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식 금융감독원장이 취임 일주일 만에 로비성 출장 의혹이라는 '유탄'을 맞았다. 은행권 채용비리에 직접 연루되며 발생한 신뢰와 도덕성의 상흔이 채 가시지 않은 상황에서 엎친 데 덮친 격이다. 여기에 배당금 대신 112조 원 규모의 주식을 배당한 사상 초유의 삼성증권 '유령주식 배당사태'까지 덮치면서 시장의 신뢰는 바닥에 떨어졌다. 한국금융연구원이 2015년 상반기 조사한 금융 신뢰도지수을 보면 200점 만점에 86점으로 나타났다. 금융권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답변이 35%에 달한 정도로 금융권에 대한 신뢰도가 심각한 상황이다.
◇국민 '눈높이' 못 미치는 금융산업 = 김기식 금감원장은 8일 의원 시절 외유성 출장 의혹에 대해 입장을 표명했다. 잇단 채용비리 관련 비위사실과 금융사고 등과 맞물리며 피감기관의 돈으로 해외 출장을 다녀온 김 원장에 대한 비난 여론이 커지고 있다. 배포된 입장 자료는 "공적인 목적과 이유로 관련 기관의 협조를 얻어 해외 출장을 다녀왔으나, 그것이 국민의 기대와 눈높이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지적에 죄송스런 마음이 크다"는 게 요지다.
김 원장의 부적절한 '국외 출장 전력'은 2015년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예산으로 미국과 유럽 출장을 갔다 온 것을 비롯해 2014~2015년의 세 건이다. 모두 피감기관 지원으로 출장을 갔고, 한국거래소·우리은행 같은 사실상의 민간기관이 포함됐다. 정치권 안팎에선 김 원장의 논란이 단순히 사퇴 등으로 끝날 문제가 아니라 사법 처리 대상이라는 지적까지 나온다.
문제는 김 원장이 이 같은 정치적 논란을 뒤로하고 금감원장으로서의 직책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 지 여부다. 금감원장은 57개 은행, 62개 보험사, 799개 증권·투자자문사 등 금융회사 4500여 곳을 감독·총괄하는 자리다. 때문에 높은 도덕성은 금융산업의 신뢰도와 직결된다. 김 원장의 처신이 국민들이 요구하는 윤리 기준에 부합하는지 여부를 먼저 따져봐야 하겠지만, 만일 '도덕성'에 흠집이 날 경우 감독당국 수장으로서 '영(令)'이 서지 않는다.
◇ 당국·금융회사, 모두 못 믿는 현실 = 금융산업은 '신뢰'를 기반으로 한 업종으로 금융당국과 금융회사는 본연의 역할이 구분돼 있다. 금융회사는 사고 예방을 위한 내부 통제 강화로 신뢰성을 높이고, 당국은 금융소비자 보호를 위한 금융사고 재발 방지에 정책적 역량을 집중하는 것이다.
6일 발생한 삼성증권 배당 오류 사고는 주식시장에 대한 신뢰에 큰 흠집을 남겼다. 주당 1000원의 현금배당 대신 주당 1000주씩을 지급하는 유령주식 배당 사태가 발생했다. 발행 주식이 8930만 주이고 발행한도가 1억2000만 주인데 이날 잘못 배당된 주식은 무려 28억3160만 주였다. 더구나 착오로 배당된 300억 원대의 주식을 시장가로 내다 팔아 주가 폭락의 방아쇠를 당긴 이 회사 직원은 투자자들의 가이드가 돼야 할 애널리스트로 확인됐다. 금융회사 직원들의 도덕적 해이가 극명하게 드러난 것이다.
더구나 금융당국 및 증권 유관 기관들이 삼성증권에 책임을 떠넘긴 듯한 모습은 금융산업의 신뢰성 회복과는 거리가 멀다. 금감원 등 유관 기관은 앞다퉈 보도자료를 내면서 삼성증권에 관련자 문책, 투자자 피해보상 등을 요구했지만 부실감독에 대한 자기반성은 없었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증권에만 책임만 묻는다면 제2,제3의 유령주식 사태는 재발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