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자살보험금의 본질

입력 2016-12-21 10:45 수정 2016-12-21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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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우 기업금융부장

올 한 해 보험업계의 최대 이슈는 ‘자살보험금’이었다. 자살보험금은 쉽게 말해 자살 후에 받는 보험금을 말한다. 그런데 자살도 보험금 지급의 대상이 될 수 있을까. 논란은 불붙기 시작했다. 자살은 재해보험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게 학계와 업계의 공통된 판단이다. 그런데 왜 자꾸 금융당국은 보험사에 자살보험금을 지급하라고 주장할까.

애초 잘못은 15년 전인 200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보험사들이 재해사망에 자살도 포함된 보험을 이때부터 팔기 시작했다. 재해사망특약에 ‘고의로 자신을 해친 경우에는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지만, 가입 2년 경과 후 자살하는 경우에는 그러지 아니한다’라는 문구가 반영된 것이다. 보험사의 실수였다. 일본 보험을 베끼다가 오역을 해 잘못된 약관을 만들었는데, 이걸 또 다른 보험사들이 베끼면서 확산한 것이다. 그런데 이 사실을 인지한 것은 놀랍게도 13년 뒤였다. 지난 2014년 금융감독원은 ING생명을 검사하면서 문제의 약관을 발견했다.

십 년 넘게 수백만 건의 자살보험을 이미 팔았는데, 이걸 어떻게 주워담을 수 있을까. 여기서부터 일이 꼬인 것이다. 금융당국은 일단 약관대로 지급하라고 지시했지만, 이에 앞서 금융당국부터 왜 자살보험 상품을 승인해 줬는지를 분명히 밝혔어야 했다. 지금은 보험상품 승인이 자율적으로 바뀌었지만, 예전에는 모두 금감원이 검증했다. 금융당국은 자신의 잘못은 덮고, 보험사에 무조건 약관대로 주라고 지시한 셈이다.

이런 가운데 벌어진 법적 소송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약관대로 지급하느냐 마느냐였고, 또 다른 하나는 소멸시효의 문제였다. 그런데 법원 판결마저 엇갈리면서 상황은 더 꼬이게 됐다. 대법원은 지난 5월 “약관대로 보험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금융당국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그런데 9월에는 “소멸 시효가 지난 경우는 지급 의무가 없다”고 판결했다. 이번에는 보험사의 편을 들어준 것이다. 이 와중에 대다수 중소형 보험사는 미지급금을 지급했다. 하지만 삼성생명 등 이른바 ‘빅4’ 대형보험사는 버텼다. 소멸시효에 대한 최종 판결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그 전에 보험금을 지급하면 자신들이 ‘배임’ 등 법적 책임을 벗어날 수 없다고 주장한 것이다.

금융당국의 한 관계자는 “보험금 지급을 법원 판결 뒤로 미뤄 달라고 간곡하게 요청해 정상을 참작해 줬다. 그 때문에 소멸시효가 지난 것인데, 이제 와서 소멸시효 때문에 주지 못하겠다고 하는 것은 명백한 도덕적 해이다”라고 흥분했다. 금감원은 결국 버티는 ‘빅4’ 생보사에 중징계를 통보했다. 이들 최고경영자(CEO)는 사실상 연임이 불가능해졌다. 보험사는 잘못하면 문을 닫을 처지다. 이렇게 포괄적이고 강한 중징계는 전 업종을 통틀어 유례를 찾기 힘들다.

이 과정에서 금감원과 상급기관인 금융위원회 간 마찰음도 들린다. 금감원이 중징계를 통보하면서 정작 중징계 권한을 가진 금융위에는 귀띔도 안 했기 때문이다. 물론 사전 통보의 경우 금융위에 알릴 이유는 없지만, 시장 파장 등을 감안할 때 이 정도의 중징계는 알려주는 게 관례다. 금감원의 중징계 통보 후 여론이 금감원을 지지하는 쪽으로 형성된 것도 금융위 입장에선 부담스러운 부분이 있다. 자칫 금감원의 첫 양형을 감형할 경우 업계 유착이라는 오해를 자신들이 다 받게 될 처지에 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와중에 보험사는 금융위를 몰래 찾아가 금감원 조치의 억울함을 호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금융위는 양측의 얘기를 더 들어 보라고 금감원에 지시한 것으로 전해진다. 금감원과 금융위 간 오랜 불신이 또 불거질 위기다.

하지만 이럴수록 본질을 바라봐야 한다. 애초 금융당국의 잘못도 있다. 소송으로 잘못을 덮으려는 보험사들의 시도는 부적절했다. 그러나 이는 이번 사태의 본질은 아니다. 무엇보다 금융시장의 기본이 지켜져야 한다. 약관을 믿고 상품을 산 고객은 보호받아야 한다. 자살보험금의 본질은 소비자 보호에 있다는 얘기다. 자살보험금 사태가 터지자마자 가장 먼저 미지급금 지급을 결정한 한 대형보험사 CEO의 말이다.

“소비자를 먼저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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