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일환의 Aim High] 연금아, 이니가 시키드나

입력 2019-04-0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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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경제부장

지금까지 이런 빌런은 없었다. 이것은 안방군수인가 글로벌 양아치인가.

남들 앞에서 정의를 외치는 자의 본질은 대개 뒤에서 나는 구린내인 법이다. 일본 전범기업 투자로 수천억 원 날려 먹고 화풀이는 국내 대기업 오너에게 한 국민연금식 정의구현도 별로 다르지 않다.

두 가지를 들여다볼 텐데, 혈압 조심하시라. 우선 예고편으로 국민연금 본연의 임무인 수익률이다.

2018년 말 기준으로 국민연금의 국내 주식 투자 규모는 109조 원에 달한다. 국민연금 전체 자산의 17.1%다. 해외 주식은 113조 원으로 국내 주식보다 더 많다. 전체 자산의 17.7%가 해외 기업에 투자돼 있다.

지난해 국민연금은 국내 주식에 투자했다가 총 22조1600억 원의 피 같은 돈을 날렸다. 수익률은 -16.77%. 안에서 샌 바가지가 밖에서라고 다를까. 해외 주식 투자에서도 7조500억 원을 잃어 -6.19%를 기록했다. 국민연금이 운용 중인 투자대상 중 최악의 성적표를 받은 과목이 국내 주식이며, 손실률 2위가 해외 주식이다. 30조 원 가까운 연금 가입자들의 노후자금을 지구촌 곳곳 애먼 놈 주머니에 뿌리고 다닌 글로벌 호구연금이다.

두 번째는 이거 실화냐 소리가 절로 나는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 행태다. 마음 같아선 [최초 공개] 혹은 [단독]이라며 호들갑 떨고픈 내용들이다.

2017년 말 기준으로 국민연금이 투자하고 있는 국내 기업은 799곳에 달한다. 해외 주식은 100만 달러 이상 투자한 회사만 3185개로 국내 기업의 4배가 넘는다. 그런데 의결권을 행사한 경우는 정반대다. 2018년 1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 1년간 국민연금이 국내외 투자기업에 행사한 의결권을 모조리 조사해봤다. 국내 기업을 대상으로 한 사례는 총 636건이다. 하지만 해외 기업은 20분의 1도 안 되는 29건뿐이다.

내친김에 지난 한 해 국민연금이 목소리를 냈던 투자대상 해외 기업의 의결권 행사 내역도 샅샅이 훑어봤다(29건뿐이라 밤샘은 면했다. 개이득). 글로벌 거수기 노릇이나 한 것은 아니었을까 싶던 우려는 다행히 빗나갔다.

국민연금은 애플, 페이스북, 아마존 등 굴지의 기업들을 상대로 29번 가운데 절반이 넘는 16번이나 “난 반댈세”를 외친 용자다. 하지만 꼼꼼히 읽어보면 눈을 의심케 하는 내용들이 보인다. 스튜어드쉽 코드 같은 어려운 말 앞세워 국내 기업들에게 정의로운 몽둥이를 휘두른 국민연금이 밖에 나가서 보여준 행태는 사뭇 다르다.

2018년 5월 15일, JP모건(JP Morgan) 주주총회에는 ‘반인륜 범죄기업 투자 금지안’이 상정됐다. 구체적인 내용은 알 수 없지만 일본 전범기업 같은 패륜기업에는 투자하지 않는다는 원칙이 담겼을 것으로 추정된다. 놀랍게도 국민연금은 이 안건에 반대표를 던졌다.

국민연금은 “회사 측이 반인륜 범죄기업 투자 관련 정책을 충분히 공개하고 있으며, 현재 회사의 환경·사회 관련 리스크 관리 프로세스가 해당 이슈를 이미 다루고 있다”고 반대표 행사 이유를 밝혔다. 전범기업 주주의 제 발 저린 오버액션이 아니길 바랄 뿐이다.

이보다 앞서 그해 2월 13일 열린 애플(Apple) 주총에는 ‘인권위원회 신설’ 안건이 올라왔다. 국민연금은 여기에도 반대했다. ‘관련 제도 기보유’가 이유다. 역시나 이미 있는데 뭘 또 하냐는 뜻일 것이다.

4월에는 시티그룹(Citigroup)이 ‘인권정책’을 채택하려 하자 이 역시 막아섰다. “회사 측이 인권 정책 등을 충분히 수립, 공개하고 있다”며 반대했다.

같은 달 화이자(Pfizer) 주총에서는 ‘주주서면 동의안’에 딴죽을 걸었다. 경영진의 의사결정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될 경우 소액 주주들이 서면으로 의견을 모으면 따질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국민연금은 “현재 10% 주주의 동의가 있는 경우 임시주총 소집이 가능하여 경영진 견제수단으로 활용 가능하며, 제안상 구체적 조건과 절차가 명시되지 않아 주주가 경영진에 위임한 권한이 과도한 제약을 받을 우려가 있는 등 도입에 따른 경영상 제약 대비 주주 권익 확대가 분명하지 않다”며 반대했다.

다 좋다. 백묘건 흑묘건 등 따시고 배부르게 노후 걱정 덜어준다면 모른 척 넘어가 줄 용의가 있다. 하지만 불려주겠다며 남의 피 같은 돈을 가져다 날려먹고 여기저기 행패나 부리고 다닌다면 얘기가 다르다. 그런 짓을 하는 사람을 선량한 시민들은 깡패 혹은 양아치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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