에 이사 선임 문제는 회사 경영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 많은 상장사가 주주 가치를 훼손했거나 범죄로 확정 판결을 받은 지배주주를 대표이사로 선임했다. 확정된 사실이나 절차상 명백한 결함이 있는 경우, 실질적인 주주 가치의 관점에서 반대해야 한다. 다만, 이들 회사의 오너가 직접 등기이사로 취임해 책임경영 문화 형성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국내에도 전문경영인(CEO) 체제가 확립되고 있다는 점 역시 고무적이다. 하지만 독립성 측면에서 볼 때 여전히 개선 여지가 많아 보인다. 연고 또는 거래 관계가 있었던 사람을 고용하거나, 재직 기간이 일정 기간을 초과하는 사례는 아직도 적지 않게 발견된다. 사외이사 재선임 시 이전 임기 또는 겸직 회사에서의 이사회 출석률 자체가 저조해 이사의 기본적인 충실 의무가 우려되는 경우도 있다.

마지막으로 이사 보수한도 문제가 남아 있다. 한국의 주총에서는 보수의 세부 내용에 대한 심사 기능은 없고 단지 총액에 대한 승인 가부만 판단하므로 일단 많은 액수로 승인을 받아 놓는 게 관행이다. 특이한 점은 주주를 대신해 경영진을 견제하는 기능을 수행하는 상근감사는 직원 평균 급여보다 낮은 금액을 받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는 것이다. 보수는 직무의 경중에 비례해 부여되는 것이 합당하다. 그런데 현실은 감사의 역할에 대한 회사의 평가와 이해도를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하다.

의결권 행사는 주주권리 행사의 최소한이다.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면 주주는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 소극적으로는 경영진의 전횡을 방지할 수 있고, 더 나아가 적극적으로는 주주 가치를 향상시킬 수 있다. 자본시장의 효율성과 선진화는 주주의 한 표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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