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성락 칼럼] 파기 직전의 미러 중거리 미사일 협정과 한반도 정세

입력 2019-01-31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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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정치학과 객원교수

우리가 온통 남북, 미북 정상회담에 신경을 쓰고 있던 작년에 미국과 러시아 간에는 국제 안보와 한반도 주변 안보에 큰 영향을 미칠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미러 간 중거리미사일(INF) 협정이 파기될 운명에 놓인 것이다.

미러 INF 협정은 1987년 당시 레이건 대통령과 고르바초프 총서기가 서명한 것으로서, 양국이 사거리 500~5500㎞에 이르는 지상발사 탄도미사일과 순항미사일을 보유하지 않기로 한 합의이다.

이 합의가 이루어지기까지의 배경에는 냉전 시기 미국과 러시아 간의 해묵은 미사일 경쟁이 있었다. 70년대에 러시아는 SS-20이라는 중거리미사일을 동유럽에 새로 배치하였다. 미국과 서유럽 국가들은 이것이 유럽 대륙에서 동서 간 군사 균형을 깨뜨리는 것이라고 문제를 제기하고, 철수를 요구하였다. 러시아는 응하지 않았다. 그러자 미국은 이에 대응하여 ‘퍼싱Ⅱ’라는 중거리미사일을 서유럽에 추가로 배치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면서 미국은 러시아에 협상을 요구하였다. 긴 협상 끝에 결국 미국과 러시아는 상호간에 모든 중거리미사일을 없애기로 합의하여 쟁점을 해소하였다. 그 합의가 INF 협정이었다.

당시 INF 협정은 미러 간의 긴장 완화와 신뢰 구축의 상징이었다. 냉전이 종식되고 있음을 알리는 신호였다. 레이건 대통령과 고르바초프 총서기가 냉전 종식을 앞당긴 인물로 평가받게 된 근거 중 하나가 이 협정에 서명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협정이 다툼의 대상이 된 것은 2014년부터이다. 미국이 러시아에 대해서 협정 위반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미국은 러시아가 개발하고 있는 신형 지상발사 순항미사일이 협정에 위배된다고 주장하였다. 러시아는 이 미사일의 사거리가 500㎞ 이하이므로 INF 협정이 금지하는 미사일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반박하였다.

이에 대해 미국은 러시아가 지상에서는 500㎞ 이하로 실험하였으나, 같은 미사일을 공중과 해상에 탑재하여 500㎞ 이상으로 실험한 것이 문제라고 하였다. INF 협정은 지상발사 중거리미사일만 금한다. 공중과 해상발사 미사일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미국에 의하면 러시아가 이러한 방식으로 지상발사 실험과 공중 해상발사 실험을 배합하는 것은 협정을 교묘하게 악용하여 사실상 협정이 금하고 있는 무기를 개발하는 것이니, 협정 위반이라는 것이다.

▲미국이 러시아와 맺은 중거리미사일(INF) 조약 탈퇴 방침을 밝힌 가운데 러시아가 조약 위반 무기로 지목된 신형 미사일을 공개했다. 러시아 국방부는 23일 군사공원인 파트리옷에서 서방국가 무관들과 해외 언론을 초청해 브리핑을 열고 9M729 미사일 4기와 수송 장비, 발사대가 장착된 이스칸데르-M 시스템을 공개하면서 1987년 체결된 미-러시아 INF 조약이 정한 제한 범위를 준수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날 브리핑에 미국은 참석하지 않았다.  모스크바/타스연합뉴스
▲미국이 러시아와 맺은 중거리미사일(INF) 조약 탈퇴 방침을 밝힌 가운데 러시아가 조약 위반 무기로 지목된 신형 미사일을 공개했다. 러시아 국방부는 23일 군사공원인 파트리옷에서 서방국가 무관들과 해외 언론을 초청해 브리핑을 열고 9M729 미사일 4기와 수송 장비, 발사대가 장착된 이스칸데르-M 시스템을 공개하면서 1987년 체결된 미-러시아 INF 조약이 정한 제한 범위를 준수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날 브리핑에 미국은 참석하지 않았다. 모스크바/타스연합뉴스

미국의 문제 제기에도 불구하고 러시아는 이에 반론을 하면서 실험과 개발을 지속하였다. 2017년에 들어서자, 미국은 러시아가 이 미사일을 배치하기 시작하였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미국은 러시아가 필요한 조치를 하지 않으면 협정을 파기할 수밖에 없다고 하였다.

한편 러시아는 미국이 협정을 위반하고 있다고 반격하였다. 러시아는 미국이 유럽에 배치한 미사일방어체계가 요격용 미사일 발사대이지만, 동시에 공격용 중거리 순항미사일 발사대로도 사용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으니 INF 협정에 위배된다고 주장하였다. 또 러시아는 미국이 운용하는 드론 중에서 지상발사 순항미사일과 유사한 기능을 하는 것이 있다고 하였다. 이것도 협정 위반 소지가 있다는 주장이다. 미국은 이러한 주장을 모두 부인하였다.

