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청와대 국민청원, ‘냄비근성’ 이 문제다

입력 2018-05-14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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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연 온라인뉴스부장

“영화 스타워즈에 나오는 행성 파괴용 무기 ‘데스 스타(Death Star)’를 만들어 달라”, “전설의 원인(猿人) 사스콰치(Sasquatch)를 천연기념물로 지정해 보호하자”, “파산한 과자 회사 트윙키(Twinkie)를 국유화해 되살리자” 등은 몇 년 전 백악관 청원페이지 ‘위 더 피플(We the People)’에 올라왔던 청원 내용이다. 이 중 ‘데스 스타’ 청원은 당시 답변 요건인 2만5000명 이상의 동의를 받아 백악관이 정중하게 답변을 하기도 했다.

최고 권력자의 기관이 국민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답변하겠다는 취지로 만들어진 청원 제도에서 황당무계한 내용이 등장하는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위 더 피플’을 본떠 만든 우리의 ‘청와대 국민청원 및 제안’도 요즘 지나친 장난글로 도배돼 모양새가 사납다. “커플들에게 데이트 비용을 지원해 달라”, “전 지구인에게 한글을 무료로 가르치자”, “해체한 걸그룹을 재결합하게 도와 달라”는 식이다.

이슈가 불거질 때마다 청와대 국민청원이 들끓는다. 하루 평균 700건에 육박하는 글이 올라올 정도로 사람들은 이곳에 열광한다. 국민청원은 대의민주주의의 불완전하고 부패에 찌든 모습에 실망한 국민이 다시 개개인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장이다. 이곳에 이토록 모여든다는 것은 아마 아직도 우리를 대신하는 권력 구조에 대한 상처와 배신감이 남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국민청원의 인기만큼 수치의 조작적인 개입이나 틀에 박힌 답변 등 문제점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가장 심각하게 바라봐야 할 점은 여론 형성의 오류이다. 성(性)이나 지역 갈등을 조장하거나 정치 편향적인 집단 공격이 여론처럼 부각하는 상황이 문제인 것이다. 특정한 시기에 특정 집단의 목소리가 불거지면서 사람들이 몰려들고 청와대가 나서서 해결해야 할 것처럼 부풀려지곤 한다. 특정 집단에 기운다는 것은 감정적이고 편향적인 목소리다. 이는 사회를 변화시키는 원동력이 아니라 갈등을 악화하는 여지가 된다.

그뿐만 아니라 종종 특정 인물에 대한 인민재판식의 내용도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지난 동계올림픽에서 ‘팀추월’ 문제가 된 선수에 대한 공격, 이재용 삼성 부회장의 항소심 심리를 맡았던 재판장을 파면해 달라는 청원 등이 이에 해당한다. 국민과 대통령의 소통의 장이 ‘맛 좀 봐라’라는 식의 분풀이의 장으로 평가절하되는 순간이다.

참여와 개방을 통해 개인의 힘이 집단의 힘으로 작용하는 정치, 이런 관점이 바로 집단지성을 활용한 정치다. 국민청원이라는 디지털이 만들어낸 직접민주주의 실험대에서 개인을 뛰어넘은 가치를 도출해내는 집단지성은 세상을 바꾸는 기제로 작용할 수 있다.

그러나 집단지성은 거저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집단지성의 미래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을 펴는 미국 유명 언론인 제임스 서로위키(James Surowiecki)는 “대중의 지혜가 발휘되기 위해 우선적으로 뛰어넘어야 할 것은 감정적 행동”이라고 주장한다. 집단지성에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개인’이다. 그러나 감정적으로 행동할 때 개인은 이미 한 극단(極端)에 자리 잡거나, 특정 집단을 대변하는 위치에 서게 된다. 감정에 휩쓸린 이런 집단은 지혜로운 대중이 아니라 광기 어린 어리석은 대중이 될 수밖에 없다.

앞에서 제시한 백악관 ‘위 더 피플’의 데스 스타 청원과 관련해 당시 현지 언론들은 “백악관 청원페이지가 농담의 장으로 변질됐다”고 비난했다. 그러면서도 “백악관은 데스 스타 청원을 사랑한다”며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소통창구라는 의미에 무게를 뒀다. 기술이 만들어낸 ‘디지털 직접민주주의’가 민주주의의 미래를 만들어갈 통로로 봤기 때문이다.

디지털 직접민주주의는 여전히 실험 중이다. 이 실험의 성공 여부는 ‘잠시 짖다가 조용해지거나’, ‘냄비근성’의 들끓는 감정을 배제하는 게 필요조건이다.

queeni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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