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시장 속으로] 지주사 전환의 마법에 대한 고찰

입력 2018-10-24 18:29 수정 2018-10-24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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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준 대신지배구조연구소 소장

▲김호준 대신지배구조연구소 소장
▲김호준 대신지배구조연구소 소장
자본시장에 관심이 있다면 한번쯤 ‘지주사 전환의 마법’을 들어봤을 것이다. 이는 회사의 본질적 가치에 변동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기업 지배구조를 지주사로 전환했다는 이유만으로 최대주주의 지분이 많게는 2~3배까지 큰 폭으로 늘어나는 현상을 말한다.

실제로 지난 10년간 업종에 상관없이 지주사로 전환한 국내 회사들의 최대주주 지분율은 대부분 증가했다. 국내 굴지의 이통사는 11.6%에서 25.42%, 유명 화장품 공급사는 23.35%에서 60.56%, 간장 제조사는 16.46%에서 34.26%, 제과회사는 14.56%에서 36.71%, 대주주 지분이 이미 과반이 넘었던 스크린 게임 시뮬레이터 회사 또한 53.17%에서 67.98%로 확대되었다.

우리 법은 지주사 전환에 따른 기업 오너의 메리트를 보장하고 있다. 지주사 전환 시 지배주주는 추가 비용 없이 지분 확대가 가능하고 세제 혜택은 덤으로 누릴 수 있다. 만약 실적 전망이 좋다면 시가총액 상승도 기대해볼 수 있다. 이 때문에 지주사 전환의 마법은 공정성 차원에서 비판의 대상이 돼 왔다. 해외 지주사와 비교해 제도적인 폐해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높았다. 그러나 이분법적 대립이나 단순 비교는 문제에 대한 본질적 접근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현상의 전체 메커니즘과 배경부터 이해해야 한다.

우선 지주사 전환은 1개의 회사를 투자회사(지주사)A와 사업회사 B로 분할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때 A사에는 계열사 지분, 현금, 부동산, 브랜드 등 회사 관리에 필요한 자산을, B사에는 영업과 관련된 자산과 부채를 몰아준다. B사는 비영업자산을 A사로 옮기면서 자기자본이익률(ROE)이 올라가 기업가치는 똑같아도 평가가치는 일반적으로 상승한다. 즉 ‘자산 분할 효과’가 발생한다.

또한 기업 분할 시 기존 주주는 A사와 B사의 주식을 모두 받아서 거래할 수 있는 인적분할을 하므로 주주들의 선택에 따라 매매가 활발해지면서 가격 차이가 크게 벌어지는 ‘수급 효과’까지 발생한다. 지주회사는 상장사 20%, 비상장사 40% 이상의 지분을 보유해야 하는 규정 때문에 지배할 사업회사의 주식이 필요하다. 대주주는 지배력 확보가 목적이므로 사업회사 주식을 지주사에 현물로 넘기고 그 가치만큼 지주사의 주식을 받는다.

한국에선 일반적으로 자산 위주로 구성된 지주사가 사업회사보다 싸게 평가를 받으므로 교환비율에서 유리하다. 대다수 기존 주주들은 회사의 지배가 목적이 아니므로 지주사 주식을 팔고 그 돈으로 사업회사의 주식을 산다. 유사 패턴이 몇 차례 반복되면서 이를 예상해 지주사 주식을 미리 매도하는 투자자들도 있다. 이 경우 양 주식의 가격은 더 벌어진다. 회사는 주식 교환 비율이 가장 유리한 시점에 증자와 공개매수를 단행한다.

마지막으로, ‘자사주의 활용’이다. 인적분할 시 기존에 보유하고 있던 자사주에도 똑같이 사업회사의 주식이 배정되므로, 추가 비용 없이 보유하고 있는 자사주만큼 사업회사의 지분을 자동으로 취득한다.

이렇게 보통 3단계를 거치면 오너들이 손쉽게 지분을 늘리는 지주사 전환의 마법이 완성된다. 이외에도 회사들은 각종 합법적 테크닉을 쓸 수도 있다. 예컨대, 박카스처럼 강력한 캐시카우 사업부는 이를 지주사 산하의 100% 자회사로 두고 직접 지배한다. 또한, 대주주가 지주사 지분 취득 재원 마련을 위해 사업회사 주식을 매각할 때, 대한항공처럼 부채비율이 높은 기업은 대주주 지분을 먼저 비싼 가격에 매각한 후 기존 주주를 대상으로 유상증자해 일반 주주와 직원들의 돈만으로 자금을 수혈하기도 한다. 자사주 소각 시점을 조절해 교환비율을 대주주에게 유리하게 만드는 방법도 있다.

그렇다고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주회사 전환 법규를 무조건 강화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우리는 이미 IMF 외환위기를 겪으며 한 계열사의 충격만으로 한순간에 그룹 전체가 와르르 무너지는 순환출자의 폐해를 생생히 경험하지 않았나. 지주사는 시스템 리스크와 정보의 불투명성을 해소할 수 있는 강력한 대안이기도 하다. 다만, 이 과정에서 지배주주의 모럴해저드를 방지할 수 있도록 엄격한 가이드라인, 공시 강화, 그리고 시장과의 유연한 소통이 필요하다. 온전한 정의는 이론적 면밀함, 제도적 공정성, 현실성의 반영으로 실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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