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인희의 손편지] 블루베리 익어가는 계절

입력 2018-06-28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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탱글탱글한 블루베리가 고운 빛깔로 익어가는 계절, 나는 블루베리 농장의 계절 노동자(?)로 한창 분주하다. 한여름 이른 아침부터 블루베리를 따는 내게 마을 할머니들께서 묻곤 한다. “아줌마는 얼마 받고 일해유?” 그럴 때마다 “섭섭지 않게 받어유” 하며 씩 웃는다. 7년 전 3년생 묘목을 심고 이듬해 꽃눈을 모조리 따서 한 해를 묵히고 난 후 출하를 시작했다. 그사이 단골 고객이 하나둘씩 늘어갔고 적당히 입소문도 나면서 완판을 이어가고 있다.

블루베리의 최대 약점은 값이 비싸다는 사실일 텐데, 수박 한 덩어리 값이나 블루베리 500g 한 팩 값이 얼추 비슷한 데는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블루베리는 포도처럼 송이째 익지 않고 한 알씩 따로따로 익기에 수확할 때 인건비가 만만치 않게 들어간다. 게다가 바나나나 토마토는 설익은 걸 따 상온에서 익혀도 맛이 나지만, 블루베리는 나무에 달려 있을 때만 익는 민감한 특성을 지니고 있어 다소 일찍 따면 풋내가 나고 조금 늦게 따면 물러버리니, 적시에 적정량의 노동을 투입해야만 한다. 까다롭기 그지없는 블루베리의 성향을 맞추자니 단가가 올라갈 수밖에.

출하 첫해인 2013년에는 6월 마지막 주에 배송을 시작했는데 불과 4년도 지나지 않아 출하 시기가 보름이나 앞당겨졌다. 기온이 빠르게 올라가는 탓에 열매 익는 시기도 덩달아 일러졌기 때문인데, 기후 변화가 예상외로 다이내믹해 걱정이 앞서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산수유 개나리 목련 벚꽃 등 꽃들이 순서 없이 피듯이 블루베리도 조생종 중생종 만생종 구분 없이 한꺼번에 익어 여간 곤혹스러운 것이 아니다.

블루베리는 표면의 하얀 분을 유지한 상태에서 적당히 익은 열매를 따는 것이 관건인데 개인별로 실력차(?)가 많이 난다. 조금만 요령이 붙으면 적당히 잘 익은 블루베리는 궁둥이를 살짝 내리는 특성이 있음을 알 수 있건만, 익었으려니 방심하다 설익은 열매를 따는 경우가 왕왕 있다.

블루베리의 효능은 익히 알려진 터. 실제로 블루베리 덕을 본 분들은 매해 블루베리가 나올 때면 잊지 않고 연락을 주신다. 그 목소리 속엔 가까운 친지들을 살뜰하게 챙기는 정성스런 마음, 어린 시절 자신을 키워준 외할머니의 고마움을 기억하는 손녀의 고운 마음, 만성 질환을 앓고 있는 친구를 위해 싱싱한 생블루베리를 찾는 간절한 마음들이 담겨 있다.

우리 단골 중엔 농장 근처에 거주하는 외국인 노동자도 다수 있다. 블루베리가 남자의 정력(?)에 좋다며 찾아오는 러시아 출신 노동자도 있고, 갱년기 여성에게 그만이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드는 중국 동포도 있다. 세 살 난 딸이 블루베리를 좋아한다고 일당을 아낌없이 터는 조선족 아빠도 있고, 눈을 혹사하는 직업 탓에 매일매일 500g 한 팩을 사가는 전문기사도 있다.

언젠가는 오랫동안 연락이 두절된 남동생에게 블루베리를 보내고 싶었던 누나가 “동생네 주소는 오빠만 알고 있으니 오빠에게 물어봐 주세요”라고 부탁을 해 씁쓸했던 적도 있다. 또, 갑자기 암 진단을 받은 남동생을 위해 생블루베리를 찾던 누나의 다급함에 당혹스러웠던 기억도 생생하다.

그러고 보면 우리 집 블루베리는 단순한 상품이 아니라 소중한 관계를 이어주는 ‘사랑의 열매’라는 생각이 든다. 블루베리가 맺어준 저마다의 인연을 기억하며 한 알씩 한 알씩 음미하며 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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