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성락 칼럼] 북핵 협상, ‘톱다운’ 방식만으론 안 된다

입력 2018-11-3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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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정치학과 객원교수

연초부터 숨 가쁘게 진행된 북한과의 협상에는 간과하기 쉬우나 사실은 중요한 특징이 하나 있다. 그것은 협상이 처음부터 정상급에서부터 시작되었다는 점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직접 신년사에서 남북 대화에 응할 뜻을 밝혔고, 평창올림픽을 거쳐 남북 정상회담이 판문점 남측 지역에서 있었다. 이후 북미 정상회담이 합의되었다.

그런데 한때 미국이 이를 연기하자, 북한은 2차 남북 정상회담을 판문점 북측 지역에서 열자고 하였다. 2차 남북 정상회담이 분위기 조성에 기여를 하여, 초유의 북미 정상회담이 싱가포르에서 열렸다. 그 후 남북 3차 정상회담이 평양에서 열렸다. 이제는 내년 언제 2차 북미 정상회담이 열릴 차례로 되어 있다.

이처럼 정상이 앞장서서 협상을 리드하고 그 동력을 아래로 내려주는 식의 접근을 세간에서는 ‘톱다운(Top down) 방식’이라고 부른다. 아래에서부터 협상을 시작하여 정상이 마무리 짓는 ‘보텀업(Bottom up)’ 방식에 반대되는 개념이다.

외교 관행으로 보면 보텀업 방식이 상례이다. 먼저 실무급에서 정상이 합의할 틀거리를 사전에 충분히 협상하고, 여기서 의견이 수렴되면 정상회담을 열어 합의문을 발표하는 식이다. 그럼으로써 정상회담은 실무진이 준비한 것을 수확하는 장이 되는 것이다.

이런 방식이 선호되는 이유는 톱다운이 갖는 리스크 때문이다. 톱다운 방식은 최종 결정권자가 직접 담판하는 것이므로, 잘되면 신속히 성과를 낼 수 있으나 잘못될 경우 후과(後果)가 클 수 있다. 사전 조율이 미진한 상태에서 정상이 직접 국익 거래에 나설 경우에 생길 리스크가 크다는 말이다.

더구나 정상의 자리에 오른 분들은 대체로 강한 에고의 소유자일 개연성이 크다. 강한 에고끼리 진검 승부를 할 경우에 그 일이 항상 순조로우리라고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러한 위험 부담이 있기에 첨예한 교섭은 실무선에서 수행하고, 그 결과를 토대로 정상들은 성과물을 거두는 일종의 외교적 의식(ritual)을 거행하는 것이 일반적인 정상외교의 모습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 내에는 실무협상에서부터 시작하여 위로 올라가는 접근에 대한 회의론이 있어왔다. 과거 오랫동안 북핵 협상이 실무자들에 의해 진행되면서 교착과 파기를 거듭해온 경위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보다 근본적으로는 우리 의식 속에 최고위급 담판에 대한 막연한 신화 내지 호감이 존재한다는 점도 인정해야 할 것이다. 난국이 생길 때마다 영수(領袖)회담, 정상회담, 정상 특사 파견 아이디어가 기발한 해법인 양 스스럼없이 튀어나오는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모두 정상과 직접 대화해야 문제가 풀린다는 신화의 발로인데, 아마도 우리가 알게 모르게 위계적인 사고에 물들어 있기 때문에 그런지도 모른다.

배경이 이렇다 보니, 북한처럼 모든 결정권이 최고 존엄에게 집중된 체제를 상대로 실효성 있는 협상을 하려면 정상이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국내에서 상당한 설득력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곧바로 정상회담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고, 김정은 위원장이 이에 호응하자 엄청난 기대가 생겨나게 된 것이다.

이러한 기대는 남북 정상회담을 거쳐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에 이르면서 충족되는 것처럼 보였다. 국내에서 톱다운 방식에 대한 예찬이 거보라는 듯 넘쳐났고, 자연스럽게 보텀업 방식은 구태처럼 여겨졌다.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만나 악수하는 김정은 위원장과 트럼프 미 대통령. 당초 예상과 달리 2차 북미 정상회담은 언제 열릴지 아직 불투명하다.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만나 악수하는 김정은 위원장과 트럼프 미 대통령. 당초 예상과 달리 2차 북미 정상회담은 언제 열릴지 아직 불투명하다.
그러나 북미 정상회담 후 후속협상을 위해 북한을 찾아간 폼페이오 국무 장관과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 간의 협의가 공전하면서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하였다. 폼페이오가 떠난 직후, 북한은 폼페이오가 정상 합의에서 벗어난 주문을 하였다고 공개 비난하고 이를 강도적 요구라 불렀다. 북미 협상은 정체되었다.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새 동력을 불어넣어야 하는 상황이 생겼다. 남북 평양 정상회담이 열렸고, 이는 북미 간 협상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기여하였다.

