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방로] AI가 공정한 판단을 도울 수는 있지만

입력 2018-06-08 10:23 수정 2018-07-09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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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형두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스트라이크 볼 판정 하나가 경기 흐름을 바꾸고 세이프 아웃 판정 하나로 승부가 결정 나기도 하는 프로야구에서 오심(誤審)은 자주 논란거리가 돼왔다. 인간의 눈이 놓친 순간을 초고속 카메라로 재현해 볼 수 있는 기술이 나왔음에도 비디오 판독 시스템을 도입하는 데는 오랜 기간이 걸렸다.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2014년, 우리나라 프로야구에서는 2017년부터 이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이렇게 늦어진 데는 잦은 이의제기로 경기 시간이 지연된다는 것이 이유였지만, 속내는 심판의 권위를 지키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경기장 밖 판정센터에서 비디오 판독 결과를 통보할 때까지 경기장 안 심판들이 헤드셋을 끼고 기다리는 2~3분. 그 기다림의 시간은 언제부턴가 경기의 일부가 되어 야구 경기 관람의 재미있는 한 요소가 됐다. 헤드셋을 벗으면서 하는 주심의 손동작은 그야말로 번복할 수 없는 최종적인 것이 되어 심판의 권위를 세워주고 더 이상의 시비를 제압함으로써 오히려 경기 시간을 단축하는 효과도 있다.

비디오 판독 시스템은 야구 말고도 육상, 테니스, 배구, 쇼트트랙에 이어 곧 있을 러시아 월드컵에서도 사용될 전망이다. 골 여부, 페널티 킥 판정, 레드카드 등 세계인의 눈이 쏠리는 그 자리에 비디오 판정 지원 시스템(VAR: Video Assistant Referees)이 가동될 것이다. 바야흐로 운동 경기에서 오심을 바로잡기 위한 기술 도입은 거부할 수 없는 흐름이 됐다. 더 이상 오심도 경기의 일부라는 말로 그 짧은 순간을 위해 오래 준비해온 선수들의 분루(憤淚)를 그치게 할 수는 없다.

운동 경기에서 첨단 기술을 도입하는 것은 사회에도 적용할 수 있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는 이해관계가 극단으로 갈리는 경우 기계, 알고리즘, 더 나아가 인공지능(AI)의 판정에 의존하자는 말이 심심치 않게 나온다. 포털의 뉴스 편집에 인위적인 조작 우려가 있으니 사람이 아닌 알고리즘에 맡겨야 한다는 것이 대표적이다.

이해관계가 극심하게 다르고 갈등이 격화할 때 인간이 아닌 알고리즘에 판단을 맡기자고 하는 것은, 그것이 공정하고 정당하다고 믿기 때문일까, 아니면 서로를 믿지 못하기 때문일까? 현재 기술 수준으로 볼 때 후자가 아닐까 싶다. 이런 일은 도처에서 발견된다. 채용 과정에 불공정 시비가 발생하니 인공지능이 면접을 보게 하자거나, 입시에도 인공지능을 도입하자는 말이 나온다. 최근 사법부에서 발원되는 믿기지 않는 소식에 인공지능 법관이 논의되기도 하는 현실은 참으로 씁쓸하다.

보이는 것만으로 판정하면 되는 운동 경기에서 인간의 눈이 따라갈 수 없을 때, 기계의 도움을 받는 것은 기술이 주는 혜택으로 거부할 이유가 별로 없다. 그러나 운동 경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한 사회의 첨예한 갈등 해결을 인공지능이나 알고리즘에 맡기자는 것은 미봉(彌縫)에 불과하다.

사회 갈등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공정성은 양보할 수 없는 가치다. 그런데 공정성은 늘 시험대에 오른다. 공정성을 위해 때로는 기계, 알고리즘, 인공지능의 도움을 받는 것을 피할 이유는 없다. 동시에 가치중립적 알고리즘이 왜곡되거나 조작되지 않도록 끊임없이 감시해야 한다. 프로야구 비디오 판독에서 주심 외에 다른 심판이 참여하게 하는 것은 판정센터에서 통보한 것을 관중에게 제대로 알리는지 감시하기 위한 것이라니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또한 기술의 도움을 받는 시스템에 잘못이 발견되면 끊임없는 논의와 토론을 통해 수정과 보완을 게을리해선 안 된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알고리즘이 내놓는 결과는 어디까지나 정확한 판단을 위한 참고자료일 뿐, 최종결정은 인간의 몫이라는 점이다. 갈등 해소가 어렵다고 해서 인간 외의 것에 그 결정권을 주고 맡기는 순간, 즉 인간이 인공지능에 의존하고 종속되는 순간, 그때가 바로 비극적 종말의 시작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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