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식의 시사 인문학] 홍콩의 대규모 시위를 보면서

입력 2019-07-04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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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칼럼니스트

홍콩의 정식 명칭은 중화인민공화국 홍콩특별행정구(The Government of the Hong Kong Special Administrative Region of the People’s Republic of China)다. 홍콩은 약 150년간 영국 식민지로서 겪은 아픔도 지니고 있지만, 개방적이고 자유로운 분위기가 지배해왔다. 1997년 주권이 중국으로 넘어갔지만, 중국의 ‘일국양제(一國兩制)’ 약속, 즉 예전의 제도를 50년간 보장하겠다는 약속에 따라 이런 자유로운 분위기가 지속돼왔다.

왜 홍콩 시민이 들고 일어났나

지난달 16일 홍콩에서 주최 측 추산 약 200만 홍콩 시민이 도심을 가로지르며 중국의 ‘폭압적인’ 범죄인 인도법 개정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줄잡아 홍콩시민 10명당 4명이 거리로 뛰쳐나온 셈이다. 범죄인 인도법 개정안에 대한 홍콩 시민들의 분노와 시위 규모는 1997년 홍콩 주권 반환 이후 전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컸다. 결정적 원인은 시진핑이 집권한 이후 홍콩의 정치·사법·언론 등 민주적 시스템이 점차 허물어져 왔기 때문이라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이번에 추진된 범죄인 인도법 개정은 분노 폭발의 한 계기로 작용했을 뿐이라는 말이다. 덩샤오핑은 홍콩 반환 결정 때 ‘홍콩은 홍콩 사람이 다스린다’는 고도의 자치를 보장하면서 일국양제 원칙을 천명했지만, 시진핑이 집권한 이후 이 원칙은 급속히 와해됐다. 무엇보다도 시진핑 정권은 중국이 후진타오 주석 시절 홍콩에 약속한 2017년 홍콩 행정장관 직선제 약속을 뒤엎어버렸다.

홍콩 시민들이 특히 범죄인 인도법 개정을 두려워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중국 공권력이 심지어 이 법이 없을 때도 홍콩 시민을 납치한 전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 대표적 사건으로 중국 공산당 내 권력 암투나 지도층 비리를 다룬 금서들을 출판·판매해오던 홍콩 코즈웨이베이 서점의 주주와 직원 5명이 2015년에 잇따라 실종된 일이 있었다. 특히 실종자 중 1명이 홍콩에서 납치당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홍콩이 무법적 중국 공권력으로부터 결코 안전하지 않다는 충격적 사실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1명은 아직 행방이 ‘미확인’ 상태이고 나머지 3명은 납치된 뒤 풀려났지만 중국에 끌려가서 무슨 일을 당했는지에 관해 여태껏 굳게 침묵하고 있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홍콩 정부가 중국으로 범죄인 인도를 허용하는 법안을 개정하려고 하자 더 이상 물러나다간 큰일 나겠다는 불안감과 분노가 홍콩 시민 절대다수에게 광범위하게 퍼진 것이다. 개정안이 통과되기만 하면 중국 당국으로서는 처벌하려는 홍콩인들을 예전처럼 납치하지 않고도 합법적으로 넘겨받을 수 있게 되는 것이어서, 홍콩 시민들로서는 엄청난 사회 변화에 부닥치는 것이다.

‘시황제’ 꿈의 작은 돌부리

시위를 벌인 홍콩 시민들에게 중국의 범죄인 인도 허용 법안 개정이라는 시도가 매우 위협적으로 비쳤으리라는 건 충분히 짐작된다. 여태까지 일반 시민이 누려온 자유와 권리가 하루아침에 날아가 버릴 위험에 처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홍콩은 외형상 ‘홍콩 차이나’, 즉 중국의 일부로 불렸지만, 중국 본토와는 다른, 개방적이고 자유로운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는데, 그런 사회 분위기가 한때의 꿈으로 바뀔 수도 있는 판에 긴장, 분노하지 않을 도리가 있겠는가.

이번 시위는 시진핑 주석과 중국 당국에도 작지 않은 도전적 과제로 등장했을 것이다. ‘중국몽(中國夢)’과 ‘시황제(習皇帝)’의 야심찬 꿈이 의외의 돌부리에 채인 형국이기 때문이다.

중국몽은, 한마디로, 옛날 세계의 중심 역할을 했던 그 찬란한 옛 중화민족의 영광을 21세기에 되살리겠다는 소리다. 시진핑 주석이 2012년 18차 당 대회에서 총서기에 오르면서 처음 내세운 이념이다. 중국이 단지 ‘G2(세계 주요 2개국, 즉 중국과 미국을 말함)’가 되는 정도가 아니라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이 되는 것, 이른바 ‘팍스시니카(중국 주도의 세계 질서)’를 추구하는 것이다. 시 주석은 2017년 전당대회에서도 중국몽을 32차례나 언급하며 2050년까지 세계 최강국으로 우뚝 서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시진핑은 집권 2기를 맞아 국가 주석직의 연임 제한을 폐지하는 헌법 개정을 단행하는 등 순전히 국내적으로 말하면 ‘시황제’란 별칭에 걸맞은 막강한 권력을 행사했다. 이제 그 꿈을 서서히 구현하는 한 단계로 홍콩에서 범죄인 인도 허용 법안 개정을 추진했는데, 뜻밖의 강한 반발에 부딪힌 것이다.