덕분에 폼페이오의 방북이 성사되었다. 그는 김정은과 만나 2차 북미 정상회담과 이를 위한 실무협상에 의견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그 후에도 실무협상은 지연되었다. 북한은 폼페이오와의 추가 회담을 위한 김영철의 방미를 마지막 순간에 연기했고, 미국이 일찌감치 제안한 비건 특별 대표와 최선희 부상 간의 협상에 대해서도 답을 주지 않고 있다.

일이 이렇게 흘러가는 이유는 북미 간에 싱가포르 회담 결과와 후속협상을 보는 시각에 큰 괴리가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싱가포르에서 양 정상이 관계 개선과 신뢰 구축부터 하여 비핵화에 접근하기로 합의했다고 보고 있다. 북한은 후속협상의 임무는 이를 이어받아 구현하는 것이라고 본다. 싱가포르 합의문을 보면 북한 주장이 무리가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그렇게 합의해 준 것으로 쓰여 있다. 그런데 북한은 폼페이오와 대좌해 본 후, 미국이 후속협상에서 싱가포르 합의를 재해석하려 한다고 의심하게 되었다. 그래서 북한은 폼페이오나 비건 레벨의 대화에 대해 소극적이다.

반면 미국 내, 특히 트럼프 대통령을 제외한 조야의 시각은 이와 크게 다르다. 이들은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이 충분한 사전 준비 교섭 없이 바로 정상을 대면시켰기 때문에 트럼프가 김정은에게 과도한 양보를 하였다고 본다. 그래서 2차 북미 정상회담은 충분히 준비한 후에 진행하려고 한다. 이들은 준비 과정의 급선무는 북한이 싱가포르에서 언급한 완전한 비핵화를 구체화하는 것이라고 본다.

달리 말하면, 이제부터는 보텀업 접근을 채택하려고 하는 것이다. 미국 조야는 여기서 진전이 없으면 2차 정상회담을 서두르지 않으려고 한다. 물론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오롯이 따를 것이냐는 별개의 문제이긴 하지만, 미국 내 주류는 실무협상의 진도를 보고 다음 수순을 대통령에게 건의할 태세이다.

이렇게 북미의 생각이 달라 교착된 현 국면에서 우리는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하나? 이와 관련하여 국내에서는 김정은 방남을 성사시켜서 북미 협상을 추동할 분위기를 만들자는 구상이 제기되고 있다. 더 나아가 미국에도 일단 북미 정상회담을 열어 실무진에게 선순환의 에너지를 투하하도록 주문하자는 생각도 고개를 들고 있다. 모두 톱다운에 기반을 둔 접근이다.

그간 남북 정상회담 카드로 북미를 대좌시키는 일이 몇 차례 있었으므로 이 방안이 제기되는 이유는 이해할 수 있다. 물론 북한이 남북 정상회담에 응한다는 전제에서다. 그러나 북미 정상회담으로 실무협상을 추동하자는 안은 미국을 설득하기 쉽지 않다. 우선, 우리와 달리 미국 내에는 톱다운에 대한 선호가 없다. 오히려 미국의 조야는 싱가포르에서의 톱다운 실험으로 실무협상이 어렵게 되었다고 본다. 보텀업 접근을 배제할 수 없는 현실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현실이 이러니 우리가 취할 입장은 자명해진다. 두 방식 모두를 열린 자세로 대하는 것이다. 근본적으로 두 접근은 우열관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각자 강약점이 있을 뿐이니, 보완적으로 구사하자는 입장에 서는 것이 좋다. 그래야 전술적으로도 북미 어느 쪽에 치우치지 않고 우리의 설득 입지를 확보할 수 있다. 북미가 두 방식을 병행하여, 교착 상태를 타개하고 협상을 진전시키도록 독려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그러려면 톱다운에 대한 우리의 선호를 조금 낮추어야 한다. 앞서 살핀 대로 톱다운에도 명암이 있음을 인식해야 하고, 보텀업을 부정적으로 보지 않아야 한다. 중요한 것은 두 방식을 배합할 타이밍을 잘 분간하는 것일 터인데, 지금이 보텀업 방식을 가미하여 톱다운 방식을 보완할 때라고 생각된다.

주러시아 대사, 외교통상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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