논란이 지속되는 가운데 미국은 협정 파기 쪽으로 계속 기울어졌다. 미국이 협정 파기 방향으로 움직이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러시아의 협정 위반이지만, 미국에는 또 다른 이유도 있었다. 그것은 중국의 중거리미사일 개발 움직임이었다. 이 협정은 미러 양자 협정이므로 미국과 러시아 두 나라에만 해당이 된다. 미국과 러시아가 상호 지상발사 중거리미사일을 보유하지 않기로 합의한 것이다. 그런데 그동안 이 협정과 무관한 중국이 아무런 제약 없이 중거리미사일 능력을 계속 늘려 왔다. 미국은 이 점을 우려의 눈으로 보고 있었다. 무언가 대처가 필요하다는 인식을 갖게 되었다. 미국에 중국 요소가 부차적인 파기 사유가 된다는 말이다.

러시아는 미국의 협정 파기 시도를 저지하기 위해 국제적 여론을 불러일으키려고 하였다. 이의 일환으로 유엔 안보리에서 해당 사안에 대한 결의안을 추진하였다. 그러나 안보리 결의건은 미국의 반대에 봉착하여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안보리에서의 결의는 상임이사국 모두의 동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작년 10월에 트럼프 대통령이 INF 협정 파기 계획을 공개 언급하였다. 그러자 러시아는 황급히 사안을 유엔 총회로 가져가 총회 결의안 채택을 추진하였다. 안보리와 달리 총회에서는 상임이사국이 반대하더라도 다수표만 얻으면 결의안이 채택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총회 결의안도 미국의 로비에 밀려 부결되고 말았다.

급기야 작년 12월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러시아가 미국이 기대하는 조치를 하지 않는다면 협정은 60일 이내에 파기된다고 공표하였다. 1월 들어 미국과 러시아의 실무진이 만나 협의를 하였으나 성과는 없었다. 이제 미국이 제시한 파기 시한이 2월 초로 다가온다.

미국의 협정 파기 움직임에 대해 다수의 유럽 국가들은 무협정 상태가 초래할 미러 간 대립과 군비 경쟁, 그리고 뒤이은 긴장 격화를 우려한다. 이들은 미러가 협의하여 쟁점을 해소하고 협정을 살릴 방안을 찾아내기를 바라는 입장이다. 자칫 유럽이 미국과 러시아 간 중거리미사일 경쟁의 피해자가 될 가능성을 염려한다.

한편, 협정이 파기되면 그 여파는 한반도와 주변에도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미국이 협정 파기를 추진하는 배경에 중국 요소도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미국은 러시아에 대해서는 물론 중국의 중거리미사일에 대해서도 대처를 강화할 것이다. 미국은 동아시아 지역의 미군 병력과 장비 그리고 기지를 방어하기 위해 중국과 러시아의 중거리미사일에 대처하는 미사일 방어망을 강화하려고 할 것이다. 더 나아가서는 공격용 중거리미사일을 해상과 공중은 물론 지상에도 추가 배치하려고 할 소지가 있다. 일본에 배치할 수도 있고, 한국에 배치를 추진할 수도 있다.

과거 주한 미군이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를 배치할 때에 벌어진 중국과 러시아의 반발을 기억한다면, 미국이 추가적인 미사일방어체계를 한국에 도입하려 할 경우에 어떤 일이 생길지 짐작할 수 있다. 더욱이 미국이 공격용 중거리미사일을 배치하려고 할 경우에 생길 논란은 미사일방어체계 배치보다 훨씬 심각한 논쟁을 야기할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한반도와 주변의 정세는 북핵 문제를 둘러싸고 이미 복잡하다. 근래 미국과 중국, 미국과 러시아 사이의 관계는 수십 년 이래 최저점이다. 이러한 양자 관계 악화는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공조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 더하여 INF 협정이 파기되고 그 여파로 동아시아 지역에 미사일 군비 경쟁이 불붙으면 북핵 문제 해결 여건은 더욱 나빠질 소지가 있다. 더 나아가 미국과 중러 간의 대결이 격화되면 한반도와 그 주변에서 긴장이 격화될 수 있다.

1987년 INF협정 체결이 냉전 종식을 알리는 전조였다면, 30여 년이 지난 지금 이 협정이 파기되려는 조짐은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 우리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대목이다. 무엇보다도 2차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있는 지금은 한반도에서의 비핵 평화 협상이 중차대한 전기로 들어가는 때이다. 이 시점에 미러 간, 미중 간 대립 소재가 될 또 하나의 사안이 불거질 소지가 크다는 것은 우리에게 도전이 아닐 수 없다. 각별한 주의와 대처가 요구되는 상황이다.

주러시아 대사, 외교통상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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