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과 함께하는 시간] 꽃은 어머님이다

입력 2019-05-03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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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정일 신구대학교 원예디자인과 교수·신구대학교식물원 원장

제목을 보면 아버님들께서 서운하실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아버님들도 어머님이 계셨을 테니 서운해하지 마시길 부탁드리면서 글을 시작합니다.

올봄 식물원은 그 어느 해 봄보다 아름답고 풍성합니다. 지난해 봄에는 불규칙하고 건조한 날씨 탓에 식물이 잘 자라기 어려웠고, 미세먼지가 극성을 부려 식물원을 찾으려던 관람객도 지레 포기하기 일쑤였습니다. 특히, 식물원의 봄은 꽃들이 보여주는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유치원생들과 같은 어린아이들이 식물원에 가득한 모습이 꽃보다 더 예쁘기도 합니다. 지난해 봄에는 미세먼지로 인해 아이들 발길이 줄어 이 예쁜 모습을 보는 기회도 줄었었습니다. 사실 식물원에 설치한 미세먼지 측정기를 보면, 일기예보에서 보여주는 미세먼지 농도에 비해서는 현저하게 낮은 ‘좋음’을 보여주기 때문에 식물원으로 더 많이 대피하는 것이 좋은데도 일기예보에서 야외활동을 자제하라고 하니 어쩔 수 없습니다. 다행히도 올봄은 미세먼지 주의보가 줄어들어 아이들 발걸음도 많아지고 예쁜 ‘아이들 꽃’도 많이 피었습니다.

5월 초 식물원을 가득 채운 튤립, 라일락, 작약 그리고 ‘아이들 꽃’을 보면서 ‘꽃’을 다시 생각해봅니다. 우리는 보통 꽃을 보고 시각적으로 ‘예쁘다’ 또는 후각적으로 ‘향기롭다’라고 하면서 기뻐하는 것이 전부입니다. 그러나 꽃이 가진 생명의 의미를 생각해보면 조금 숙연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우리가 초등학교(필자는 국민학교)에서 꽃의 구조를 배웠을 것입니다. 꽃은 암술, 수술, 꽃잎, 꽃받침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말입니다. 그런데 식물을 좀 깊이 공부한 지금 생각해보면 이 구조가 갖는 의미가 너무나 깊습니다.

식물학적으로 ‘꽃’은 모든 식물에 피지는 않습니다. 꽃의 핵심은 암술과 수술, 그중에서도 특히 암술머리, 암술대, 씨방으로 구성된 암술에 있습니다. 그 ‘씨방’ 속에는 장차 수정되어 씨로 자라날 ‘밑씨’라고 하는 것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렇게 밑씨가 씨방 속에 자리 잡고 있는 식물들을 식물학적으로 속씨식물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꽃’은 속씨식물들에서만 피는 것입니다. 포자로 번식하는 포자식물, 씨방이 없이 밑씨가 겉에 드러나 있는 겉씨식물들은 엄밀하게는 꽃이 피지 않는 식물들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 꽃이 우리 어머님들과 너무나 똑같습니다. 우리가 어머님 뱃속에서 어머님을 괴롭히고 있었을 때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어머님은 어머님만이 가진 고귀한 자궁 속에 우리를 열 달간이나 힘들게 품어서 키우셨습니다. 어머님들은 먹기 싫은 음식도 뱃속에 있는 우리들을 위해서 드셨습니다. 또 짜증이 나거나 화가 날 때도 애써 좋은 생각만 하려고 노력하셨습니다. 식물, 즉 속씨식물도 똑같습니다. 수정된 밑씨가 훌륭한 씨앗으로 자랄 때까지 씨방 속에 잘 품고 많은 영양분을 그 밑씨에게 주면서 튼튼한 씨앗으로 키워냅니다.

어머님들은 우리가 태어난 뒤에도 혼자 음식을 먹을 수 있을 때까지 젖을 물려 키우셨습니다. 어머님의 몸이 축나더라도 아이에게는 젖을 물리셨던 것이 우리들 어머님이셨습니다. 속씨식물도 같습니다. 그렇지만 젖을 주는 방법은 조금 다릅니다. 태어난 어린 식물, 즉 새싹에 젖을 물릴 수 없는 실정이다 보니 그 젖을 미리 어린 식물에 주어서 내보냅니다. 씨앗이 싹터서 식물로 자라기 때문에 씨앗도 어린 식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씨앗이 배와 배젖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배가 실제로 어린 식물로 자라게 되고 ‘배젖’은 바로 어린 식물인 배가 스스로 광합성을 해서 영양분을 섭취할 수 있을 때까지 한동안 먹고살 어머님의 ‘젖’인 것입니다. 어떤 식물은 배젖 대신에 떡잎에 양분을 저장해주기도 합니다. 어머님들이 우리에게 젖을 주시는 것과 같이 어미 식물도 어린 식물에게 젖을 주는 것입니다.

처음에 아버님들께 섭섭함을 이해해 달라고 부탁드렸지만, 다시 한번 이해를 부탁드립니다. 아이를 잉태할 때 그리고 아이가 성장하는 동안 아버님의 역할도 분명히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아이를 뱃속에 품고 있는 동안 그리고 태어나서 젖을 먹이는 동안은 거의 대부분이 어머님 혼자서 짐을 짊어지셨습니다. 식물도 같습니다. 수술에서 꽃가루가 암술에 옮겨져 밑씨가 수정이 되고 나면 수술의 역할은 더 이상 없습니다. 그때부터는 온전히 암술, 즉 어머님의 몫입니다.

5월 가정의 달입니다. 특히 어머님을 생각하는 달이면 좋겠습니다. 아름답고 심오한 꽃을 보면서 어머님을 떠올리는 날들 가지시길 바라봅니다. 그리고 어머님께 꽃 한 송이 선물해 보십시오. 어머님께서 그 꽃을 어떤 의미로 받아들이시든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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