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력 금융지배] ‘꼭두각시’ 금융공기업 임추위…‘낙하산 행렬’ 정당성만 부각

입력 2020-01-20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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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임이시직, 정권 들러리…“사외이사 맡은 변호사·교수 등 月 최대 300만원 일종의 팁”

2013년 8월 말, 당시 신용보증기금(이하 신보) 이사장에 한국금융연구원 기획협력실 실장으로 근무했던 서근우 씨가 내정된 소식이 전해졌다. 신보는 기획재정부의 공공기관 분류상 기금관리형 ‘준정부기관’이었고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이하 공공기관법) 제26조 1항에 따라 이사장은 임원추천위원회의(이하 임추위) 심의·의결을 받는 것이 순서였다.

그러나 후보자가 접수하기도 전에 내정됐다는 얘기가 흘러나온 것이다. 실제로 서근우 씨는 9월에 서류를 접수하고 면접까지 통과해 10월, 신보 이사장으로 공식 내정됐다. 최근 논란이 된 모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데뷔할 구성원을 사전에 선정하고 오디션을 보는 꼴과 유사했다. 이는 금융공기업 수장 인선 때면 반복적으로 얘기되는 ‘낙하산 인사’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신보의 사태에서 보면 임추위는 사실상 ‘거수기’로만 작동했다.

◇금융공기업 5곳, 10년간 임명된 CEO 전부 ‘낙하산 논란’ = ‘이투데이’가 신보, 한국자산관리공사(이하 캠코), 예금보험공사(이하 예보), 예탁결제원(이하 예결원), 주택금융공사(이하 주금공) 등 금융위원회 산하 준정부기관 및 기타공공기관의 지난 10년간(2010년~2019년 말)의 임원추천위원회 자료를 제출받아 분석한 결과 해당 기간 임명된 CEO 중 ‘낙하산 논란’에서 자유로운 인물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낙하산은 사실상 기본값인 셈이다.

이 중 기타공공기관 예탁결제원을 제외하면 전부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라 ‘임추위’ 운영이 필수적인 기관이다. 사실상 공공기관의 자율 책임경영체제를 확보하기 위한 임추위란 제도가 무력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우선 신보를 비롯한 금융공기업은 정부가 지분을 들고 있거나, 정부가 출연금을 마련하기 때문에 정부의 입김이 작용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늘 낙하산이냐, 아니냐를 논하기 전에 금융공기업 CEO 자리는 정부의 인사권이라고 주장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대신 정부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하는 것을 막기 위해 공기업법을 제정해 임추위를 마련토록 했다. 이 법이 있기 전에는 주로 주무기관의 장이 CEO를 임명했다. 새 법은 CEO 후보자 정도는 해당 기업에서 마련하도록 한 것이다. 자율경영을 보장하는 차원이다.

임추위는 본선에 나갈 선수를 뽑고, 본선에 진출한 후보 중에서 최종 후보를 주무기관장이 선정한다. 이를 대통령이 재가하면 최종 임명된다. 이렇게 외부 입김을 일부 차단토록 했다. 이것이 임추위가 제대로 운영될 때의 이상적인 상황이다. 그러나 지금은 무력한 존재가 됐다는 게 여러 관계자의 목소리다.

◇‘무력한 임추위’… 정당성만 입증하는 역할 = 먼저 무력한 임추위는 ‘낙하산 인사’를 규정하기 어렵게 만든다. ‘낙하산 인사’는 사회적으로 합의된 정의가 없다. 늘 ‘논란’으로만 여겨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나마 낙하산 여부를 판단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게 임추위의 존재다. 하지만 현행 임추위는 법적 이유가 없다는 근거로 어떤 후보가 참여했고, 무슨 이유로 탈락하고 붙었는지를 공개하지 않는다. 선정의 이유가 없으니 해석이 자유롭다. 해당 후보의 이력이 정권과 연결되면 무조건 낙하산 논란이 빚어지는 것이다. 설령 낙하산이 아니더라도 투명하지 않은 방식 자체가 낙하산 논란을 부추긴다. 김종석 정무위원회 의원은 “각 기관은 사장, 임원 선임 절차를 투명하고 객관적으로 해야 한다”며 “현행 위원회는 엉터리로 운영되고 실효성이 떨어진다”라고 지적했다.

