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숭호의 키워드] 걱정되는 물난리 - 빗방울은 홍수가 자기 탓인 걸 모른다

입력 2018-11-2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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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인, 전 코스카저널 논설주간

지금 나라꼴은 제방에 구멍이 뚫려 물이 콸콸 새 나오는 형국이다. 살림살이는 나날이 고달파지는데 대통령은 “물 들어오니 노 저어라”라고 실상과는 동떨어진 말로 가슴을 찌른다. ‘백두(白頭)칭송위원회’를 만들어 김정은을 환영한다고 나선 것도 모자라 광화문 세종대왕 동상 앞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 팬클럽을 공개 모집합니다. 나는 공산당이 좋아요”라고 소리치는 자들도 나타났다. 공영방송 EBS가 김정은을 ‘세계 최연소 국가원수’라고 미화/영웅화한 어린이 대상 캐릭터완구를 만들어 팔겠다고 나선 직후에 벌어진 일이다.

며칠 전 SNS에서 읽은 “어떤 빗방울도 자신이 홍수의 원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경구가 머리를 친다. 지금 우리 처지를 이렇게 콕콕 찌르듯 표현할 수 있는 다른 말은 없지 싶다. 삽시간의 물난리에 모든 걸 잃은 후에도 자기가 무슨 일을 했는지 모르거나, 세상 잘못된 것은 자기만 빼고 나머지 모든 이들의 책임이라고 소리치는 사람들이 정말 많아졌다.

이 경구는 영국의 작가인 더글러스 애덤스(Douglas Adams, 1952~2001)가 처음 만들어 썼다. 영어로는 “The single raindrop never feels responsible for the flood”다. 그의 대표작은 1978년에 전파를 탄 라디오 드라마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다. ‘은하계 초공간 개발위원회’가 은하 간 우회 고속도로를 건설하기 위해 지구를 파괴하기 직전 탈출에 성공한 주인공이 히치하이킹을 하면서 우주를 떠도는 처지가 된다는 내용이다.

영국과 미국에서 큰 인기를 끌자 소설로 개작됐고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애덤스가 이 작품으로 독자에게 주고자 한 메시지는 ‘지구가 멸망한다면 당신에게도 책임이 있다’이다. ‘어떤 빗방울도 홍수에 책임을 지지 않는다’라는 경구는 이 메시지를 뒤집어 놓은 것이리라.

애덤스의 경구가 엉망이 되어가는 나라꼴을 표현한다면 “지푸라기 한 올이 낙타의 등을 부러뜨린다”라는 영국 문호 찰스 디킨스(1812~1870)의 속담은 하루하루 짓눌린 채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아라비아 상인들은 낙타에 짐을 싣고 사막을 건넌다. 먼 길이니 많이 실을수록 좋다. 상인들은 낙타 등에 짐을 쌓고 쌓는다. ‘이거 하나쯤 더 올려도 되겠지’라는 생각과 함께 마지막으로 지푸라기 한 올을 올린다. 바로 그 순간 낙타는 무릎이 꺾어진다. 등이 부러진다.

아라비아에서 흘러 들어온 이 이야기는 ‘It is the last straw that breaks the camel’s back’이라는 속담이 돼 디킨스가 1850년부터 발간한 ‘속담집(Household words)’에 실렸다. 이 속담으로 인해 ‘Last Straw’는 사전에서 ‘마지막 지푸라기’가 아니라 ‘최후의 일격’으로 풀이된다. 최후의 일격은 흔히 생각하듯 큰 것 한 방이 아니라 사소하고 작은 것에서 비롯된다는 통찰이다.

지푸라기 때문에 허리가 부러지건, 빗방울 때문에 둑이 무너지건 매일 매일이 정말 걱정스럽다. 순간순간 새로운 짐이 내 등짝에 쌓이고 여기저기에 구멍이 숭숭 뚫리는 느낌이다. 뒤엉킨 경제, 파업, 시위, 서로서로 목청껏 퍼붓는 욕설, 오만가지 내로남불…. 거기다 ‘김정은 환영위원회’, ‘위인맞이환영단’까지 설치고 있으니!

내 견딜 만큼만 실으면 참으련만 돌아가는 꼴이 그게 아니다. 짐을 싣는 게 아니라 일부러 허리를 부러뜨리려고 작정하고 나선 것 같다. 아니겠지. 설마 저들 머리에 ‘죽어라 죽어! 네까짓 낙타는 필요 없다’ 이런 생각이 들어 있는 건 아니겠지. ‘썩은 물 가득한 이 저수지, 물갈이를 하려면 댐을 허무는 수밖에 없다’, 이런 생각을 하는 건 아니겠지. 낙타 허리 부러지면 당신도 죽어. 저수지 둑 터지면 당신도 휩쓸려 사라져. 이런 말을 해준들 귀를 막고 있으니 이를 어쩌나!!

(애덤스의 소설은 ‘죽기 전에 읽어야 할 1001권의 소설’에 포함됐다. 디킨스와 같은 대접을 받고 있다. 이 소설로 만든 영화는 2005년 우리나라에서도 상영됐다. 관객은 겨우 2만 명! 애덤스의 메시지는 오래전에 우리나라에서 철저히 묵살당했다고 말해도 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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