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시장을 움직이는 것은 시장뿐이다

입력 2019-08-22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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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환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주택도시연구실 부연구위원

부동산 시장 규제로 대표되는 정부와 시장의 기싸움은 굵직한 규제가 발표될 때마다 항상 있어 왔던 풍경이다. 집값을 잡으려는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하나둘씩 궤도에 오르는 한편, 최근 민간택지에도 분양가 상한제 적용을 검토한다는 발표 이후 지루한 논쟁이 다시금 불붙었다.

정부는 시장을 이길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한 것처럼 보인다. 이렇게 짐작하는 이유는 취임 직후부터 집권 3년 차에 들어선 현재까지 직접적인 부동산 대책만 10회 넘게 발표했다는 점 때문이다. 특히 이번 정부의 부동산 정책들은 주택 공급 확대부터 세제·금융을 아우르는 종합 대책의 형태로 발표돼 ‘역대 최강’이라는 타이틀을 차례로 갈아치웠다. 특히 이번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 적용 기준 개선 추진안’은 발표 시점 측면에서 볼 때 지난 6개월여간 지속됐던 서울 집값 안정세가 상승세로 반등하자마자 그 대응 전략으로 제시된 만큼 현 정부의 규제를 통한 시장 안정화라는 기조는 명확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기대와는 달리 시장은 정부가 원하는 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작년 한 해 서울 아파트 가격은 8.03% 상승하였는데, 그중 9월 상승률이 1.84%에 달했다. 월간 상승률로는 금융위기 직전인 2008년 4월 2.50% 이후 125개월 만에 최대치를 기록했고 연간 누적 상승률로는 2006년 이후 가장 높은 수치였다. 바꾸어 말하면 6·19 대책, 8·2 대책 등 부동산 시장 안정을 위한 정책이 시행되고 있는 상황에서도 주택가격이 안정화되기는커녕 오히려 10년 만에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한 것이다.

시장의 상황을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에 국한해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를 실시했던 2007년, 강남 아파트 가격은 연간 누적 0.27% 하락하는 데 그쳤다. 더욱 주목해야 할 것은 이후의 회복세다. 정책이 발표되었던 2007년 1월 이후 6월까지 하락세를 보이던 강남 아파트 가격은 6개월 만인 7월 이후 재상승하기 시작해 1년이 경과한 2008년 2월, 이전 가격 수준을 다시 회복했다.

당시 정부의 정책을 두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2007 한국 경제 보고서’를 통해 “정부의 정책은 가격 통제보다는 효율적 시장 구현에 집중되어야 한다”고 비판했다. 특히 분양가 상한제가 공급을 옥죌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언급하며 “(분양가 상한제가) 투기 세력의 진입을 막아 가격 상승세를 막을 수는 있겠지만 장기적 관점에서 주택 공급을 줄일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이러한 OECD의 우려는 다시 한번 시장에 의해 실현되었다. 2009년 리먼 브라더스 사태로 촉발된 세계 금융위기가 국내에도 영향을 미치면서 주택 공급이 예상보다 큰 폭으로 줄어들었고 2010~2013년 주택가격이 하락했다. 2000년대 이후 가장 오랫동안, 가장 큰 폭으로 주택가격이 하락한 때가 바로 이 시기다.

역사적으로 주택가격에 영향을 미쳐왔던 정부와 시장의 역학관계를 두고 볼 때 이번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 역시 한계점을 갖고 있다. 물론 신축 아파트의 가격을 묶어둠으로써 단기적 가격 하락 효과는 거둘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가격 하락 효과가 장기적으로 지속될 수 있을지에 대한 전망은 어둡다. 현재 시장에서 정부에 요구하고 있는 것은 요지에 위치한 신축 아파트에 살고 싶은 국민의 욕구를 억제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에서 원활히 공급할 수 있도록 하는 것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우려스러운 점은 정책 시행 시기다. 주택 경기의 활황 정도를 나타내는 선행 변수로 활용되는 주택 허가와 착공은 2016년 이후 대세적으로 하락세를 그리고 있다. 뿐만 아니라 최근 들어 주택 허가와 착공의 물량 차가 점점 커지고 있다. 업체들이 허가만 받고 착공을 미루고 있다는 뜻이다. 이는 곧 주택 경기가 더욱 악화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 뉴욕, 영국 런던, 독일 베를린 등 세계적 도시의 집값도 하향세에 접어든 정황이 속속 포착되고 있다.

대내외 정세도 우려스럽다. 금리 인하, 대외 수지 악화 등 거시경제 상황이 여의치 않은 것은 새로운 일이 아니다. 여기에 일본과의 통상 갈등, 미중 무역 전쟁 등 우리나라를 둘러싼 동북아 정세의 악화가 부담을 더하고 있다. 이런 시기에 부동산 가격 추이의 상승 전환을 저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공급 억제가 우려되는 정책을 시행하면 가뜩이나 어려운 건설 경기에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되고, 이는 곧 또 다른 경기 침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물론 현재 가계 부채나 그들의 부채 상환 여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을 때 2008년처럼 신용 경색으로 인한 광범위한 경기 하락이 닥칠 가능성은 낮다. 분양가 상한제라는 단편적 정책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경제 위기가 발생할 가능성은 더더욱 희박하다. 다만 이미 대비하고 있는 신용 경색도, 유동성 함정도 아닌 새로운 유형의 위기가 다가온다면 이는 다시금 우리에게 가혹한 추위를 맞게 할 것이다.

지난 사이클 속에서 우리는 시장을 움직이는 것은 오직 시장뿐이라는 교훈을 얻었다. 경기가 빨간불을 켜고 있는 상황에서 서울 집값의 반락을 위한 새로운 신호등이 필요한 시기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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