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기업을 하는가 43] 작은 성과에도 직접 칭찬, 어머니의 마음으로

입력 2016-04-08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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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연매 김정문알로에 회장

창업주 남편과 사별 후 경영맡아

가장 먼저 한 일은 회장실 개방

열린 대화, 조직에 긍정적 영향

사내 독서문화 확산 소통에 한몫

나는 여성 CEO다. 여자의 삶보다 CEO로서의 삶을 살아오면서 수많은 선택의 순간과 직면할 때면 어김없이 ‘그래 해보자’는 정신으로 덤벼들었다. 보다 안전하고 쉬운 선택을 두고도 나에게 최선의 선택이란 도전하는 길이었고, 지금도 그 원칙을 고집스럽게 지키고 있다. 이러한 신념 덕분에 나의 첫 직업과는 전혀 다른 분야에서 20년 이상 몸 담으며 현재의 기업인이 될 수 있었던 것 같다.

나는 청주사범대(현 서원대)를 졸업해 중학교 교사로 첫 사회 생활을 시작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부모님이 정해준 길을 군말 없이 따르는 평범한 딸이었다. 교내에서도 인정받는 교사로 불릴 만큼 안정되고 창창한 미래를 확신했다. 이대로라면 여자로서 성공한 삶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어느 순간 더 큰 조직에서 일해보고 싶다는 야망을 품었다. 그러자 곧 교사는 나의 자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3년 만에 미련 없이 첫 직장을 떠났다.

교사였던 내가 김정문알로에와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은 1991년이었다. 우연한 기회에 김정문알로에 대리점을 알게 됐고 긴 고민 없이 충북 청주시 대리점 한 곳을 인수해 영업에 뛰어들었다. 나만의 사업을 할 수 있다는 것도 매력적이었지만 무엇보다 방문판매 시스템을 기반으로 하는 조직인 만큼 사람을 가르치고 이끌어낼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에 가장 마음이 끌렸다.

처음 대리점 인수 당시 방문판매 사원은 3명에 불과했다. 매출을 늘리기 위해 보다 많은 방문판매 사원이 필요했기 때문에 직접 발품을 팔며 조직원을 늘려갔다. 대리점 인수 후 3년 만에 청주 매출의 대부분이 내가 있는 곳에서 나왔고, 그 성과 덕에 1993년 청주 지사장으로 발탁됐다. 그야말로 인생의 첫 번째 터닝포인트였다.

모범생이기만 했던 어린 시절과는 달리 목표와 도전 의식으로 충만했던 나는 끈기와 오기로 지사장 자리를 지켜갔다. 자리가 탐 났기 때문이 아니다. 인생을 더 멋지게 책임지고 싶어서였다. 대리점 운영 시절부터 꾸준히 담당해오던 직원 교육을 통해 청주지역의 매출을 끌어올리며 지사장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그리고 1997년 봄, 나는 같은 회사 창업주인 김정문 회장과의 특별한 인연으로 그의 아내가 됐다.

남의 시선은 신경쓰지 않았다. 나만의 신념과 가치를 믿고 경영자의 자리와 아내의 자리를 흔들림 없이 이어갔다. 하지만 결혼한 지 8년 만인 2005년 12월 김 회장의 건강 악화로 사별과 동시에 경영위기의 회사 회생에 대한 책임을 안았다.

사별의 슬픔도 잠시였다. 회장 자리가 비게 되면서 회사도 곧 사라지지 않겠느냐는 이야기가 사내외에서 흘러나오는 문제부터 당장 해결해야 했다. 회사를 살리는 길의 첫째는 회사에 팽배한 부정적인 시선부터 거둬들이는 것임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당시 나의 직함은 부회장이었고 100여명의 직원들이 나만 바라보고 있는 상황이었다. 2000년 전문경영인 체제를 도입하면서 시장점유율과 매출이 더 떨어지자 2003년부터 남편과 함께 경영 일선에 나선 상태였던 나는 주위의 시선이 곱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여자가 잘 해내겠냐’, ‘누굴 믿고 회사를 다니겠냐’는 등 직원들의 볼멘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자신에게 맞지 않는 자리인가를 두고 밤을 지새웠지만 진정으로 회사를 위한 길이 무엇인지부터 깊이 고민했다. 경영 경험이 전무한 것도 아니었고 회사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도 아니었다. 회사의 철학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전문경영인에게 또다시 맡길 바에는 내가 직접 경영하는 것이 낫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두려움을 떨치고 용기를 냈다. 포기보다 도전을 택했다. ‘그래, 해보자’라는 마음으로. 그렇게 인생의 두 번째 터닝포인트를 맞았다.

막막했지만 교사 시절 아이를 가르치며 경험했던 ‘소통’과 ‘교육’이 경영 현장에도 적용될 수 있음을 알았다. 방문판매의 성패는 ‘얼마나 고객의 신뢰를 얻는가’에 갈리고, 직원들부터 서로 믿고 화합해야 고객에게 제품의 진실성이 전달되기 때문에 ‘소통’과 개인 ‘역량’의 중요성이 컸다. 무엇보다 조직 내 팽배한 부정적인 인식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서라도 소통은 절실했다. 어머니의 마음으로 조직원을 이끌겠다고 다짐, 또 다짐했다. 자신감이 생겼고 하나씩 추진해나갔다.

소통경영의 첫 번째로 회장실을 개방했다. 부회장을 역임할 당시 부회장실을 개방하면서 조직원 누구나 들어와 어려운 점, 개선하면 좋은 점 등을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할 수 있도록 했던 적이 있었다. 어머니가 아이의 생각을 들어주듯 남성 문화가 팽배했던 이곳에 여성 임원만의 강점을 여실없이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해 내린 결정이었다.

