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TPO 못 맞추는 금융위의 규제 감각

입력 2019-07-29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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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욱 금융부 기자

패션의 기본 원칙은 티피오(TPO)다. 시간(Time)과 장소(Place), 상황(Occasion)에 맞춰 옷을 입어야 한다는 뜻이다. 아무리 좋은 옷을 입더라도 ‘때’를 맞추지 못한다면 의미가 없다. 장례식장에 명품 반바지를 입고 간다거나, 해변에 벨벳 정장을 입고 가면 옷을 잘 입는다고 할 수 없다. 패션 감각의 기본인 셈이다.

규제도 TPO가 중요하다. 지난달 금융위원회가 ‘신용카드업자의 신결제 단말기 보급’ 관련 법령 해석문을 내놨다. 신용카드사가 개별 또는 공동으로 NFC 모듈이 탑재된 단말기나 OR 코드 리더기를 무상 보급해도 되느냐는 질문에 금융위는 ‘괜찮다’고 답했다.

금융위는 ‘새 결제방식의 확산 등 공익적인 목적을 위한 것이라면 여신전문금융업법의 부당한 보상금 제공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이로써 7개 카드사가 공동으로 만든 한국형 근거리무선통신 서비스 ‘저스터치’ 보급의 큰 걸림돌이었던 단말기 보급 문제가 해결됐다.

문제는 때를 놓쳐도 한참 놓쳤다는 점이다. 저스터치는 지난해 8월 개발된 이후 카드사가 보급에 나섰지만, 당시 여전법 리베이트 금지 조항에 발목이 잡혀 NFC 단말기 보급에 차질을 빚었다. 결국, 저스터치는 전국 3만여 곳에 보급되는 데 그쳤다. 지난해 말부터는 ‘백지화’ 절차를 밟고 있다. 풀어야 할 때 풀지 못한 규제의 결과는 참담하다.

카드업계는 금융위의 뒤늦은 결정에 냉소적으로 반응했다. 한 카드업계 관계자는 “저스터치 무산 이후 카드사들은 간편결제 시장에서 ‘각자도생’하고 있다”며 “어떤 곳은 OR 코드로, 또 다른 곳은 자체 앱으로 간편결제 서비스를 추진하고 있어서 저스터치로 되돌아가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앞으로가 더 문제다. 현재 금융당국에서 논의 중인 카드상품 수익성 분석 합리화 방안으로 ‘적자 상품 이사회 보고’, ‘일회성 마케팅비 비용 포함’ 등이 포함될 것으로 알려졌다. 카드 수익성 제고를 위한 규제라고 보기에는 TPO 가운데 어느 것 하나 맞는 부분이 없다. 금융위의 ‘규제 감각’ 회복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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