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언제까지 미안해만 하실 건가요?

입력 2020-02-05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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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뼈를 깎는다고 한다. 이를 직접 실천한 영웅이 있으니 ‘삼국지연의’에 등장하는 관우다. 조조 군과 싸우다 오른팔에 독화살을 맞은 관우는 ‘뾰족한 칼로 살을 째고 뼈를 드러내 뼛속에 스며든 화살 독을 긁어내고 약을 바른 뒤 꿰매는’ 치료를 받는다. 뼈를 벅벅 긁어대는 소리가 천지에 진동했다 하니 그가 받은 고통을 짐작하기 어렵다.

관우는 아마 모를 거다. 이 무시무시한 치료가 현대에 와서는 ‘참을 수 없는 가벼운’ 변명쯤으로 둔갑했다는 걸. 증권부 기자로 현장을 누비며 “미안합니다. 뼈를 깎는 고통으로 쇄신하겠습니다”라는 말을 수없이 많이 들었다. 장담컨대 그들 중 누구도 자신의 오른팔을 한 번도 내놓은 적이 없다. 온몸에 퍼지는 독은 무시한 채 쇄신이라는 이름으로 침만 발라댔다.

2011년 리딩투자증권 전산망이 해킹을 당해 고객 1만2000여 건의 개인정보가 유출됐다. 2013년 애널리스트가 미공개 정보로 선행 매매해 검찰 수사를 받았다. 2014년 펀드매니저가 채권 파킹 방식으로 수익률을 조작한 정황이 적발됐다. 2015년 증권사 임원이 코스닥 상장사 주가조작 혐의에 연루돼 재판을 받았다. 그때마다 증권가는 반성했고 각 수장은 뼈를 깎을 각오를 내비쳤다.

결과는 우습다. 2018년 삼성증권은 전산입력 실수로 112조 원 규모의 유령주식을 우리사주 조합원 계좌에 입고하는 초유의 금융사고를 냈다. 2019년 라임자산운용 부사장은 횡령 및 배임 혐의로 지명수배를 받았다. 2020년 하나금융투자 애널리스트가 선행매매 혐의로 구속됐다. 신뢰는 추락했고 시장은 위축됐다. 그래도 관계자들은 또다시 개혁을 외친다.

최근 한 자산운용사 대표를 만나 질문을 던졌다. “신뢰를 어떻게 해야 회복할 수 있을까요”라는 물음에 “수익률이 높은 좋은 상품을 만드는 게 우선이지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과연 그럴까. 모두가 허공에 미안하다고 말하지만, 책임에는 침묵한다. 뼈를 깎지 않고서는 독을 빼낼 수 없다. 다시 묻는다. “언제까지 침만 바르실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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