▲‘범죄인 인도법안(일명 송환법)’ 완전 철폐 등을 요구하는 홍콩 시위대가 1일(현지시간) 입법회 건물을 점거, 의사당 내부에 모여 있다.    홍콩/AP연합뉴스
▲‘범죄인 인도법안(일명 송환법)’ 완전 철폐 등을 요구하는 홍콩 시위대가 1일(현지시간) 입법회 건물을 점거, 의사당 내부에 모여 있다. 홍콩/AP연합뉴스

도도한 세계사의 흐름에서 보면

세계의 지도적 국가, 진정한 ‘세계 중심 국가’가 되려면 어떤 요소가 필요할까? 막강한 군사력과 튼실한 경제력 없이는 안 될 것이다. 이 두 측면이 신통치 않으면서 세계를 주도하려고 벼른다면 다른 나라로부터 비웃음이나 사고 말 게 분명하다. 즉, 군사력과 경제력은 세계 중심 국가의 필요조건이란 말이 성립한다.

그러나 설령 군사력과 경제력이 절대 우위를 확보하더라도 세계가 지구촌이 된(globalized) 정보화시대에 이 두 가지만으로 세계 지도적 국가의 위상을 차지할 수는 없다. 그런 국가 위상에 걸맞은, 이른바 소프트파워가 구비돼야 한다. ‘상대편의 행동을 바꾸거나 저지할 수 있는 힘’을 말하는데 흔히 정보 과학이나 문화, 예술 등을 말한다. 말하자면 이 소프트파워는 세계 중심 국가의 충분조건인 것이다.

소프트파워의 원천을 논할 때 국민 개개인의 자유와 권리가 존중되는 정치 제도와 국민 개개인의 창의성이 만개할 수 있는 사회 환경을 도외시할 수 없다. 제국(empire) 수준의 지도력이나 막강한 영향력은 결국 진정한 관용, 포용력에서 나온다는 데 역사학자들은 대체적으로 동의한다. 전체주의, 획일적 통제, 폐쇄적 분위기, 이런 요소는 어떠한 나라가 세계 지도적 국가는커녕 열린사회, 선진 국가가 되는 길조차 원천 봉쇄하는 장애물일 뿐이다.

중국의 외교정책을 압축적으로 설명하는 용어로 ‘구동존이(求同存異)’가 있다. ‘서로 다른 점은 (그대로) 인정하면서도 공통된 이익을 추구한다’는 뜻이다. 본래 외교용어로 나왔지만 다원주의적 사고방식이나 관용적 시각과 일맥상통해 보인다.

시진핑, 위대한 지도자인가

긴 안목에서 보면, 인류 역사는 국민 개개인의 자유와 권리가 신장되는 방향으로, 즉 민주화를 향해 끊임없이 전진해온 게 사실이다. 물론, 민주화를 향한 그런 노정에 일시적 우회나 역주행이 없진 않았다. 하지만, 흐름이 제각각인 듯한 작은 물줄기들이 마침내 강과 바다로 흘러가듯이 인간의 역사는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사회와 국가, 체제를 향해 면면히 발전해왔다. 그런 점에서 민주화는, 일종의 자연법칙과 비슷한, 인류 역사의 법칙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시진핑 국가 주석이 진정 불세출의 정치 지도자라면 마치 법칙처럼 작용해온 이런 인류 역사의 도도한 흐름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중화 세계’에 포섭되는 여러 소수민족이나 홍콩 같은 특별 자치 구역에서 나오는 다양한 요구나 갈등도 ‘구동존이’적 자세로 순리적으로 해결해 나갈 것이다. 아니, 거꾸로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다. 만일 그가 이런 세계사적 흐름에 순응, 병진하는 방향으로 문제를 해결한다면 그를 위대한 정치가로 평가해도 될 것이다. 그렇지 않고, 기회를 보아 힘으로 밀어붙이기만 한다면 설령 그런 방식이 성공을 거둘지라도 그는 야심찬 권력자일 뿐이고 위대한 지도자의 반열에는 끼지 못한다고.

홍콩 시위의 불꽃이 완전히 꺼지지 않은 지금은 물론이고 앞으로도 계속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는 문제이다. 우리와 이웃해 있을 뿐더러 하루가 다르게 힘을 키우고 있는 나라, 중국과 그 최고 통치자의 크고 무거운 발걸음과 직결돼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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