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랭크페인CEO를 ‘얼굴마담’으로 본다면‘한국판 골드만 삭스’는 없을 것

입력 2016-06-14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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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자본시장실장 기고

국내 증권업계에서 증권사 간 인수합병(M&A)이 추진될 때마다 단골로 회자되는 금융회사가 있다. 바로 미국의 대표적 투자은행(IB)인 골드만삭스(Goldman Sachs)다. 압도적인 수준의 자본력과 잘 분산된 비즈니스 포트폴리오를 통해 글로벌 자본시장의 대표 금융회사로 인식되면서 국내 증권업계에서도 가장 인기 있는 롤모델로 자리 매김하고 있다. 각종 언론매체에서 ‘한국판 골드만삭스’라는 표현을 흔히 접할 수 있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골드만삭스의 자기자본 규모는 90조 원이 넘는다. 그러나 이러한 외형적 요소뿐 아니라 인력 중심의 경영문화로도 유명하다. CEO에 대해 장기간의 임기를 존중하는 것도 이러한 경영문화의 단적인 사례다. 현재 골드만삭스의 CEO인 블랭크페인(Lloyd C. Blankfein)은 2006년 6월부터 10년째 골드만삭스의 최고경영자라는 중임을 수행하고 있다.

미국의 경영환경은 대체로 소유와 경영의 분리가 뚜렷하다. 이 경우 최고경영자의 지위를 차지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고 주주들의 엄격한 경영성과 평가 때문에 CEO의 교체가 잦을 것이라는 예상이 가능하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 반대다. 우리나라 금융회사의 CEO들보다 오랜 기간 재임하는 CEO가 상대적으로 빈번하게 관찰된다.

CEO의 재임기간에 관한 차이는 근본적으로 CEO의 역할에 대한 인식의 차이에서 기인한다. 미국의 자본시장에서 CEO는 기업의 이익창출과 지속가능성 유지를 위한 핵심적인 역할수행을 요구받는다. CEO의 선택은 주가와 기업의 존속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인식된다. 따라서 관련 분야의 오랜 경험과 시장에 대한 깊은 이해도는 CEO 선택의 중요한 기준이 된다. 전문성과 수준 높은 안목을 가진 CEO를 선택해 기업의 경영방향을 설정하고 장기간에 걸쳐 일관성 있게 경영전략을 추진하는 것을 금융회사 가치제고의 기본으로 삼는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우리 금융시장에서는 CEO의 역할에 대한 기대가 낮은 편이다. CEO에 대해 소위 ‘얼굴마담’ 정도의 의미를 부여하는 예도 상대적으로 빈번하다. CEO의 역할에 대한 인식이 낮아지면 CEO의 자격요건을 까다롭게 설정할 필요가 줄어들고 교체에 대한 부담도 사라진다.

손쉽게 교체될 수 있다면 CEO는 단기 성과에 집중할 인센티브를 가지게 된다. 책임경영을 기대하기는 더욱 어려워진다. IB 기능의 전문성 강화나 해외진출과 같이 국내 증권사의 기능확대가 절실한 분야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가지려면 뛰어난 안목을 바탕으로 설정된 경영전략을 장기적 관점에서 추진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한국판 골드만삭스의 출현만을 외칠 것이 아니라 한국의 블랭크페인이 등장할 수 있는 경영문화의 정립이 절실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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