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병호의 독서산책] 션판 ‘홍위병’

입력 2019-06-23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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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무역전쟁을 보며 떠오른 ‘문화혁명’

미중 무역전쟁을 바라보면서 여러 생각이 떠오른다. 1978년 개혁개방 정책을 도입한 이후 중국은 눈부신 발전을 거듭해 왔다. 하지만 정치적으로는 여전히 일당 지배 체제이고 국민들에겐 자신의 손으로 지도자를 선출할 자격이 주어지지 않는다. 중국의 외형은 자본주의 체제에 바탕을 둔 자유국가의 모습을 갖추고 있지만, 안을 들여다보면 전체주의 체제의 짙은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더욱이 오늘날은 사람들을 감시·감독할 수 있는 기술이 크게 발달한 상태이기 때문에 중국 공산당의 지배체제는 더욱 공고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과 중국 사이의 대결 구도는 단순히 무역과 관련된 사안만으로 보이지 않는다. 다른 한편으로 그것은 가치의 충돌이다. 중국 공산당의 뿌리와 지배층의 정신구조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책을 한 권 소개하려 한다. 오래전에 나온 책이기 때문에 독자들이 쉽게 구할 수 있을진 모르겠다. 서평자는 오래전에 읽었지만 이후에도 자주 들춰 보게 되는 책이다. 그만큼 중국 전체주의 핵심을 잘 담아낸 책이다.

저자 션판은 1954년 베이징 다위안에서 출생한 인물로 1984년 11월, 30세가 되던 해에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다. 학위를 마친 후 지금은 로체스터 커뮤니티 기술대학의 영어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션판의 ‘홍위병’은 한 인물의 눈에 비친 문화혁명을 그렸다. 저자는 열두 살이던 1966년 ‘만리장성 투쟁조’라는 홍위병 조직을 만들어 활동했을 뿐만 아니라 이후 1969~1972년 마오쩌둥으로부터 샨시의 시골 마을로 하방되어 농부의 삶을 살기도 했다. 그러니 이 책은 직접 경험해 보지 않고선 쓸 수 없는 논픽션에 가까운 자전적인 글이다. 책의 주인공은 ‘나’라는 1인칭으로, 저자는 자신이 보고 겪었던 일을 증언하는 형식으로 책을 꾸몄다.

전체주의 체제에서 인간이 어떤 모습으로 변모하는지를 잘 그리고 있다. 자유를 당연하게 여기는 시대가 되었지만, 그 자유의 기초는 취약하기 짝이 없다. 과거에는 전체주의가 특정 권력자에 의해 추동되었다면 이제는 간교한 계략에 따라 조종되는 대중들에 의해 추진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사회가 집단의 광기가 발동하기 시작하면 얼마나 참담한 상황까지 갈 수 있는가를 이 책은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 저자는 자신이 그 와중에 얼마나 무리한 일을 했는가를 이렇게 기록했다. “당시 나는 적에 대한 행동은 그 어떤 것도 잔인하지 않다는 가르침을 그대로 따랐지만 돌이켜보면 스스로 경악을 금할 수 없다. 이는 내 일생에 영원히 치유되지 않을 상처로 남을 것이다.”

독자로서 이 책을 오래오래 기억하는 것은 한 인물에 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 인물은 미국에서 의사로 활동하다가 공산주의 혁명이 완료된 공산국가 조국에 봉사하기 위해 귀국했다. 하지만 문화혁명의 광기로부터 벗어날 수 없었다. 베이징대학 병원 외과의사였던 그는 무참하게 홍위병들에게 죽임을 당한다. 이후 세 모녀의 삶은 형언하기 어려운 지경에 도달한다. 이 집안의 맏딸인 리링과 저자는 훗날 서로 좋아하는 사이가 되지만, 함께 미국으로 향하지 못한다. 리링의 폐결핵이 그녀의 생명을 단축시켰기 때문이다.

책에는 공산당과 관련된 이야기가 자주 등장한다. 지금은 상황이 조금 나아졌겠지만 8000만 명의 당원을 가진 중국 공산당을 저자는 이렇게 그린다. “나는 항상 당의 명령이 곧 황제의 포고과 같다는 점을 기억했다. 어떤 상황에서도 당을 비난해서는 안 됐다.”

미중 경제전쟁이 진행되면서 중국 사회가 한 방향으로 향한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관제언론하에서 사회가 나아가야 할 합리적 방향에 대한 논의보다는 민족주의적 성향이 사회의 방향을 결정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과거의 경험을 통해 현재의 중국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책이다. 공병호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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