두 번째는 ‘낙하산 인사’에 정당성을 실어주는 모순을 낳는다. 임추위가 애초에 존재하기 이전에는 주무기관의 장이 금융공기업 CEO를 임명했다. 이 경우는 정부가 ‘낙하산 인사’를 임명하는 것이 분명해진다. 중간의 절차가 애초에 없다면 14일 열린 대통령 신년 기자회견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기업은행장 낙하산 인사 논란에 대해 “인사권은 정부에 있다”라고 했던 말은 문제가 없다. 실제로 기업은행은 임추위 구성이 필수가 아니다.

그러나 임추위 구성이 필수적인 기관은 정부가 따로 낙하산 논란에 언급할 필요가 없다. 법적인 절차에 따라 임명했을 뿐이라고 얘기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박창균 중앙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지금 임추위는 형식은 다 갖춘다. 정치적 인사의 임명을 정당화하는 것에 불과하다”라고 말했다.

◇ 견제해야 할 ‘비상임이사’ 그저 한 자리에 불과 = 무력한 임추위는 비상임이사를 그저 하나의 ‘먹거리’로 만든다. 공공기관의 비상임이사는 공공기관을 견제하는 역할을 한다. 기관의 상임이사는 비상임이사의 수를 초과할 수 없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하지만 임추위 자체가 무력하기에 비상임이사도 기관을 견제할 사람이 뽑히지 않는다. 그저 청탁의 자리로 여겨지는 경우가 발생한다. 캠코 문창용 사장을 임명할 때 임추위의 위원장으로 있었던 박시룡 전 국민대 교수는 장충기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실장에게 ‘사외이사’ 자리를 청탁했던 인물로 유명하다.

직·간접적으로 공기업 사외이사를 경험했던 교수들은 이들의 무력함을 공통으로 꼬집는다. 김종석 의원은 “대학교수나 변호사 등 한 달에 200만~300만 원 정도 준다. 일종의 팁”이라며 “이사회에서 입씨름이 벌어지는 건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박창균 교수도 “비상임이사가 안건에 반대한다고 해도 애초에 그런 사람을 거기에 넣지 않는다. 설사 반대하더라도 그 사람 한 사람뿐이다”라고 말했다. 고동원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교 교수는 “비상임이사가 역할을 제대로 하면 감시 목적을 제대로 할 수 있는데, 임명 자체부터 CEO 영향을 받으면서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라고 지적했다.

이번 정권은 임추위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 정권 초기, 금융공기업 낙하산 인사를 방지하는 차원에서 금융위에 금융행정혁신위를 구성해 여러 의견을 종합해서 권고안을 냈지만, 결과적으로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혁신위는 2017년 12월 20일에 작성한 보고서에서 “국정과제로 제시된 공공기관 노동이사제 도입을 통해 부당한 낙하산을 견제하고 의사결정의 투명성 개선 필요하다”고 권고한 바 있다.

다만 혁신위도 임추위 운영 등에 대해선 ‘일관된 절차 진행’, ‘합리적 개선 강구’ 등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지는 못했다. 당시 혁신위에 참여했던 박창균 중앙대 경영학과 교수는 임추위 운영에 대해 “대안이 없으니까 구체적인 논의 내용이 없었다”라고 밝혔다. 같은 시기 혁신위에 참여했던 박창완 정릉 신협 이사장은 “혁신 보고서에서 권고서만 채택하고 혁신하고 있느냐는 점검이 되지 않는다”라며 “혁신위 내용은 법적인 구속력은 없지만, 일방적으로 하라고 던져주는 내용은 결코 아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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