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독재자’, 김일성의 삶으로 본 파시즘의 비애 [최두선의 나비효과]

입력 2014-11-03 0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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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독재자' 스틸컷 설경구(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 ‘나의 독재자’ 성근(설경구)은 김일성이 되기 위해 사력을 다했다. ‘국가와 민족을 위한 위대한 연극’이란 기치 아래 주인공이 된 성근은 연습하고 또 연습한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김일성이 되기 위해 그의 말투, 표정, 손동작을 영상을 통해 접했고, 주사파 학생으로 고문을 받던 학생에게 김일성의 사상을 교육 받는다. 몸집을 불리기 위해 새벽 냉장고 앞에서 닥치는 대로 음식을 집어넣었으며 목 뒤 혹마저도 의식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성근은 김일성이 된다.

김일성에 대한 성근의 집착은 배우에 대한 열망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지만 도화선은 그의 아들이었다. 연극 무대 뒤편에서 포스터를 붙이며 작은 배역에 급급해도 아들 앞에서는 항상 큰소리치던 성근이었다. 하지만 우연히 찾아온 무대에서 성근은 긴장감에 말을 더듬으며 크게 실수한다. 아빠의 멋진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아들을 초대한 자리였고, 그렇게 상처만 줬다. 배우로서 아빠로서 벼랑 끝에 몰린 성근은 누구보다 독해졌고, 배역에 대한 고집을 굽히지 않으며 김일성을 연기할 수 있는 기회를 거머쥔다.

이 같은 성근의 상황은 당시 시대상과 연관되며 극한 결과물을 만들어 낸다. 김일성 배역을 비밀스럽게 고문실에서 준비하는 상황, 연기가 아닌 외형적으로 김일성이 되어가는 성근의 모습 등 비정상적 상황들은 시대적 아픔과 군사정권의 파시즘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성근에게는 연극이었지만 대통령과 정부에게는 남북정상회담의 대역일 뿐이었다. 김일성의 습관마저 똑같이 따라하라고 주문하면서 주체사상이 담긴 대사는 거부한다. 옆방에서는 사람이 거꾸로 매달린 채 고문을 당하고 있고, 조금이라도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면 따귀를 맞는다.

▲'나의 독재자' 스틸컷 설경구-박해일(롯데엔터테인먼트)

수많은 사람들이 폭정에 시달리고, 안기부가 절대 권력을 누리던 시절, 국민의 인권보다 국가의 안위가 먼저였고, 북한 공산정권에 대한 증오는 사회의 통합을 불가능하게 했다. 진실은 외면당하고, 억울한 희생자가 속출했지만 해결책은 없었다. 그저 권력에 아첨하고, 자신의 생각과 주장을 숨기고 조용히 사는 것이 최선책이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자신의 정체성을 버리고 김일성이 되어 버린 성근의 모습은 시대가 낳은 비극과 연계된다. 성근이 남북정상회담이 취소됐음에도 김일성의 말투와 표정, 의상을 버리지 못했던 이유는 비정상적인 외부 압력에 의해 연극이 진행됐고, 이마저도 외부 사정에 의해 무대에 올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국가에 의해 연기했고, 국가에 의해 버림받았다. 자신의 꿈, 아들에 대한 부성애로 한 평생 김일성이 되기 위해 노력했던 성근은 결국 주인공이 아닌 부속품이 되어 소모된다.

성근의 인권침해 현장에서 우리 시대가 안고 있었던 파시즘의 폐해가 고스란히 묻어난다. ‘나의 독재자’ 오계장(윤제문)은 성근에게 고문을 가하던 중 “이 정도 고문이면 없던 말도 지어낼 수밖에 없는데... 합격이오. 우리는 입이 무거운 사람을 원했거든”이라고 웃으며 말한다. 고문으로 시작된 성근의 김일성 배역은 평생의 고문으로 남는다. 고문을 견딘 사람에게 웃으며 말할 수 있는 비인간적인 사회, 국가를 위해 한 사람의 인생을 일회성으로 전락시키는 사회, 그 잔인했던 시절의 아픔이 ‘나의 독재자’ 성근의 순수함에 비춰 현 시대 대중에게 진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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