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준의 말] 시민운동가들이 정치를 해?

입력 2018-04-24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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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대 명예교수, 전 청와대 정책실장

운전을 할 때면 사각지대, 즉 백미러로도 보이지 않고 사이드미러로도 보이지 않는 측면 바로 후방 부분을 조심해야 한다. 전자 보조 장치 등으로 그 영역이 크게 줄긴 했으나 아차 방심하는 순간 사고가 날 수 있기 때문이다.

국가를 운영하는 데 있어서도 이런 사각지대가 있다. 시장은 사적 이익을 따라 움직이고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인들이 주도하는 정부는 표를 따라 움직이는 가운데 이익도, 표도 되지 않는 일들이 우리 사회의 관심 밖으로 빠져나가곤 한다는 말이다.

우리의 경우 이 사각지대가 유난히 넓다. 경제력 집중 등 시장은 시장대로 모순이 크고, 정치와 정부 역시 그 후진성을 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장이라는 백미러도, 정부라는 사이드미러도 시원치 않으니 보이지 않는 영역도 그만큼 더 커지게 된다는 말이다. 소수자들의 인권문제에서부터 자본과 노동 등의 정치 권력과의 유착 등 하나하나 열거하자면 끝이 없다.

어떻게 하면 이 사각지대를 줄일 수 있을까? 많은 사람들이 이와 관련해 제3의 섹터로서 공익적 시민단체를 주목한다. 백미러도 사이드미러도 아닌 또 하나의 독립된 미러로서 시장과 정부가 비춰주지 못하는 영역을 비춰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한동안 우리의 시민단체들도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국민적 관심을 얻어왔다. 하지만 최근 그 양상이 달라지고 있다. 비록 일부이기는 하나 고액 강좌 등을 통해 기업 후원을 받는가 하면 정부와 지방정부로부터 용역을 받기도 한다. 더 나아가서는 그 소속 직업운동가들이 정치권이나 정부에 편입돼 기존 정치 세력과 아예 한 몸이 되어 버리기도 한다.

김기식 전 금감원장 파동은 이 모든 문제를 다 보여줬다. 곤혹스러워하는 그의 모습에서 시장과 정부가 보지 못하는 것을 비춰주는 제3의 미러가 아니라, 그저 작고 흐린 백미러나 사이드미러의 한 조각으로 전락해 버린 시민단체와 그 운동가들의 모습을 함께 보았다. 안타까운 마음을 넘어 이러고도 나라가 온전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됐다.

순간, 의문이 하나 생겼다. 이들은 왜 정치나 정부로 뛰어드는 것일까? 민주화된 세상이라 이제 제3의 미러든 시민단체든 존재할 이유가 없어져서? 아니면 세상 바꾸는 데 권력만 한 것이 없어서? 그래서 권력으로 세상을 바꾸어 보겠다는 생각으로?

솔직히 말이 안 된다. 먼저, 정치가 아무리 맑아져도, 또 기업의 공적 역할이 아무리 커져도 정치가 표를 먹고 살고 기업이 이윤을 추구하는 한 사각지대는 존재할 수밖에 없다. 시민단체는 시민단체로서 존재할 이유가 있다는 말이다. 또 정치를 통해 세상을 바꾸는 것도 그렇다. 그들이 하는 정도의 정치를 할 사람은 그들 말고도 얼마든지 있다. 굳이 그들일 이유가 없다.

오히려 이들의 정치는 득(得)보다 실(失)이 많다. 우선 당장에 시민단체들이 그 명분과 힘을 잃어가고 있다. 많은 사람에 있어 시민단체는 이제 정치 기구이거나, 정치인이 되기 위해 잠시 거치는 기구 정도가 되고 있다. 그러면서 순수한 의미의 후원과 지지를 잃고 있다. 바로 이들, 즉 정치로 뛰어든 직업운동가들 때문이다.

이 기회에 다시 생각해 보자. 시장은 무엇이고 정부와 정치는 무엇이며, 제3 섹터로서의 시민단체는 또 무엇인지를. 또 시민운동가들이 시장과 유착하고 정치와 정부에 편입되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를. 다른 일을 하면서 순수한 의도에서 이들 단체를 돕는 경우라면 무슨 문제가 되겠나. 하지만 상징성이 큰 직업운동가들의 경우는 다르다. 본인들은 정치권이나 정부로의 진입을 ‘소명’이라 하겠지만, 바로 그 ‘소명’으로 인해 우리가 필요로 하는 제3의 미러는 금이 가고 있다. 스스로 물어주기 바란다. 정말 있어야 할 자리에 있는지를, 그야말로 ‘소는 누가 키울 것인지’를.

정치권과 정부도 조심해야 한다. 이들을 불러 쓰는 것은 집의 기둥을 뽑아 지금 당장 필요한 땔감 정도로 쓰는 것과 같다. 정말 나라를 생각한다면, 또 시민사회의 역할과 미래를 걱정한다면 그래서는 안 된다. 김기식 논란 자체를 넘어 무엇을 잘못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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