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태권도가 싫어요!” [오상민의 현장]

입력 2014-11-03 0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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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태권도계에 만연한 부조리가 하나 둘 세상에 드러나고 있다. (뉴시스)

여덟 살배기 조카는 합기도를 배운다. 신심을 단련하고 사회성도 키우기 위해서다. 운동 효과는 곧 표면으로 드러났다. 평소 운동엔 소극적이던 아이가 제법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흥미는 자신감으로 이어졌다.

“왜 태권도를 하지 않고?” 여덟 살 조카에게 물었다. 답변은 짧고 명쾌했다. “나는 태권도가 싫어요!” 태권도를 배우는 같은 반 아이들이 으스대며 힘으로 제압한단다. 철부지 조카의 순수한 말 한마디가 굳어 있던 얼굴에 미소를 번지게 했다.

여덟 살 철부지의 말 한마디엔 국기 태권도의 현주소가 녹아들기라도 한 걸까. 최근 태권도의 온갖 비리와 부조리가 하나 둘 세상에 드러나고 있다.

지난해 초 한 태권도 사범은 ‘자신의 아들과 제자들이 오랫동안 편파판정 피해를 봤다’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어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겼다. 수사 결과 편파판정은 실수가 아닌 의도적이고 조직적인 승부조작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그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 태권도 대회에서 다시 한 번 편파판정 사실이 드러났다. 지난해 7월 대한장애인태권도협회 심판부의장 김모(62)씨와 전모(61)씨가 전국 추계 한마음 태권도 선수권대회 고등부 품새 단체전 4강전에서 심판 5명에게 K고교 팀이 우승할 수 있도록 승부조작을 지시한 것이다.

당시 억울하게 패배한 A고교 권모 코치는 심판 판정이 내려지자마자 경기장에 난입해 강력히 항의했지만 심판 판정은 번복되지 않았다. 경찰 조사 결과 해당 경기 심판 5명은 “무조건 홍팀이 이기게 하라”는 김모씨와 전모씨의 지시에 따른 것으로 밝혀졌다. 홍팀은 서울시태권도협회 김모(45) 전무의 아들이 속한 팀이다.

사실 태권도계의 부조리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2004년 아테네올림픽 태권도 금메달리스트이자 새누리당 국회의원인 문대성(38)씨는 자신도 승부조작 피해자였다며 태권도계의 승부조작은 공공연하게 있는 일이라고 밝혀 논란이 되기도 했다. 어디 그뿐일까. 집단 이기주의와 파벌로 인한 온갖 비리와 부조리가 태권도계 안팎에서 쏟아지고 있다.

그러나 태권도는 현실적 문제 해결보다 세계화와 상업화 추진에 혈안이다.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 이후 22년간 6회의 올림픽을 거치는 동안 태권도는 단 한 차례도 올림픽 정식종목에서 제외되지 않을 만큼 국제 사회에서 입지를 굳혔다. 태권도 사범의 해외파견 등 태권도 종주국으로서의 위상도 확고히 했다. 지난 9월에는 전북 무주에 태권도원을 개원, 국내외 태권도 성지로 조성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이제 무도는 “예로 시작해서 비즈니스로 끝난다”는 말이 맞는 걸까. 태권도인의 자존심은 권력 앞에서 무릎을 꿇은 지 오래다. 그 권력을 탐하기 위해 각종 비리와 부조리에 앞장선 것도 태권도인이었다. 바로 그들이 사범으로서 우리 아이들을 지도하고 있다.

썩어 들어가는 속살을 외면한 채 몸집 부풀리기에만 전념한 결과다. 고대 올림픽부터 핵심 종목이던 레슬링은 지난해 올림픽 종목에서 완전히 퇴출될 뻔한 위기를 맞았다. 태권도는 안전할까. 자국민이 외면하는 스포츠가 국제사회에서 얼마나 위력을 발휘할 수 있을까. “나는 태권도가 싫어요!”라는 어린 아이의 외침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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