초기 여성 CEO에, 곱지 않던 시선

“그래 해보자” 두려움 떨치고 용기

적지 않은 위기 뚫고 안정적 성장

내 마음 다잡아준 직원들 있었기에

2006년 회장을 역임한 이후에도 회장실 개방은 이어갔다. 조직원과 가까이에서 소통하는 일이 조직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았기 때문이다. ‘소통경영’이 제1의 경영철학이 된 계기였다.

두 번째로 사내 독서문화 정착이었다. 매달 두 권씩 필독서를 정하고 임직원 모두 독후감을 통해 소통하는 장을 만들었다. 단순히 책에서 교훈을 찾자는 것이 아니었다. 책을 함께 읽고 생각을 나눈다는 것 자체가 소통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뿐만 아니라 매일 아침 직원들이 일하는 각 부서로 출근해 함께 일하는 고마움을 표시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사소하지만 이렇게 경영자와 직원 간의 긍정적인 교감이 있어야만 회사의 미래가 보장된다고 믿었다. 종종 점심 식사도 함께하기 위해 스케줄도 조정했다. 작은 성과에도 직접 건네는 칭찬 역시 아끼지 않았다.

어느 날 출근길 엘리베이터에서 마케팅 팀 사원을 만났다. “사장님! 오늘은 어느 부서로 가실 예정이세요? 사장님과 아침 인사를 나눈 부서는 그날 하루 일이 잘 풀린다는 후문이 있습니다”라는 말을 들었다. 녹록지 않은 경영자의 자리에서 하루에도 수십 번 ‘잘할 수 있을까’를 우려하던 내가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던 것도 함께 일하는 직원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조직과의 무수한 소통의 과정을 거치면서 나는 2005년 600억원이었던 매출을 5년 후 900억원까지 늘렸다.

평범한 교사에서 한 회사의 대표로 자리잡기까지 수많은 선택과 고민, 그리고 위기 앞에서 묵묵히 나만의 길을 갈 수 있었던 것은 ‘해보자, 그리고 옳게 만들자’는 신념 덕분이었다. 두려움에 포기부터 앞섰다면 인생의 터닝포인트를 맞이할 수 없었을 것이다.

회장을 역임하고 10년이 흐른 지금도 나는 또 다른 터닝포인트를 향해 달리고 있다. 창립 40주년이었던 지난해부터 나는 김제 알로에 생산라인을 제주로 모두 이전하는 등 제2의 도약을 준비 중이다. 건강기능 식품은 무엇보다 품질이 최우선이어야 한다는 신념 때문에 다소 번거로운 유통 과정을 거치더라도 소비자들에게 보다 신선한 알로에 식품을 내놓기 위함이었다.

김정문알로에를 처음 만난 때부터 지금까지 가장 크게 갖는 자부심 중 하나가 곧바로 수확한 원물 알로에를 그대로 제품화하는 회사는 세계에서 김정문알로에가 유일하다는 것이다. 이 같은 품질에 대한 자신감을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해 제주 생산시대를 열었고 사세를 넓혀가는 새로운 출발점이 된다는 점에서 개인적으로도 의미가 크다.

이 같은 제품 품질력을 기반으로 K-알로에 마케팅을 통해 중국, 동남아 등을 중심으로 알로에 한류를 이끌어나갈 계획이다. 이를 위해 2014년 중국 상하이에 현지법인을 설립한 데 이어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과도 조인트벤처 설립과 알로에 재배기술 이전을 추진하고 있다.

2016년도 역시 도약의 해이다. 지난 10년간 좋은 원료와 정직한 제조 공정을 통해 소비자의 건강을 책임지는 회사로 키워왔기 때문에 이제는 그러한 가치를 토대로 자연건강 문화 기업으로서의 입지를 더욱 견고히 하고자 한다. 건강기능식품, 화장품의 명성에 이어 유해 물질이 덜 나오는 친환경 생활가전 제품 판매를 시작할 계획이다. 첫 걸음으로 최근 하이라이트 전기레인지 사업을 진행 중에 있다.

회장에 취임한 이후 10년이 지났지만 나는 여전히 회사를 책임지고 있는 경영자이자 기업인이다. 앞으로도 셀 수 없이 많은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될 것이고 고민할 것이며 두려워도 할 것이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스스로의 선택에 후회가 없도록, 그리고 그것이 맞는 선택이 되도록 확신을 갖고 행동에 옮길 것이라는 점이다. 더 많은 직원들이 회사를 믿고 함께 성장할 수 있도록 오늘도 나는 또 다른 터닝포인트를 위해 달린다.

최연매 회장은

1985~1987 청주 중앙여자 중학교 교사

1991 김정문알로에 청주 대리점 사업

1993~1995 김정문알로에 청주 지사장

1996 김정문알로에 이사

2003 김정문알로에 부회장

2006~현재 김정문알로에 대표이사

김정문알로에

1975 알로에 아보레센스 보급

1976 알로에전문회사 (주)한국알로에의 집 설립

1980 알로에 베라 재배 시작

1987 김제 농장 설립

1989 제주 알로에 농장 설립

1993 무방부제 알로에겔 ‘베라겔’ 개발

2001 알로에 고분자다당체 100만 분자 프리미엄 알로에겔 제품 ‘베라겔리치’ 출시

2003 사단법인 ‘만만만 생명운동’ 설립

2005 김제공장 GMP 시설 완료

2009 다당체 분자량별 선별 특허 U-테크 공법 ‘김정문 유-베라겔AD’ 출시

2010 김정문알로에 특허기술 알로에셀 100% 함유한 화장품 ‘베루시에 럭셔리 라인’ 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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