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민간 금융회사의 인사에 개입하지 않는다’

입력 2019-12-04 05:00 수정 2019-12-04 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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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우 금융부장

‘국가부도의 날·블랙머니·머니톡스…’

영화계가 ‘모피아(옛 재무부의 약칭 ‘MOF’와 ‘마피아’의 합성어)’에 주목하고 있다. 금융자본주의가 지배하고 있는 현실에서 이미 알려진 결론이 새롭게 주목받을 게 있나 싶다. 하지만 당시 경제 상황이 ‘헬조선의 시작’이라는 IMF를 만들었다. 이후 우리는 ‘검은돈 잔치’의 함정에 빠져 약육강식의 시장 만능주의가 판치는 정글에 내던져졌다. 무엇보다 국가 부도와 70조 원 은행이 헐값에 넘어가지만, 지금도 가해자들은 달라진 게 없다는 점이 몰입감을 높여준다.

영화 ‘블랙머니’는 2003년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헐값에 인수해 2012년 하나금융에 팔고 한국을 떠난, 이른바 ‘론스타 외환은행 먹튀 사건’이 소재다. 1997년 IMF 외환위기를 배경으로 한 영화 ‘국가 부도의 날’은 당시 비밀대책팀이 운영됐다는 실제 기사에 착안해 국가 부도 위기를 1주일 앞두고 서로 다른 선택을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현재 제작하고 있는 ‘머니톡스’ 역시 IMF의 발단이 된 한보 사태를 다룬다. 한보 사태는 한보철강이 관련된 권력형 금융 부정 및 특혜 대출 비리 사건이다. 재계 14위였던 한보그룹이 정치권과 금융계에 로비해 무려 5조7000억 원을 부당 대출받은 사실이 드러났다. 이는 우리 경제를 뒤흔드는 결정적인 도화선이 됐다.

각기 다른 소재를 다루고 있지만, 공통점이 있다. 영화 속 등장인물들이 실존한다는 점이다. ‘금융 비리’라는 핵심 소재는 정치권과 금융권은 물론 재계의 상황이 복잡하게 얽혔다. 정경유착·관치금융으로 환란을 불러왔다. ‘블랙머니’는 극 중 금융감독원과 외환은행 직원이 짜고 외환은행의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을 실제보다 더 나쁘게 조작한다. 그 결과 당시 외환은행 매각의 정당성이 부여됐다. 영화 ‘블랙머니’는 금감원 입장에선 복기하기 괴롭겠지만 직시해야 하는 진실을 들추고 있다. 검찰, 금융당국, 금융권의 막후 세력들을 조명하는 과정에서 정권의 도움이나 묵인 등을 너무나 쉽게 찾을 수 있다. 실제 사건을 기초로 허구의 이야기를 풀어낸 이른바 ‘팩션(fact+fiction)’이지만, 정치·관치금융이 청산의 대상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연말 금융권의 화두는 역시 ‘인사’다. 내년 4월까지 국내 주요 금융지주 회장을 비롯해 국책은행장 등 금융권 수장 10여 명의 임기가 줄줄이 만료된다. 시장은 이들의 자리 변화에 앞서 인선 때마다 불거지는 관치의 움직임에 예의 주시하고 있다. 1년 전만 해도 금감원이 하나은행장 인사에 개입하면서 관치 논란이 역시나 불거졌다. 그의 앞서 김정태 하나금융그룹 회장의 연임을 저지하려다 오히려 최흥식 전 금감원장이 하나금융지주에서 근무할 당시 채용비리에 연루된 사실이 알려지면서 중도낙마 해 실패(?)로 마무리된 바 있다. 아마 청와대가 ‘민간 금융회사 인사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밝히자, 금감원이 백기를 들었다는 것이 명확하겠다.

이번 조용병 신한금융 회장의 연임 문제도 하나금융 사례와 ‘판박이’다. 역시나 ‘법률적 리스크’이다. 금감원은 관치가 아니라 소임이라고 밝히고 있지만, 이를 믿는 사람은 우리나라의 금융을 모르는 사람일 것이다. 과거 KB금융이나 우리금융 등 굵직한 최고경영자(CEO) 인선 때마다 어떠했는가. 금융당국은 물론 청와대·정치권과 연결돼 있다는 인사가 실제 선임되는 사례가 당연한 결과였는지 모른다. 그 결과는 어떠했는가. 극심한 내홍과 비자금 문제 등 급기야 검찰 조사까지 받고서야 사태가 진전되지 않았는가. 금융당국은 CEO의 능력보다는 누가 ‘치(治)를 위한 도구’로 적합한가, 이 부문에만 몰두하고 있지 않은가. 정경유착·관치금융으로 환란을 불러온 게 금융당국의 흑역사다. 그들이 민간 금융회사 CEO 인선에서 ‘리스크·투명성’ 운운하는 대목은 코미디다.

문재인 정부는 정권 초기 ‘민간 금융회사 인사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내세웠다. 조용병 회장의 연임 사례 하나로 문재인 정부 약발의 효력이 확인되지 않길 바란다. 신한금융지주 이사회의 결정이 존중되지 않을 경우, 금감원을 향한 정부의 약발이 떨어졌다는 메시지가 나오지 않겠는가.ac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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