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 귀하-자유와 시장을 허(許)하시오

입력 2018-04-24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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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정상회담이 사흘 앞이군요. 4월 27일 판문점 남측 지역인 자유의 집으로 오는 귀하를 나는 남쪽 동포의 한 사람으로 환영합니다. 귀하가 서울로 오는 정상회담이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았겠으나, 자유의 집은 기술적으로는 남한 땅이니 귀하는 분단 이후 남한 땅을 밟는 최초의 북한 최고 지도자입니다.

회담을 1주일 앞둔 20일 귀하는 노동당 전체회의를 열어 이번 회담에 임하는 입장을 북한 주민들에게 알리는 결정서를 채택했더군요. 함경도 길주에 있는 풍계리 핵 실험장을 폐기하고, ICBM(대륙간탄도미사일)개발을 중단하며, 경제건설에 총력을 집중하겠다고 했지요.

‘경제건설 총력 집중’ 가장 잘된 결정

이 세 가지 모두에 만시지탄(晩時之歎)이 들지만 중요하고도, 매우 잘된 결정이라고 세계가 평가하고 있습니다. 나는 그중에서도 가장 잘된 결정은 세 번째의 경제건설 총력 집중이라고 봅니다. 앞의 두 가지는 이 세 번째 결정을 성취하기 위한 과정일 뿐이죠.

그동안 풍계리 핵 실험장을 생각하면 나는 가슴이 미어지곤 했답니다. 위성사진을 보니 그곳은 삼림이 우거진 수려한 금수강산이었습니다. 그동안 6회의 핵실험을 모두 그곳에서 했었죠. 방사능 오염으로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 되지 않았을까 걱정이 컸었죠.

1996년 유엔이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CTBT)을 채택한 이후 어느 핵 보유국들도 핵실험을 하지 않습니다. 핵 보유국들이 과거에 핵 실험을 한 곳도 사람이 살 수 없는 사막이나 외딴 섬이었습니다. 유독 북한만 21세기 들어 핵 실험을, 그것도 후손에게 물려줘야 할 금수강산에서 했으니 시계를 거꾸로 돌린 것이죠. 폐쇄키로 한 것은 다행입니다만 원상회복에도 만전을 기해야 후대에 부끄럽지 않을 겁니다.

ICBM 개발 중단은 미국과 싸우지 않겠다는 얘기이겠죠. 한국전쟁 때 미국과 싸웠기에 미국이 원수의 나라가 된 것은 이해합니다. 그러나 영원한 친구가 없듯이 영원한 적도 없는 것이 세상의 이치 아닙니까?

미국은 2차 세계대전의 교전 상대국인 독일과 일본을 경제대국으로 만들어 주었고, 가까운 예로는 베트남이 있죠. 남한도 미국과 함께 베트남에서 싸웠지만 베트남은 지금 두 나라와 화해하고, 두 나라와의 협력 아래 신흥 경제 강국으로 떠오르고 있지 않습니까.

한반도는 자고로 숱한 외침은 받았지만 특정 국가를 적대해서 전쟁을 하지 않은 평화의 땅입니다. 동족상잔으로 모자라 대륙 건너편에까지 적을 둬야 할 이유가 뭡니까? 해군력과 공군력의 뒷받침이 없이 굶주린 100만 대군과 ICBM 하나로 대륙 건너의 적과 전쟁을 하겠다는 것은 애초부터 무모하지 않았습니까?

귀하는 미국이 북한의 ICBM에 겁먹었다고 생각할지 모르나 미국은 북한이 결코 미국을 상대로 전쟁을 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생각한 적은 없나요? 그들은 북한의 핵무기를 자국의 국방력 증강을 위한 구실로 써먹을 뿐입니다. 일본의 아베(安倍) 정권에 전쟁을 할 수 있는 나라로 만드는 개헌의 빌미가 되었듯이 말입니다.

