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찬국의 세계경제] 관세 무기화와 국제경제 질서

입력 2019-06-07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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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충남대 무역학과 교수

근래 각종 조치를 동원한 미·중 간 무역전쟁이 확전되면서 미국 내외에서 그간 중국의 불공정한 관행과 정책이 문제였다는 인식과 미국의 강경 대응이 불가피하다는 인식이 설득력을 얻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지난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멕시코에 대해 관세를 크게 높일 것임을 발표하며 그간의 정책이 앞뒤를 가늠한 정책 대응이었을 것이라는 긍정적 평가에 찬물을 끼얹었다. 멕시코에 대한 관세 부과 위협은 경제적 이유가 아니라 중남미로부터 유입되는 불법 입국자들을 통제하지 않고 있어 괘씸하다는 것이 그 근거이기 때문이다.

다음 주 초를 기점으로 5%로 시작해 만족할 만한 조치가 없을 경우 10월 초까지 멕시코로부터의 수입품에 관세율을 순차적으로 25%까지 높이겠다고 한다. 이 발표가 뜬금없는 것이 트럼프 대통령 취임 후 1994년부터 작동해온 북미3국 자유무역협정(NAFTA)을 폐기하고 대신 체결한 3국 자유무역협정의 의회 비준을 추진 중인 상황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각국 의회의 승인을 촉진하기 위해 2주 전 멕시코로부터 수입되는 철강과 알루미늄에 부과했던 25%의 관세를 철폐했다.

그동안 금융시장에서 점차 격화되는 미·중 무역전쟁에 대한 우려가 악재로 상존하며 자금 흐름과 주가의 등락에 영향을 미쳐왔다. 하지만 멕시코 관세에 대한 반응은 더 즉각적이었다. 요즘 젊은이들이 쓰는 ‘헐~!’이라는 표현이 딱 맞는 상황인데 향후 경기 사정에 대한 기대를 반영하는 장기 국채 금리가 빠르게 떨어졌다. 미국 소비자들에게 미치는 부정적 효과를 쉽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멕시코로부터 수입되는 신선 농수산물 가격이 오를 뿐 아니라 미국이나 멕시코에서 생산되는 미국의 자동차 부품이 공정과정에서 보통 5회 정도 국경을 넘나들기 때문에 미국으로 반입될 때마다 5%의 관세를 내야 하면 그 비용이 빠르게 올라간다.

멕시코 관세가 미국 경제 전반과 소비자들에게 미칠 부정적 영향이 2년 전에 단행되었던 대폭 감세의 긍정적 효과를 상쇄할 것이라는 분석 결과들이 빠르게 나오고 있다. 조세 효과를 분석하는 워싱턴의 조세재단(Tax Foundation)과 다른 연구소들은 멕시코 관세 부과 계획이 실행되면 그 부정적 효과가 광범위하게 나타나고, 특히 중산층과 그 이하 소득 계층에 상당히 클 것이라는 분석 결과를 내놓았다.

이런 부정적 여파에 대한 우려 때문에 공화당 정치인들도 이번 멕시코 관세에 반대 의사를 표명하고 있다. 공화당 소속 상원 의원들은 그 동안 트럼프 골수 지지층이 등을 돌리면 자신들의 재선이 어려워진다는 공포감에 대통령의 정책에 이견(異見) 표명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경우 예외적으로 백악관 참모진에 반대 의견을 전달했다고 한다. 이번 사안은 연체동물형 정치인들에게도 등뼈를 키워줄 만큼 부작용이 큰 일임을 보여준다.

당장의 득실을 넘어서 장기적으로 트럼프 정부의 관세 무기화가 역사적으로 미국이 공들여 쌓아놓은 개방된 국제경제 질서에 심대한 타격을 입힐 것이라는 걱정도 많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폴 크루그먼은 미국 정부의 안보를 이유로 내세운 방만한 관세 남발과 무역협정 파기 등 국제적 다자주의 경제 질서 파괴에 대해 매우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최근 뉴욕타임스 칼럼에서 현재 미국의 모습이 세계경제가 엄청나게 혼돈스러웠던 1·2차 세계대전 간의 전간기(戰間期)의 미국을 연상시킨다고 했다. 당시 미국은 고립주의적, 자국 이익 우선을 내세운 무분별한 관세 인상과 보호무역 조치로 자국과 세계경제의 공황을 더 악화시켰다. 역사학자들은 당시의 혼란이 나치 등 극단적 세력의 등장을 초래했다고 평가한다.

전간기 혼란의 재발을 막기 위해 2차 세계대전 종식과 함께 미국이 주도해 구축된 것이 브레턴우즈 체제이다. 국제적 규범과 협력에 바탕을 둔 이 체제는 빠른 전후 복구와 세계경제 번영의 초석이 되었다. 하지만 현재 미국 정부는 이런 역사의 교훈을 애써 외면하려는 모습이다. 단기적으로 우리 경제에는 미·중 무역전쟁의 직접적 영향이 더 클 것이나, 길게 보면 현재 진행 중인 멕시코 관세 사태의 파장도 클 것이기에 어떤 식으로 전개될지 주시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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