경제 건설에 총력을 집중하겠다는 귀하의 각오를 들으니 귀하의 아버지 김정일 위원장이 2001년 중국을 방문했을 때가 생각납니다. 그때 그는 상하이 푸둥(浦東)지구 등 중국 동남쪽 개발 현장을 목격하고 ‘천지개벽’이라고 놀라움을 표시했죠.

‘이밥에 고깃국’ 선대들의 통치 목표

그때부터 중국식 개발 모델을 추구했더라면 지금쯤 북한은 중국에 부러울 것 없는 경제강국이 됐을 것입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는 ‘선군(先軍)정치’를 표방해 핵무기 개발에 헛힘을 쏟았지요. 귀하도 지난달 중국 방문 때 중국의 실리콘밸리라는 중관촌(中關村)을 들렀다고 들었습니다. 아버지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는 듯해서 마음이 놓이기는 합니다만 비핵화에 관한 지금 생각이 변치 않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중국이라는 개발 모델보다 더 좋은 모델이 한국이라는 생각은 안 해봤습니까? 남한의 경제개발 방식은 다소 부작용이 있다고는 해도 아주 성공적인 개발 모델로 평가되고 있지요. 압축 성장은 북한이 추구해야 할 경제개발 방식인데 그 노하우에서 남한을 따를 나라가 따로 있겠습니까? 게다가 남한은 같은 민족이 아닙니까? 도와도 성의껏 도울 수 있는 상대죠.

한국적 경제개발 모형이 아무리 좋다 해도 한국이 핵무기 개발을 시도했다면 오늘의 한국은 없을 것입니다. 세계를 상대로 무역해서 먹고사는 나라가 세계 시장에서 외면을 당해서는 살아남을 수가 없죠. 우리의 비핵화 선언은 생존을 위한 선택이었던 겁니다. 북한도 남한과 비슷한 나라가 되기를 바란다면 우선적으로 핵을 버려야 합니다. 귀하의 비핵화 의지가 그런 인식에서 출발했을 것으로 믿습니다.

귀하의 선대들은 국민들에게 ‘이밥과 고깃국을 먹이는 것’이 통치의 목표였습니다. 그들은 그 목표는 이루지 못한 채 짐을 귀하에게 넘겼습니다. 핵무기를 만드는 데 쓰는 돈을 생산적인 분야에 썼다면 쉽게 이룰 수 있는 목표였습니다. 핵무기 개발로 인해 유엔으로부터 각종 제재를 안 받았으면 더 쉽게 이룰 수 있었을 겁니다.

손쉬운 통치보다 부강한 나라를

귀하의 아버지 김정일 위원장은 생전에 “백성이 등 따습고 배부르면 잡념을 갖는다”는 얘기를 남쪽 사람들에게도 한 적이 있었죠. 그런 통치관이 국민을 노예로 만드는 것이죠. 국민이 노예가 되면 통치하기는 편하겠지만 나라는 발전할 수 없지요. 그런 토양에선 창의와 도전정신이 움틀 수가 없으니까요.

귀하가 어렸을 적의 얘기라 잘 모를지도 모르겠는데 남한에서 큰 산업을 일으킨 기업인 중에는 북한 출신이 많았습니다. 현대그룹의 고 정주영 회장 형제들이 대표적이죠. 개성과 의주의 상인들은 상인의 모델이고, 함경도 또순이 기질은 근면의 귀감입니다.

왜 이 얘기를 하느냐면 기업가 정신, 상인 정신으로 치면 남과 북에 DNA상엔 아무런 차이가 없음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북쪽에 자유와 시장만 허용된다면 남북은 같아지고 한반도는 세계 어느 나라보다 부강한 지역이 될 수 있습니다.

자유와 시장이 허용돼 통치가 힘들어지는 것을 두려워 마십시오. 지도자가 국민을 두려워해야 나라와 국민이 부강해집니다. 그것은 또 진정한 지도자가 극복해야 할 도전일 뿐입니다. 귀하에겐 30대의 젊음이 있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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